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는 첨단의 비디오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화투나 트럼프 같은 카드를 만드는 회사이다. 그리고 창업한 해가 1889년으로 벌써 100년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이다. 카드 제조 전문 회사였던 닌텐도가 변화를 겪게 된 것은 당시 와세다 대학교 법학부에 재학중이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가 회사에 취임한 1949년 이후다. 야마우치 히로시가 경영권을 승계한 초기만해도 닌텐도는 기존 사업에 충실하였다. 1956년 미국 방문 후에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야마우치 히로시는 카드 제조로는 회사의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업 다각화를 통해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라면과 같은 식품업에서부터 모텔을 운영하는 숙박업 그리고 택시회사의 운수업까지 다양한 사업을 실행하지만 모든 사업에서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처음 닌텐도가 주식시장에 상장됐을때만 해도 주가는 980엔이었지만 모든 사업에서 실적이 부진하자 60엔으로까지 주식가격이 떨어질 정도였다. 언제 회사가 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야마우치 히로시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완구업에 진출하기로 결심한다. 닌텐도는 카드회사이기 때문에 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인 완구업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회사에는 마침 기술과 아이디어의 명인 요코이 군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야마우치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해서 아이들을 좋아할만한 장난감을 개발하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요코이 군페이는 울트라 핸드라는 아이디어 상품을 고안해낸다. 울트라핸드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120만개나 팔려나가는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덕분에 닌텐도는 재정상의 어려움을 덜게 된다. 그리고 울트라 머신이나 광선총 그리고 사랑 테스트기 등이 연속적으로 히트하면서 닌텐도도 성장의 기회를 맞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중동에서 오일쇼크가 일어나자 장난감들이 팔리지 않기 시작했다. 사실 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가 고용됐던 77년도만해도 닌텐도는 언제 망할지 모를 정도로 재정상태가 어려웠다. 그래서 닌텐도는 신입사원도 뽑지 않고 있었는데 소개를 받은 미야모토 시게루만 특별히 신규로 채용된 것이었다.
야마우치 사장은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해외시장 개척으로 풀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사위인 아라카와를 미국에 급파해서 사업계획을 세우라고 했다. 출장을 간 아라카와는 닌텐도에서 개발한 오락실용 게임인 레이더 스코프라면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레이더 스코프는 당시 일본과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모방한 게임이었다. 아라카와 말만 믿고 야마우치 사장은 4개월동안 공장을 풀가동하여 3천대에 이르는 게임기계를 완성하여 미국으로 덜컥 보내고 만다.
하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인기가 하락세였고 그 게임을 모방한 것에 불과한 레이더 스코프 역시 찬밥신세였다. 결국 팔리지 않고 남은 2500대의 레이더 스코프가 창고에서 고스란히 재고로 남게 되었다. 창고임대료를 내기에도 벅찰 정도로 닌텐도는 크나큰 위기를 겪게 된다. 이때 회사에서 기술을 책임지는 요코이 군페이가 야마우치 사장에게 아이디를 낸다. 오락실의 게임기계 속의 기판중에서 롬만 갈아끼면 새로운 게임을 구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레이더 스코프의 롬을 다른 게임으로 갈아 껴서 새롭게 판매를 하자는 이야기였다. 야마우치 사장은 어차피 창고임대료도 감당못할 수준이고 또 다시 일본으로 기계를 가져와봐야 소용없으니 어떻해서든지 게임기계를 미국에서 처리해야할 입장이었다. 그래서 요코이 군페이의견에 순순히 동의하였다.
