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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갈락티코입니다.

제가 책을 한권 쓰고 있는데…… 그 책을 쓰는 과정에서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사장님과 인터뷰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틀에 걸쳐서 장시간 이뤄진 인터뷰인 만큼 기존에 볼수 없었던 심층적인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특히 게임보다는 김택진 사장님의 삶과 생각에 초점을 맞추어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아무래도  저 혼자 알고 있는게 아까워서 많은 분들과 공유하기 위해 인터뷰 전문을 올립니다. 많은 도움되셨길 바랍니다. 그리고 인터뷰에 기꺼이 응해주신 김택진 사장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매우 친절하셨고.. 사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각종 게임과 만화책(!)들을 보면서 경영자보다는 크리에이터에 가까운 분이시라는 걸 알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게임개발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참가를 하고 계시더군요.    

자 그럼 김택진 사장님과의 롱~~ 인터뷰시작합니다.

갈락티코: 부모님이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와 교육방식은 어떤것이고 부모님의 가르침이 현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요?

김택진: 어린시절 집은 무척 가난했습니다.  어린시절 자라면서 집안 망한 이야기 그리고 어머니가 얼마나 슬펐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들어야 했어요..  사업이 실패 한 이 후 너무 힘들어서 세 살때 갑자기 아버지가 사라지셨다고 해요. 그래서 어머니가 나를 업고 아버지를 찾아 방방곡곡 돌아다녔는데 어느날 낚시터에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어요. 아버지를 발견한 어머니는 함께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했는데 아버지는 그 순간 나룻배에 빠져 죽을 생각이었대요. 그래서 어머니 등뒤에 업혀있던  내 얼굴을 보는데 이 애는 사공이 데려다 주겠지 하는 생각에 결국 눈물이 흘렀고 그 눈물이 자고 있던 내 얼굴에 떨어졌고 잠을 자던 내가 눈을 떴는데 그 순간 아버지와 나의 눈이 마주쳤고 우리 아버지는 결국 죽어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 후 집에 돌아온 후 아버지는 빚쟁이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머리 쥐어뜯기시면서 제발 돈을 다갚을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믿어달라고 하셨고 아버지는 전국 각지의 산동네까지 돌아다니면서 양말등의 물건을 파셔서 겨우 빚을 다 갚을 수 있었어요.그런데 아버지는 연락이 안되셨던 분들도 일일이 찾아내어서 모든 빚을 갚았어요. 이때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받은 고마움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는데 아직도 이것이 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되고 있어요.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받은 만큼 갚아야 한다는 것이 내가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갈락티코: 초등학교 시절  육상을 하신걸로 아는데요. 그 스포츠를 통해서 배운 교훈이나 깨달음이 있나요? 유명인사들을 보면 대개 승부욕과 자신감을 길렀다고 답변하더라구요.

김택진: 세상에는 정말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학교에서 잘 뛰었기 때문에 대회에서도 잘할줄 알았거든요. 구 대회에 나가면 대부분 나와 실력이 비슷했는데 서울 시대회를 나갔더니 내 실력으로는 턱도 없더군요. 그때 깨달았죠. 세상에는 나 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걸요.  그래서 저는 스포츠를 통해서 승부욕과 자신감보다는 세상에는 나보다 훌륭한 사람과 뛰어난 사람이 무척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겸손해졌다고 할까요.. 욕심을 가지기 보다는 세상을 인정하게 되었고 나보다 더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을 인정하고 그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어요. 그리고 운동 덕분에 얻은 나의 자신감은 체력이에요.

갈락티코: 그러고 보니 하루 4시간 정도밖에 안 자는 강철 체력이라면서요?

김택진: 원래 잠은 많지 않아요. 바쁠때 보통 하루에 4~5시간 자는 대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하루종일 잡니다. 몰아서 쉬어요.

갈락티코: 전자공학과를 선택하신 계기가 어떻게 되는지요?

저는 어린 시절 조금 달랐던게 라디오 키트를 사서 라디오 조립을 하면 나는 그게 어떻게 동작되는지 원리가 궁금했어요. 어떻게 전파가와서 소리가 나는지 근본적인 원리를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물리와 같은 과학에 관심이 많았죠. 그런데 깊은 과학 지식을 설명해주는 책이 없었는데 전자공학과에서는 그런걸 알려준다는거에요. 그래서 전자 공학과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남자들은 놀면서 자신의 하고 싶은 꿈이 자라나는 것 같아요. 나는 라디오 납땜질하면서 이게 왜 그런지 알고 싶었고 결국 전자공학과에 진학한겁니다.

