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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에도 급이있지요. 조금만 인기 있으면 누구나 스타소리를 듣는데요. 또 여기서 좀 인기 있으면 톱스타나 톱클래스라고 하고 또 여기서 한단계 발전하면 슈퍼스타라는 칭호를 붙여주는데요. 저는 이 슈퍼스타를 능가해서 한분야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는 사람에게 환타지스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네요. 환타지 스타는 리그에서 압도적인 능력을 선보이는 선수들에게 붙이는 별칭인데요. 자. 90년대 분야별로 압도적인 최고였던 환타지 스타를 제가한번 뽑아 봤습니다. 재미로 쓴거니.. 재미로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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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최고 여자 드라마 스타 최진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90년대의 최진실은 대단했죠. 최진실의 대단한 점은 광고와 드라마 그리고 영화에서 동시에 최고의 주가를 올렸다는 점입니다. 영화부문이 의아스러울 듯 싶지만 미국영화 직배로 한국 영화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인 90년대 초중반 편지, 마누라 죽이기, 고스트 맘마, 나의 사랑, 나의 신부등의 히트작을 꾸준히 내놓으면서 사실 한국 영화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 트렌디 드라마의 시작인 질투와 트렌드 드라마의 완성이라고 할수 있는 별은 내가슴에서 한국형 캔디 역할을 해냈으며 가족드라마인 장미와 콩나물, 그대 그리고 나와 같은 가족드라마에까지 맹활약하는 등 그의 업적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최진실은 사실 한물갔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은 배우가 아닌가 싶다. 그럴때마다 작품을 통해서 오뚝이처럼 일어나는데 이정도 되면 경이로운 환타지 스타가 아닐런지요?  내 생각으로는 최진실의 최고 전성기는 92년 드라마 질투가 방영될때까 아닌가 싶네요. 당시 웃겼던 것이 별로 친한친구도 아닌데.. 대화하다보면.. 꼭 그럽니다. 내 이상형은 최진실이다. 그러니깐.. 최진실 같은 친구 있으면 지체말고 소개해달라고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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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최고 남자 드라마 스타 최수종
전체 배우로 치면 최수종앞에 여러명이 등장할 수 있지만 드라마에 한정한다면 역시 최수종이 독보적이죠. 남자뿐만 아니라 남녀를 통틀어 최고의 TV 스타가 아닌가 싶습니다. 역대 시청률 1위의 첫사랑을 필두로 아들과 딸, 태조왕건, 질투, 바람은 불어도가 역대 시청률 20위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밖에 내가 재미있게 본 야망의 전설, 도시인, 파일럿, 사랑이 꽃피는 나무등 그야말로 출연하는 드라마마다 대박행진을 이어간 드라마 최고의 환타지 스타라고 생각되네요. 그리고 최수종에게 더욱 놀라운 것은 1990년 이후 1999년 까지 매년 대상은 아니지만 연기관련 상을 하나씩 받았다는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뒤집어보면 매년 하나이상의 히트작을 내놓았다는 소리 아닙니까?  그런데 정작 90년대만 해도 최수종은 남자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채시라, 음정희, 최진실, 유호정, 이미연, 김혜수등 당대 최고 여자스타들의 단골 파트너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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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최고 영화 배우 한석규


90년 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한 후 아들과 딸에서 김희애의 상대역으로 스타의 반열에 오른 한석규는 그 후 파일럿과 서울의 달을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가장 결혼하고 싶은 배우 1위에 오르기도 했었죠. 그 후 닥터봉, 은행나무침대, 접속, 초록물고기, 넘버3, 8월의 크리스 마스 등 신인영화감독들의 작품에 출연해서 연이어 영화를 히트시켰는데요. 한석규의 그런 활약들을 보면 마치 엘비스프레슬리가 미국 음악을 산업화시키고 비틀즈가 영국음악을 산업화 시켰듯이 한석규씨가 한국 영화를 산업화 시킨 주역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영화계 최고 배우인 송강호, 최민식, 심은하, 전도연이 과연 한석규 없이 그렇게 성장할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정도로 한석규는 한국영화전반의 이미지를 바꾸고 여러 스타들의 탄생에 큰 도움을 주었죠. 저는 한석규를 통해서 여자들이 목소리에 그렇게 민감하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던 것 같네요.



90년대 최고 여자 영화 배우 심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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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술관옆 동물원과 8월의 크리스마의 심은하가 나는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객관성을 가지고 노력해보면 전도연인듯 하고..  하지만 결국 나는 주관적으로 심은하를 선택하게 된다.. 아직도 미술관옆 동물원의 심은하가 만들어 낸 캐릭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보게 되는 영화 미술관옆 동물원 때문에 나는 나의 취향대로 심은하를 선택합니다. ^^;;



90년대 최고 남자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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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서태지가 입은 옷은 다음주부터 유행이었고 우리가 흔하게 보는 염색도 서태지와아이들 2집부터였으니..  아무튼 서태지와 아이들이 입은 옷은 정확히 그 다음주부터 유행이었고…  하물며 초등학교에서도 서태지춤 따라하는게 유행이었으니..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나의 10대를 보낸건 “행복”이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좋아하는 친구들덕분에 마음 잘맞는 친구들과 참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비틀즈의 영화를 보면서 당시 그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부러웠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그 생각 싹 버렸음. 그리고 뉴키즈 온더 블록을 내가 무척 좋아했지만… 그런 뉴키즈 온더블럭에게 관심 끊게 만든것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저력이었으리라…