야마우치 사장은 요코이 군페이에게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도록 지시했다. 이때 요코이 군페이는 지금까지 닌텐도가 독창성과 창의력을 발휘하지 않고 남의 게임만을 베낀 것이 문제였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는 프로그래머나 엔지니어 같은 기술자들이 게임기획까지도 담당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요코이 군페이는 이번 기회에 아이디어가 뛰어난 사람을 뽑아서 게임 기획을 전담으로 맡기자고 하였다. 야마우치도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사내에서 아이디어를 공모해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때 회사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내 공모전에 당선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미야모토 시게루였다. 지금도 스스로를 놀기 좋아하고 게으르다고 고백하는 미야모토 시게루는 자신의 그런 성격이 닌텐도의 중요한 일을 할 때는 종종 바뀐다고 말한다. 새로운 신규프로젝트를 맡은 미야모토 시게루는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앞으로 세 달간은 일 때문에 바쁘니 술 먹는다고 부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당시의 미야모토 시게루의 성격 으로 보면 대단한 결심이었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네개의 아이디어를 냈는데 책임자였던 요코이 군페이는 모두 마음에 들었다. 기술의 달인 요코이 군페이는 이때부터 미야모토 시게루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의 후견인이 된다. 요코이 군페이와 미야모토 시게루는 단지 직장상사와 부하의 관계가 아니라 스승과 제자가 되어서 서로를 이끌어 준다. 한편 야마우치 사장은 미국에서 인기가 있는 뽀빠이를 소재로 게임을 개발하도록 미야모토 시게루에게 지시한다. 캐릭터 사용권을 얻지 못했지만 우선 만들면서 판권을 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미야모토 시게루는 주인공 뽀파이와 그의 연인 올리버 그리고 악당 플로토 3각 관계를 게임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올리버를 납치하는 플로토 그리고 그녀를 구하는 뽀파이를 생각하면서 게임의 아이디어를 만들어 나갔다. 그런데 미국으로부터 좋지 못한 소식이 들렸다. 뽀파이 판권을 구입하지 못했으니 독자적인 캐릭터로 게임을 기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기존의 게임 방식은 그대로 계승하되 게임 캐릭터에 남자의 로망을 담기로 결심했다. 공부도 못하는데 얼굴도 별로고 몸도 뚱뚱한 남자가 부단한 노력 끝에 예쁜여자의 사랑을 얻는다는 그런 남자의 환타지를 게임속에 넣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주인공 캐릭터는 기존의 게임과 다르게 얼굴도 크고 배도 나오게 그려졌다. 그런데 당시 컴퓨터의 한계로 캐릭터는 가로 16개 점과 세로 16개의 점으로만 그려야 했다. 그는 우선 머리카락 그리는 게 귀찮았기 때문에 캐릭터에 모자를 그려 넣었다. 입 모양도 표현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수염을 그려서 입을 가렸다. 그러고 나니 캐릭터의 특징을 살리기가 힘들어지자 이번에는 코를 길게 그려넣었다. 그리고 캐릭터가 달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역시 달려간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캐릭터가 파란색 멜빵바지를 입게 해서 몸통전체를 표현하고 팔 부분은 눈에 잘띄는 빨강색 티를 보이게 했다. 캐릭터가 달릴 때 마다 빨간티를 입은 팔의 동작을 크게 그렸더니 몸체의 멜빵바지 부분과 쉽게 구분이 되면서 역동적인 느낌이 살아났다.
캐릭터가 완성되자 미야모토 시게루는 이 캐릭터의 이름을 점프맨이라고 불렀다. 게임방식 때문에 끊임없이 점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임방식은 간단했다. 킹콩처럼 거대한 고릴라가 여자를 납치하고 그녀의 남자친구가 여자를 구하기 위해서 모험을 하는 것이다. 뽀빠이의 3각구도가 그대로 계승되었다. 고릴라는 화면 상단에 여자를 감옥에 가두어놓고서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드럼통을 던져내는데 이때 주인공 캐릭터가 점프를 해서 피해야 한다. 주인공은 점프맨이었지만 게임제목은 정작 고릴라 악당에서 착안하여 돈키콩이라고 했다. 돈키(Donkey)는 얼간이라는 뜻이었고 콩(kong)은 킹콩에서 따온 말이었다.
