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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격투 게임은 드림캐스트의 버추어 파이터와 플레이 스테이션의 철권 그리고 XBOX의 데드 오어 얼라이브를 일컫는 말이었다. 사실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스즈키 유가 이끌었던 AM2연구소의 기술적인 도움과 자문이 없었다면 탄생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세가의 가정용 게임기인 새턴에 게임을 발매한다는 조건으로 세가에서 여러모로 큰 도움을 주었다. 이때 이타가키는 스즈키 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타가키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 버추어 레이싱이고 데드어오 얼라이브는 버추어 파이터를 보고서 만든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이미 그전부터 스즈키 유의 추종자였다.
게임 제작이 난관에 부딪힐 때면 직접 스즈키 유에게 찾아가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이타카키는 스즈키 유처럼 프로그래머 출신이었고 실제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그가 직접 프로그래밍한 작품이다.

 


테크모는 그 전까지 아케이드 게임을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였지만 이렇다 할 3D기술이 없어서 애를 먹었다. 바로 이럴 때 이타가키가 닌자팀의 리더가 되어서 3D기술을 연구하여 탄생시킨 것이 데드오어 얼라이브이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의 성공덕분에 테크모는 최신의 기술을 확보하고 첨단 회사의 이미지를 덤으로 얻게 되었다. 이는 과거 스즈키 유가 세가에서 AM2 연구소를 이끌어서 최첨단의 기술로 세계시장을 호령했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스즈키유는 이공계 출신이지만 정작 이타카키는 일본 명문 와세다 대학의 법학과 출신이라는 점이다. 막상 법학과를 입학했지만 법률의 딱딱함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서 무려 7년간이나 학교를 다니며 겨우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애초에 법률 관련 일은 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평생 도박꾼이 되고 싶었다. 그거라도 안 된다면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회사를 알아봤다.


결국 그는 출퇴근이 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게임회사인 테크모에 입사를 지원해서 합격한다. 그가 게임계에서 유명 크리에이터가 된 것은 역시 데드 오어 얼라이브다. 그전에 15개나 되는 게임을 만들었지만 이타카키 스스로 그 모든 것이 필요 없어 졌다고 할 만큼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도박꾼을 꿈꿨던 이타카키답게 그는 게임을 도박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도박은 공평한 경쟁을 제공하면서 경쟁의 방식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도박에서 돈을 땄을 때와 잃었을 때의  극적인 순간을 잘 표현한 게임이 좋은 게임이라는 것이 이타카키의 지론이다.

 

대표작품

1996년 데드 오어 올라이브
2002년 데드 오어 얼라이브 익스트림 비치발리볼
2004년 닌자 가이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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