갈락티코: 컴퓨터를 처음 봤을때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첫사랑을 만나듯이 가슴이 두근거렸나요?

김택진: 어느날 동생방에 들어갔는데 방안에 애플 컴퓨터가 있었어요. 처음에 난 그게 컴퓨터인줄도 몰랐어요.  동생이 오락만해서 오락기계인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어보고 기판을 보니 굉장히 끌리게 되더군요.  내가 원래 근본원리를 알고자 하는 호기심이 강해요. 애플 컴퓨터를 구동한 후 커서가 깜빡이는 것을 보면서 이게 어떻게 깜빡이는지 그 원리를 알고 싶었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니 컴퓨터 아키텍쳐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더 깊이 들어가다 보니 운영체제를 공부하게 되고 또 거기에 각종 하드웨어 장치를 공부하게 됐습니다.

갈락티코: 대학시절 컴퓨터 공부를 하다가 너무나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렸던 적도 있다면서요?

김택진: 당시 컴퓨터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어서 매일 같이 청계천에가서 외국서적구입해서 공부했어요. 대학교 2~3학년때 유닉스가 처음 대학에 들어와서 유닉스 공부를 하다가 운영체제를 깊이 공부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있다가 내가 버튼을 누르는 동시에  머리속에서는 컴퓨터가 켜져서 메모리에 데이터가 저장되고 CPU가 데이터를 처리해서 그래픽카드로 데이터를 보내고 이를 모니터 화면으로 표시되는 모든 과정이 일순간에 머리속에서 그려지기 시작했어요. 득도나 해탈 했을때의 그런 과정과도 비슷한데.. 그때 머리가 짠 하더니~ 눈물이 흐르더군요.

갈락티코: 성공한 사람들은 바로 그 순간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혹은 돈을 벌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하더군요?

김택진: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이 많은데 내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수 있겠어요? 나는 내가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내가 85학번이니깐 대학생으로서의 사회적인 역할이  들끓었던 시대였고 독재정권 물러가라하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시절이었잖아요? 그런데 내가 사실 그때 길거리에 나가서 내가 할수 있는게 별로 없더라구요. 물론 민주주의를 위해서 데모를 하는건 분명 옳은 일이지만 저는 저만의 특별한 능력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한글에 주목했어요. 그때만 해도 컴퓨터에서 한글을 사용하지 못했어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때부터 위대했다지만 왜 컴퓨터에서 한글을 쓰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했어요. 그래서 내가 컴퓨터를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자는 차원에서 한메를 창업하였고 당시 운영체제에서 한글을 지원해주는 한메한글이라던가 전국민이 컴퓨터를 쓰는데 도움이 될수 있도록 한메타자 교사를 개발했죠. 레포트 쓸때도 한글쓰기가 힘들었는데 그래서 아래아 한글도 개발했죠. 내가 돈 벌 생각이었다면 아래 한글에서 고어지원을 하지 않았을꺼에요.

갈락티코: 현대전자 시절 매우 튀는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촉망받는 직원이었습니다. 무슨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나요? 직장이란게 실력만으로 인정받을수는 없잖아요? 직장생활의 노하우좀 약간 알려주세요.

김택진: 나는 대기업 생활이 아니라 그냥 개발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광화문에서 일을 했는데 밤새도록 일을 하니깐.. 컴퓨터의 열기 때문에 너무 더웠어요.  그래서 반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대기업직원들은 모두 양복을 입고 다녀서 튀었죠. 이것 때문에 상사에게 불려가서 많이 혼났어요. 자유로움이나 젊음의 표현보다는 일을 위해서 어쩔수 없이 필요한 복장을 입었던거에요.  이게 남들에게는 다른 면으로 보일지 몰라도…

갈락티코: 다른 사람의 시선에는 별로 신경 안쓰나봐요?

김택진:어린시절부터 편안한 삶에는 관심없어요. 내가 사는 삶이 거칠고 힘들더라도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싶었어요. 현대에 들어가서도 개발팀을 내가 전부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나   스스로 주장이 있었거든요.  현대분들은 오히려 그런걸 좋아하더라구요. 그래서 매년 정기인사때마다 승진을 했어요.

갈락티코: 현대는 어떻게 그만 두신거죠?