90년대 최고 여자 가수  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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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영화의 심은하와 전도연 사이에서 고민하듯.. SES와 핑클사이에서 고민을 했습니다. 사실 주관적으로 보면 내가 핑클을 더 좋아하는데 결국 SES를 뽑은건 그들이 원조이기 때문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많은 아류 그룹들이 나왔듯이 SES도 수많은 아류그룹이 나왔는데 그렇게 가요계를 변화시키는 힘에 높은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으며 사실 음반판매에 있어서도 SES가 압도를 하고 있죠. 또한 SES와 관련되서 나름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도 한가지 있습니다. SES가 처음나올 때 나의 친구들은 대부분 군대에 갔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휴가를 나오면 용산에 가서 SES브로마이드를 닥치는 대로 사갔습니다. 분대원들이 휴가나갈때면 돈을 주면서 제발 SES 브로마이드좀 사달라고 애걸복걸을 하더랍니다. SES의 등장은 당시 군인들에게 국가가 준 선물이라고 느껴질정도로 힘들었던 군생활의 한줄기 낙이 되는 존재였다고 하더군요.^^;;




90년대 최고 개그맨 신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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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시렵니까? 이 한마디로 개그계를 장악한 그는 몸개그가 주류였던 당시 뛰어난 재치와 언변으로 큰 사랑을 받았죠. 이휘재와 함께 미남 개그맨의 쌍벽을 이루면서 개그맨도 청춘스타가 될수 있음을 선보였고 특히 남자셋 여자셋을 통해서 한국 시트콤의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사실 요즘 보면 개그맨이 MC계를 장악하다시피했지만 신동엽이 활동할때만 해도 보조 MC에 불과했고 오히려 메인 MC는 최수종, 이재룡, 임백천, 이문세등 탤런트나 DJ들의 전유물과도 같았죠. 물론 이경규 역시 보조MC였구요.. 그랬던 시절에 서세원과 이경규 그리고 신동엽의 맹활약속에서 예능프로 MC자리를 개그맨의 전유물로 만드는데 일조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신동엽을 보면 안타까운점이 너무 많습니다. 신동엽이 사실 망가진 연기도 잘하고 마음만 먹으면 요즘 무한도전이나 1박2일 같은 프로에서 자신의 능력을 선보일수 있는데 “결혼”하고 “사장”이 되더니… 스스로 선을 긋고서 오직 점잖은 토크쇼에만 매진한다는 인상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 사람과 어울려서하는 프로에 재능이 없다고 밝히고있지만.. 사실 도전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지? 하여튼 유재석, 김용만등 당대 최고의 MC들을 자신의 소속사에 데리고 있을수 있는것도 결국은 90년대 신동엽의 뛰어난 활약과 업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군요.




90년대 최고 스포츠 스타 박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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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시 이승엽과 박찬호사이에서 고민을 했습니다. 만약 10년 후 내게 최고의 야구스타가 누구냐고 한다면 나는 이승엽을 첫번째 뽑을 것입니다. 그가 한국 야구계에 이바지 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IMF 직후 박찬호의 활약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매일 안좋은 소식만 들리던 그때에 5일마다 등판해서 좋은 소식을 들려주던 박찬호의 모습은 우리도 할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했고 사실 야구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죠. 나는 당시 박찬호의 전성기 시절 용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가 등판하는날 텔레비전 앞에는 그의 경기를 지켜보려는 사람들로 만원사례를 이루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2000년부터 병역특례업체에서 일을 하였는데.. 당시 힘들었던 병역특례 생활에 박찬호선수의 맹활약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내가 2000년도에 병역특례를 버틸수 있었던건 박찬호 선수의 18승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나는 게임회사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몰래..컴퓨터로 몰래 박찬호 선수의 활약을 컴퓨터를 통해서 문자중계로 볼수 있었습니다.. 업무시간이라 몰래봐야 했는데.. 사실 회사에서 몰래 박찬호 선수의 경기를 문자로 봤던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고..  회사에서 메신저로 박찬호 선수경기내용을 공유하였습니다. 그렇게 박찬호선수 경기 내용을 공유했던 사람들은 매우 각별하게 지냈고 지금도 좋은 사이로 지내고 있는데요. 결국 나의 10대 인맥은 서태지가 맺어주었고 나의 20대 인맥은 박찬호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최고의 한류 스타 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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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이 해외에서 인기있다는 건 꿈도 못꿨습니다.  한국에서 10대들에게 인기있었던건 뉴키즈 온더 블록이었고.. 사실 팝음악에 대한 패배의식도 있었고.. 한국음악은 안된다면서 팝음악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그런 친구들도 꽤 있었다.. 팝음악을 좀 알면 선민의식을 가지고서 한국음악 비하하기에 바뻤던 때에 서태지가 등장해서 한국도 외국수준의 음악을 만들수 있다는걸 보여준거고..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팝음악과 가요의 경계가 무너지고.. 한국시장에서 가요가 대세가 되는 계기를 마련했죠. 하지만 해외까지 한국음악 아니 한국 문화가 인기를 끌지는 못했던 때에.. 바로 HOT가 중국에서 큰인기를 끌면서 한류의 원조가 되었죠. 1999년에 내 친구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거기 연구소에 글쌔 HOT의 브로마이드가 있다는겁니다. 하도 신기해서 말도안되는 소리라고 했더니.. 97년 중국에서 사랑이 뭐길래라는 드라마가 히트를 하면서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세대들이 늘어났고 당시 한국에서 최고 인기가수였던 HOT의 인기도 덩달아 늘어났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만해도 한국가수의 브로마이드를 미국에 있는 중국인이 자신의 연구소에 붙였놨다는 소식 하나에 왜 그리도 뿌듯하던지..  뭐 코트라에서도 HOT가 2000년 중국공연후 생겨난 말이 한류라고 말하고 있으니 1990년대 최고의 한류 스타는 단연 HOT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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