게임 기획을 끝내고 게임 제작에 돌입하게 되자 게임 프로그래머들은 미야모토 시게루를 시큰둥하게 여겼다. 그 전까지만해도 게임 개발은 1인에 의해서 제작되었다. 게임 프로그래머 혼자서 모든 것을 도맡아서 했기 때문에 적어도 게임 개발에서는 왕 같은 존재였다. 게임 기획자는 게임을 테스트해서 버그나 알려주는 보조자에 불과했다. 게임 그래픽 역시 게임 프로그래머의 지시를 일방으로 따르는 존재였다. 그런데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가 프로그래머를 상대로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니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처음 미야모토 시게루가 일을 시키면 게임 프로그래머는 컴퓨터의 한계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버티기 일수였다. 결국 그는 스스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을 쌓았고 프로그래머의 의견에 일일이 반박하면서 일을 시켜야만 했다. 음악도 미야모토 시게루가 직접 작곡을 해야할정도로 작업환경은 열악했다. 그렇게 해서 겨우 게임이 완성이 되자 회사내의 개발자들 모두가 게임이 형편없다고 말하였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만든 동키콩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게임이었고 기존 게임의 관습에 얽매였던 사람들에게는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최고 결정권자인 야마무치 사장만은 동키콩의 독창성을 높이샀다. 야마우치 사장은 다른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 닌텐도 지사의 아라카와 사장에게 연락을 해서 동키콩의 게임롬을 보낼 테니 시애틀의 서부항구에서 물건을 받으라고 했다.
아라카와 사장은 동키콩의 게임롬을 받아보고는 무척 실망했었다. 그래서 동키콩 가지고서 사업을 진행하고 싶지 않을정도였다. 하지만 야마우치 사장의 요구에 따라서 테스트 삼아 동네의 오락실에 몇 대 설치하였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동키콩이 설치된 오락실에 난리가 난 것이었다. 동키콩이 미국에서 히트조짐이 보이자 아라카와 사장은 캐릭터를 통해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점프맨이라고 붙여진 주인공에게 뭔가 그럴싸한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직원들과 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함께 게임을 플레이하던 중에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임대료를 받기 위해서 건물 관리인이 회사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그의 겉모습이 점프맨과 너무나 똑같던 것이었다. 이탈리아계의 그 남자 이름은 이마리오 세갈리(Mario Segali) 였다. 점프맨의 새로운 이름이 만장일치로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돈키콩의 최종판매량은 6만 5천장이었다. 90년대 오락실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2가 5만장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실로 놀라운 판매결과였다. 돈키콩은 미야모토 시게루에게 게임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선사해 준 게임이다. 그리고 현재 닌텐도의 상징인 마리오가 처음 등장한 게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미야모토 시게루는 가장 애착이 가는 게임으로 돈키콩을 뽑을 정도이다.
2008/05/14 - [게임] - 닌텐도 위핏, 이렇게 만들어졌다!(탄생비화)
2008/04/11 - [게임] - 닌텐도 위(Wii), 이렇게 만들어 졌다! (탄생비화)
2008/07/09 - [게임] - 스타크래프트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2008/07/01 - [게임] - 블리자드의 디아블로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2008/06/26 - [게임] - 닌텐도 게임천재에게 배우는 행복의 의미
2008/06/25 - [게임] - 블리자드에게도 암흑시대가 있었다.
2008/06/23 - [IT] - 재미있는 블리자드의 창업스토리
2008/06/20 - [IT] - 기적의 승부사 애플과 닌텐도의 화려한 부활!
2008/06/19 - [게임] - 게임천재들의 감동 비하인드 스토리!
2008/06/15 - [게임] - 블리자드가 좋은게임을 만드는 비결!
2008/06/11 - [IT] - '스타' 개발자,빌로퍼는 목사였다!
2008/05/29 - [IT] - 스티브 잡스는 원래 게임 기획자였다.!!
2008/05/17 - [IT] - 다른게임 표절했던 닌텐도의 암흑시대.
2008/07/04 - [게임] - 게임계로 몰려드는 유명인사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