김택진: 원래 현대에는 나 혼자 들어가서 과장이 된 후 100명의 개발팀을 이끌었어요. 매년 승진을 했기 때문에 사실 나는 회사에 고마웠고 회사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현대 그룹 내부에서 인터넷 사업을 현대 전자가 하느냐 아니면 현대 정보기술이 하느냐 여부를 두고 논란이 생겼어요... 결국 인터넷 사업의 주체를 놓고서 분쟁이 있었고 모든 투자가 중단되었어요. 나는 일을 하고 싶은데 회사의 사정으로 지원이 끊기니 일을 할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결국 엔씨 소프트를 창업하게 되었지요.

갈락티코: 엔씨소프트가 원래 인터넷 회사였는데 어떻게 게임을 개발하게 되었죠?

김택진: 당시 IT를 업으로 하는 벤처기업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인터넷을 다르게 볼수 없을까 고민했고. 남들이 IT에 달려갈 때 즐거움의 토대로써 인터넷을 생각했고.. 그럴 때 게임이라는게 굉장히 좋았습니다.  인터넷이 엔터테인먼트의 망으로써 좋은 시발점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리니지의 개발을 시작한겁니다.

갈락티코: 송재경사장님과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겠죠?

김택진 :옛날에 현대에 있을 당시 한글과 컴퓨터에서 윈도우 버전의 아래한글 개발에 실패를 했어요. 그래서 한글과 컴퓨터에서 내게 윈도우 버전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였고 그래서 현대와 한글과 컴퓨터가 계약해서 아래아 한글 윈도우 버전 개발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나는 원래 컴퓨터에 재능있는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에 한글과 컴퓨터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때 마침 송재경 사장이 한글과 컴퓨터에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내가 제일 좋아한 게임이 로그와 네트핵이었어요. 마침 네트핵은 소스가 다 공개되어 있었어요. 내가 현대 들어 갈 때 네트핵소스 하나 그거 가져갔어요. 매일밤 게임 소스 보면서 나도 네트핵 같은 게임을 개발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네트핵에 그래픽을 입히고 네트웍을 추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어느날 송재경 사장과 식사를 하는데 둘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날부터 무척 친하게 지냈습니다. 나중에 같이 게임을 만들자고 약속까지 했지요. 언젠가는 송재경 사장이 넥슨의 김정주 전 사장과 함께 나를 찾아와서는 회사를 창업할 테니 같이 하자고 했는데 그때 내가 병역특례중이라서 현대에서 계속 근무할 수밖에 없었어요. 바람의 나라 개발할때도 내가 넥슨에 찾아가서 게임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하던  추억이 있어요. 그때 엔씨를 창업한 이유는 같은 꿈을 같이 꾸는 사람들이 같이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넥슨과 합병할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넥슨을 방문했던 송재경사장이 넥슨을 그만둔 후였어요 결국 넥슨과의 합병은 취소하고 송재경 사장의 수소문 해보니.송재경사장은 아이네트에서 근무중이더군요. 그런데 아이네트의 허진호사장은 또 내가 잘아는 사이였고 사람을 빼간다는건 도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었었습니다.  그러다가 IMF의 영향으로 아이네트에서 게임사업팀이 없어지게 되었고  그래서 직접 허진호 사장을 만났더니 마침 잘됐다면서 송재경 사장을 엔씨소프트로 데려가라고 했던겁니다.

갈락티코: 당시 송재경 사장이 아이네트에서 개발하고 있던 게임이 리니지였죠?

김택진: 아이네트에서 리니지가 개발되었고 엔씨는 그걸 가져와서 그냥 운이좋아서 됐다고 하는데 그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니지를 처음 가져와서 다 뜯어 고쳤어요. 인터넷 서비스를 위해서 기존에 사용하던 랭귀지도 바꾸고 서버의 아키텍쳐도 다 바꾸었어요. 서버의 아키텍쳐를 제가 담당했어요. 서버에 올리는 파라메터 수정하면 100명 받을것을 1000명으로 받아들일수 있었어요.  그리고 당시는 PC 통신이었지 인터넷 게임이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 같은 경우는 돈 더 벌 생각이었다면 PC 통신이 유일한 비즈니스 모델이었기 때문에 PC통신으로 만들었을꺼에요. 하지만 우리는 인터넷 게임을 개발한다는 생각으로 PC통신은 만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인터넷 전용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게임이었죠. 근데 다행히도.. 사실 우리는 팔수 없을꺼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PC방이 활성화 되어서. 그건 우리가 예측한게 아니었어요..

