디자인은 참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디자인을 단순히 제품의 외형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사실은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느냐를 의미하는 것이죠. 맥의 디자인은 단순히 외형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외형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작동 방식입니다. 정말로 디자인을 잘하고 싶다면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즉 제품의 본질에 완벽하게 통달해야만 합니다. 겉핥기가 아니라 완벽하게 제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열정적으로 헌신을 다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일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지요.


- 스티브 잡스, 1996년 <와이어드> 인터뷰 중에서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21) 



애플의 디자인 방식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CEO인 스티브 잡스가 회사 내에서 그 누구보다도 디자인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뛰어난 감각으로 직접 디자인을 챙긴다는 점이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에 대한 방향을 결정하고 디자이너를 직접 영입하는 일을 해왔다. 애플2 컴퓨터를 만들 때는 제리 마녹을, 매킨토시 이후에는 하르무트 에슬링어를 스카우트했다. 애플에 돌아온 직후에도 세계 제일의 디자이너를 데려오려 했지만 조너선 아이브를 보고는 즉시 그의 재능을 간파했다. 디자이너의 재능을 알아보는 스티브 잡스의 능력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애플스토어를 디자인할 때도 잘 드러난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건축가 피터 보울린(Peter Bohlin)을 고용했다. 피터 보울린은 한 번도 매장을 디자인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가 디자인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보고는 그 천재성에 감탄해서 애플스토어 디자인을 맡긴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스토어가 물건을 파는 장소가 아니라 소셜 스페이스(Social Space)가 되어야 하며, 아이폰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념사진을 찍고 싶을 만큼 멋진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당시 애플이 뉴욕에 임대한 건물은 지하에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사람들을 지하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한 것이 필요했다. 매장 디자인을 맡은 피터 보울린은 거대한 사각형의 유리로 입구를 만들었다. 화려한 사각형의 유리에서 뿜어내는 환한 빛이 지나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시켰고, 지하에 내려오는 행동은 마치 하늘에서 땅으로 강림하는 그런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애플스토어는 애플이 만들면 무엇이든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다는 저력을 충분히 보여 주었다. 피터 보울린이 디자인한 뉴욕 맨해튼의 애플스토어는 개장할 때부터 큰 화제를 불러 모으더니 지금은 어느덧 뉴욕의 중요한 관광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코넬대학교는 사진 공유 사이트인 플리커에 올라온 사진 중 350만 개를 조사했더니, 뉴욕 5번가의 애플스토어가 뉴욕에서 사람들이 가장 사진을 많이 찍는 장소 중 5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전 세계의 관광지와 비교해도 28위에 이를 정도다. 어느덧 여행객들이 뉴욕을 가면 맨해튼의 애플스토어를 방문하는 것이 중요한 코스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디자이너를 보는 능력이 뛰어난 만큼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가 원하는 작업 환경을 구축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자동차 전시회에서 공개되는 멋진 콘셉트 카들이 4년이 지나 막상 출시되었을 때는 엉망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디자이너가 아무리 훌륭한 디자인을 만들어도 엔지니어들이 여러 기술적인 이유를 들이대면서 반대하기 시작하면 디자인은 길을 잃고 헤매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개발 모델 대신 개발 초기단계부터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이 모두 모여서 디자인을 같이 하는 통합적인 개발 방법을 구축했다.


협력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한 통합적인 개발 환경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엔지니어보다 디자인팀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전화번호부 하나를 보여주면서 매킨토시의 크기는 이것보다 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전화번호부보다 작은 컴퓨터는 상상하기도 힘들었지만, 개발자들은 스티브 잡스의 고집을 꺽을 수 없었고 결국 그의 뜻대로 매킨토시를 만들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매킨토시에서 보듯이 디자인을 결정하면 엔지니어가 따라가는 개발 방식이 애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애초에 스티브 잡스가 디자인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엔지니어들은 디자이너가 원하는 디자인을 제품으로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이 디자이너가 원하는 것을 항상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불행히도 그렇지 못할 경우 애플은 기술적으로 문제인 상품을 만들어낸다. 


2001년 출시된 파워맥 G4 큐브는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극찬을 들었다. 특히 컴퓨터로는 이례적으로 뉴욕 박물관에 전시되어 예술품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작고 아름다운 사각형 디자인 때문에 발열 문제가 심각했는데, 거기에 투명 케이스에 쉽게 금이 생기면서 갈라지기까지 했다. 아이폰 4 역시 애플의 디자인팀이 엔지니어팀보다 강력한 집단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애플의 실패작들을 살펴보면 디자인에 대한 과도한 욕심에 비해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기술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기술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결코 아니다. 디자이너 역시 엔지니어처럼 기술적인 소양을 가지고 있다. 아이팟 셔플을 만들 때 디자이너들은 손수 회로기판을 둘로 나누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러한 디자이너의 아이디어 덕분에 기기의 크기는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었다. 


애플의 디자인팀은 애플의 조직구성이 그렇듯이 철저한 소수정예를 추구한다. 애플은 IT업계를 리드하는 업체로 수많은 히트작을 내놓고 있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는 고작 10명 내외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소수정예를 추구하는 건 사람이 많다고 해서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며, 소수의 인재가 팀워크로 움직이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견해 때문이다. 애플 디자인팀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디자인팀을 이끄는 조너선 아이브 자체가 영국인 출신이고, 내부 디자이너들은 일본, 독일, 뉴질랜드, 이탈리아에서 온 다국적팀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자인 업계에서 가장 훌륭한 디자이너들을 스카우트한 만큼 연봉도 업계 평균의 50%가 넘는 2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 디자인팀은 단순히 일만 같이 하는 사이가 아니다. 저녁식사도 함께 하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등 모두가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보통 개인의 창의성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직원들에게 각각 개인 사무실을 제공하기 마련인데 애플 디자이너들에게는 개인 사무실 자체가 없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한 협동 관계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만큼 디자인팀에는 아예 칸막이조차도 설치하지 않았다. 애플 디자인팀은 하나의 사무실 공간 안에서 음악을 함께 들으면서 모두가 얼굴을 맞대고 공동작업을 한다. 조너선 아이브가 애플 제품 대부분이 스튜디오 안의 작은 부엌에서 함께 피자를 먹으면서 태어났다고 말할 정도로, 애플의 훌륭한 디자인은 결국 끈끈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태어난 협력과 협동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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