갈락티코 참고 멘트) 개발자로써 김택진 사장은 과소 평가 되어있다. 김택진 사장은 한국최초의 인터넷 기반의 포탈서비스인 아미넷(지금의 신비로) 을 개발했다. 덕분에 현대전자에서 김택진 사장은 병역특례 요원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였고 고 정주영회장이 주목하는 인물이 되었다. 김택진 사장의 뛰어난 능력을 높이산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를 MS 리저널 디렉터로 선정한다. 리저널 디렉터는 MS의 제품들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제품에 대한 의견을 모니터링해주는 일을 한다. 그런데 마이크로 소프트의 리저널 디렉터는 각 나라에서 한두명 밖에 뽑지 않았다. 리저널 디렉터가 되었다는 것은 김택진 사장이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프로그래머이자 컴퓨터 전문가임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갈락티코: 사장님은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각오아래서 리니지 개발초기의 어려움을 승부사적인 기질로 덤덤히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위기의 순간에는 직원들의 혼란과 갈등으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데요. 직원들의 마음을 한데 묶을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나요?

김택진: 좀 진부하기는 하죠. 근데 저는 그런식이었어요. 한메를 만들때도 한글을 만들때도 리니지를 만들때도 그게 돈이 된다고 생각한적 없어요. 그냥 내가 믿는 바를 추진했어요.

갈락티코: 엔씨는 다른 회사에 비해 해외 진출에 적극적인 것 같아요.

김택진: 아래한글 만들어봐야 한계라고 생각했던게...  외국에 수출해봐야. 교포밖에 안써요. 근데 우리나라에서 만든 소프트웨어가 전세계에서 사랑받는게 꿈이었거든요. 그래서  게임에 손댄이유중에 하나가 그런거에요. 소프트웨어를 글로벌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리니지를 개발하자 마자 대만에갔고 거기서 센세이션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미국에가서는 개발팀들을 엔씨소프트로 영입했고. 게임이 글로벌하게 개발되고 서비스할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갈락티코: 해외진출의 핸디캡이 있었나요?

핸디캡 물론 있었어요. 하지만 쉬운부분도 있었어요 한국부모들은 아이들 키울 때 공부잘해라!  1등해라! 결국 남에게 이겨라 이렇게 교육시키지만 일본 사람들은 남에게 폐끼지 말고 살아라 이렇게 가르치는데.. 이렇듯 나라마다 교육방식이 다른데. 미국은 프론티어 정신이 있어서.. 새로운걸 해라 이렇게 가르쳐요. 우리는 분명히 인터넷 기반의 MMO 게임을 새롭게 도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쉽게 인정받을수 있었어요. 우리가 콘솔게임을 한다고 하면 여러분야중에 하나를 하는 사람이라서 미국사람에게 인정받을수 없을꺼에요. 하지만 온라인 게임을 개발했기 때문에 굉장히 존경받을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것들이 하나의 장점이었어요. 그리고 또하나는 열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게임에 대한 열정을 미국사람들이 느끼니깐.. 순수한 열정에 감동했던 것 같아요. 미국 사람들이 우리 모습을 상당히 좋게 봤어요. 외국에서 외국인을 경영하는거잖아요? 리더쉽은 단순히 그런게 돈으로 되는게 아니에요. 비전을 공유하는게 중요해요. 그 꿈을 같이 꾸기 때문에 미국사람이나 한국사람이 되는게 아니라 엔씨 사람이 되는거에요. 미국에서 개발할때는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사람들과 생활하고 이야기하면서 처음에는 나도 한국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잘 몰랐지만. 결국 다른거 같지만 역시 통하는게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갈락티코: 김택진 사장님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 동양과 서양 그리고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등 각 나라별로 나누어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이것은 글로벌 마인드의 생활화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마인드를 유지하기 위해서 기울이는 노력이 따로 있으신지요?

김택진: 지역사회와 꾸준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봐요. 저는 해외자시를 가면 브리핑 받고 그냥 오는게 아니라.. 거기 직원들과 생활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처음 들어갈때는 혼자들어가는게 아니라 로컬 파트너를 두고 가는데.. 대만에는 감마니아가 있어요.. 그쪽 회사사람들 만나서 그 지역을 알려고 하고.. 또 그쪽의 게임업종과 관련없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만날 기회를 가져서 .. 그래서 대만에는 별직업을 가진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지역에 대해서 많은 걸 알수가있어요.

갈락티코:  길드워는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궁금합니다. 길드워의 프로그래밍은 미국에서 했지만 그래픽의 대부분은 엔씨에서 맡았죠? 어떻게 이러한 협력체제를 구축할수 있었는지요?

김택진: 근데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는 말이라는게 한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 거기서 제대로 전달하기 힘들어요. 이메일이 편하긴 하지만 그래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지역적으로 떨어져서 많은 문제가 있는데.. 결국 사람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선진기법이나 방법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요. 더 중요한건 그 프로젝트에서 열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열정을 융합할수 있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고 봐요. 저도 거기 스튜디오 방문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실무진의 경우는 스킨쉽을 많이 할려고 노력했구요. 같은곳을 바라보고 열정을 뭉칠수 있도록 했어요. 그렇게 하니 게임개발을 위해 짜놓은 프로세서와 도구들이 이뤄지더군요.

갈락티코: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시나요? 또한 게임의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일상생활에서 얻은 아이디어가 실제 게임에 구현된경우가 있으신가요?

김택진: 아이디어가 게임에 구현되는게 많아요. 왜냐하면 개발회의같은걸 많이 하니깐.. 개발이라는게 누구 한사람의 의견이 들어가는게 아니고. 게임개발에 400~500백억이 들어가고 수백명의 개발자가 참여하는데 개인의 아이디어보다 집단 창조가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회의를 들어가는 만큼 나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경우가 많죠.

갈락티코: 창조를 무척 강조하시던데 김택진 사장님에게 창조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김택진: 창조라는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게 아니라 과거의 위대했던 생각들과 위대한 아이디어가 자기 자신의 재해석이라고 보거든요. 재해석하는게 창조의 과정입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이루려는 방향이 뚜렷하고 집단에서 하려는게 무엇인지.. 주관이 없으면 해석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창의가 아니라 모방이 되버리는 것 같아요.. 비슷한거 같지만 하늘과 땅차이가 나는거죠.

갈락티코: 정두홍씨나 이인화씨 박영석씨등 게임분야이외의 전문가를 초빙하는데.. 특별히 그런분들과 교류하는 이유와 함께.. 도움이 되던가요?

김택진: 그분들에게 배우려는 것은 세분다 색깔이 있고 이루려는게 뚜렷한 분이고. 1%의 가능성만있어도 도전하고 실천하시는 분들이잖아요. 정두홍씨도 무술에서 자기의 세계가 있고. 그분들은 세상에 없던 것을 하는거 아니에요. 그분들에게 우리가 배워야하는 것은 그런 자기 목표를 가지고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는걸 배워야 한다는거에요.

갈락티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특별히 가지는 마음가짐이 무엇인가요?

김택진: 우리가 이루려는 꿈이 무엇인가 그것을 잊지않는게 가장 중요한 창작의 밑거름이 됩니다..

갈락티코: 가장 짜증나는 부류의 개발자는 누구인가요?

김택진: 자기 주관이 없는 사람이요. 무엇을 하려는지 꿈이 없는 사람은 힘들어요.


갈락티코: 온라인 게임은 싫든 좋든 다른 사람의 실제생활에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이러한 온라인 게임의 영향력으로 인해서 가장 두려웠던 순간과 가장 짜릿했던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김택진: 제작자의 손을 떠나서 사람들에게 갔을경우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의 창조였기 때문에 내가 의도한경우와 다르게 사람들이 그것에 관한 다른 가치를 발견하는걸 보고 그것에 대해서 배우는게 많이 있어요.

갈락티코: 지금까지 한번도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도 즐길수 있는 게임개발을 위해서 회사차원에서노력하는 부분이 있거나 특별히 준비하고 있는 비장의 무기가 있는지요?  여성게임평가단이나 초보자들 포커스그룹이있는걸로 압니다.

김택진:  예 게임을 한번도 안해보신분들도 앉혀놓고 어떤 행위를 하는지 조사를 많이해요.

갈락티코: 혹시 가족들을 동원하시나요?

김택진: 예 가끔 우리 아이들을 동원하지만 너무게임을 잘해서 걱정이에요.


갈락티코: NC 소프트하면 게임뿐만 아니라 언론사에 홍보문서하나 제대로 보내지 못할정도로 원시적이었는데요. NC소프트는 가내 수공업수준이었던 한국 게임계를 변화를 선도했다고 봅니다. 달라진 게임산업에 있어서 NC소프트가 가장 기여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게임성공으로 인한 부수적 효과 말고 게임산업 시스템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말씀해주세요.

김택진: 예전에 우리가 게임을 만들 때 혹은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 해외로 가는건 꿈도 못꿨어요. 근데 엔씨소프트가 해외에 진출하면서 자신감들을 많이 심어준 것 같아요. 요즘 게임만들면 모두 해외를 생각하거든요. 이런게 우리가 사회에 가장 크게 공헌한 것 같아요.

갈락티코: 김택진사장님은 논리와 감성 그리고 독창성과 시장성등 모든 부분에서 철저하게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십니다. 하지만 일에 있어서만은 모든 시간을 전력투구하시는데요. 이로 인해서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던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김택진: 그런 선택은 매순간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뚜렷하게 생각나는건 없어요. 예전에 이랬었다면.. 지금은 달라졌을텐데 그런 생각안해요. 저는 과거에 대한 기억력이 별로 없거든요.


갈락티코: 리니지, 리니지2 , 아이온 그리고 리니지3 등에서 새롭게 개척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김택진: 영화의 발전을 보면  영화만의 언어와 기법을 만드는게 중요해요. 작품마다 포커스가 다르지만  전통적으로 추구하고 있는건 새로운 게임기법이런것들을 개척해서 앞으로 나올 많은 작품들에 도움이 될수 있는 새로운 게임적 기법을 개발하려고 해요.

갈락티코: CEO로써 리더가 갖추어야할 덕목은 무엇일까요??

김택진: 특히 회사의 경우에는 CEO가 최종 결정을 한다구요. 결정하는 책임자로서 느낀점은  CEO로서 가져야 할 하나를 뽑으라고 하면 나태함과 얼마나 잘싸워야 하는가? 내가 했던 실수들을 되돌아보면. 내가 나태했기 때문에 일어난 실수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조직의 리더는 마음속에서 조그만 나태함이라도 있으면 그것이 반드시 결과로 나타납니다. 조직개편이나 어떤 비즈니스적인 결정을 하거나 게임을 만들 때 판단을 할때는 판단미스나 실수가 있는건 내가 어느부분에서 나태하게 덜생각했기 때문에 발생한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나태함과 싸우는게 중요해요. 나태함과 싸우는게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갈락티코: 등산을 좋아하시던데요.. 그냥 산이 좋은신겁니까? 아니면 모험을 원하시는 겁니까?

김택진 : 등산을 하면 아무생각을 안해도 되고.... 수많은 잡생각들을 없애버리고 헉헉되고 저 끝까지 올라가겠다는 그 생각 하나밖에 없는 상태가 최고 좋거든요.

갈락티코: 다른회사에 비해서 유독 오프라인 관련 행사를 많이 하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김택진: 삶이라는건 굉장히 뭐 이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숨쉬고 내가 먹고 활동하는게 삶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수많은 것들을 다 떨어내고 순수한 육체만으로 어떤 행위를 하다보면 배우는게 더많아요. 그래서 워크숍가서 위대한 이야기를 며칠간 하는것보다 헉헉되면서 뜀박질하는게 단결도 더 잘되고 말없이 커뮤니케이션도 더 잘되고.. 사람들하고도 마찬가지로 한달내내 문화원정대 걸어보잖아요. 그러면 그로 인해서 느끼는 것이 수많은 책을 통해 읽는것보다 훨씬 많은 도움이 되요.

갈락티코: 요즘 게임 개발팀에 투자를 많이하시던데요. 게임 개발팀의 어떤 면을 보고 투자하시나요?

김택진: 얼마만큼 목표설정 잘했느냐. 그 목표를 이루기위해서 헌신할수 있느냐 자세를 보죠.

갈락티코 : 게임개발과정에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뒤집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팀내부는 물론 이거니와 경영팀에서도 반발이 심합니다. 어떻게 그 반발을 잠재우시는지요?

김택진: 한마디로 잠재우는게 아니라. 어쩔수 없는 그런 상황을 같이 느낄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요. 그런것들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면. 결국 비슷한 결론에 도달해요. 우리가 드롭에 대한 결정을 하게 되도.. 팀원 모두가 드롭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인정할 수밖에 없죠. 그런 합쳐진 결과로 더 낳은 미래로 갈수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부당한 결정이 아니라 그런 아픔을 통해서 앞으로 더 나아갈수 있겠끔 맞는게 중요하죠.

김택진 사장님과의 인터뷰 끝입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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