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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델은 1965년 2월 텍사스주의 휴스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알렉산더는 치과의사였고 어머니 로레인은 증권 중개인이었다. 유대인 집안인 만큼 그의 가정환경은 어린시절 부터 교육에 있어서는 철저했다. 특히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 증권사에서 일하시는 어머니 덕분에 연방은행의 금리나 기업의 주가에 대한 이야기가 대화의 주된 화제였는데 이런 영향 덕분에 그는 경제에 대한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고 실제로 사업가적인 감각을 갖추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마이클 델의 삼형제들은 모두 남자였는데 나이가 비슷한 관계로 자주 싸웠다. 싸움을 말리던 그의 아버지는 한편으로 어떤 이유에서든지 만약 싸우게 된다면 그때는 항상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면서 경쟁심과 승부욕을 가르쳐줬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을 추구했고 특히 불필요한 중간단계를 없애는 것 에 큰 묘미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만족스런 초등 학교생활임에도 불구하고 8살의 나이에 한번의 시험으로 고등학교 학위를 인정해준다는 시험 광고를 보고는 바로 응시할 정도였다. 이렇게 중간과정을 생략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그의 성격은 불과 12살의 나이에 2천달러를 벌어들이는 사업으로까지 이어졌다. 델이 어렸을 때는 우표수집이 인기였는데 광적인 우표 수집가인 친구 아버지 덕분에 델도 우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표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가격이 상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되고 여기에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하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의 우표 거래는 경매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중개인들의 수수료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델은 자신이 직접 우표를 판매하는 사람과 구입하는 사람을 연결시켜 주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델은 우선 중국음식점에서 서빙을 보며 자금을 모아서 우표를 구입했다. 또한 이웃사람들에게도 찾아가서 우표를 판매할 때 중개인을 찾아가지 말고 그일을 자신에게 맡겨보라고 했다. 그렇게 판매할 우표를 확보하고 나서는 제품 카달로그를 만들고 또 우표 수집가들을 위한 잡지인 린스 우표 저널에 마이클 델이 가지고 있는 우표들을 광고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점은 그가 그냥 우표를 판매한 것이 아니라 우표값의 변동사항을 조사하며 가장 좋은 값으로 판매할 수 있는 시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델의 우표들을 보고 연락해온 구입자들에게 우표를 판매하여 수익을 얻은 이 경험을 토대로 그는 사업가적인 자신감과 함께 중간유통단계를 생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마이클 델의 뛰어난 수완을 보여주는 신화적인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이는 그의 나이 열여섯살에 맞이한 여름방학때의 일이다. 텍사스의 지역신문인 휴스턴 포스트를 새로 구독하는 사람을 한명 유치할때마다 보급소로부터 성과급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게된 그는 다른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에서 잘못된 점을 찾아냈다. 사람들을 찾아가서 신문을 보도록 강권하거나 무작정 전화를 걸어서 설득하는 방식이 마이클 델에게는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선 그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보다는 새로 신문을 구독할 가능성이 큰 고객을 상대로 효율적인 영업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문을 구독하는 패턴을 연구했고 하나의 공통점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한번 신문을 보게되면 신문사를 바꾸지 않고 계속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사람은 신문사를 함께 바꾸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제 불과 고등학생인 마이클 델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삿짐 옮기는 집을 일일이 찾아낼 수는 없었다. 여기서 그는 다시한번 자신의 지혜를 발휘한다. 이사를 하는 사람은 결혼을 해서 커플이 합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는 휴스턴에 있는 16개의 법원을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최근에 결혼신고를 한 사람들의 명단을 입수해서 신혼부부들을 상대로 집중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또한 이사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행융자를 받기 마련이다. 그는 이점을 이용해서 신용정보기관을 통해서 융자받은 사람들의 명단을 확보했고 이들에게도 신문구독을 권유했다. 물건을 구입할 것 같은 고객에게 접근해서 집중적인 마케팅을 펼치자는 그의 전략은 대성공이었고 1만8천달러의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돈은 마이클 델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1년치 연봉보다 더 많은 돈이었다. 그는 이 돈으로 BMW 자동차를 구입하는데 썼다.


고등학교 시절 마이클 델은 라디오 셰크 상점에 자주 방문했고 롤링스톤즈 음악을 들으며 친구들과  모여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라디오 셰크는 라디오 키트나 거짓말 탐지기 같은 조립식 전자부품에서부터 컴퓨터를 판매 하는 곳으로  당시 청소년들의 과학적인 호기심을 자극하여 큰 인기를 끌었던 상점이었다. 특히 마이클 델의 마음을 잡아 끈 것은 역시 매장에 전시된 컴퓨터 들이었다. 그는 어린시절 컴퓨터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전자계산기를 처음보는 순간부터 특별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에는 중앙컴퓨터와 연결해서 사용하는 단말기를 만지며 컴퓨터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다.


 컴퓨터에 대한 열정덕분에 그의 프로그래밍 실력은 일취월장했는데 학생 신분으로 그는 학교의 출석관리 프로그램을 작성해줄 정도였다. 애플2가 등장하자 그는 도저히 학교 컴퓨터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자신만의 고유 컴퓨터를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갔다. 마침 그에게는 컴퓨터를 살수있는 돈이 있었지만 구입을 위해서는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부모님의 이름으로 컴퓨터를 주문해야 했고 배달된 컴퓨터를 우체국에서 받아오려면 역시 부모님이 동행해야 했다.  


결국 부모님에게 컴퓨터를 사달라고 열심히 졸라대기 시작했는데 열다섯살의 생일 때 드디어 애플2를 구입하게 된다. 우편으로 배달되는 애플2를 몇분이라도 빨리 받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에게 떼를 써서 우체국까지 찾아가 물건을 받아왔을 정도로 컴퓨터에 대한 마이클 델의 애착은 대단했다. 막상 애플2 컴퓨터가 마이클 델의 침실에 도착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분해였다. 컴퓨터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나 궁금했고 분해를 통해서 컴퓨터 작동방식에 대한 원리를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창 컴퓨터 를 분해하고 있을대  그의 방문을 연 부모님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수천달러에 이르는 비싼 컴퓨터를 함부로 망가뜨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마이클 델은 수많은 컴퓨터 잡지를 탐독하며 지식을 쌓은 덕분에 애플2컴퓨터를 금새 원상 복구할 수 있었다.


1983년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마이클 델은 미국 중부지방의 최고 명문인 텍사스대학에 진학한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학업에 대한 흥미를 잃고 다시 컴퓨터의 세계에 빠져든다. 주위에 아는 사람들을 상대로 컴퓨터를 조립해주었는데 어느새 그 동네 주변에서는 싼값으로 좋은 컴퓨터를 만들어주는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대기업의 브랜드를 단 컴퓨터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으로 조립을 해줘도 가격은  20~30%나 저렴했다. 그래서 기숙사 친구는 물론이고 교수님에서부터 동네의 변화사들까지 마이클델에게 찾아와 컴퓨터를 조립해달라고 하였다. 자연스럽게 학업성적은 떨어져갔고 수업도 자주 빠졌다.


 어느날  이런 소식을 듣게 된 그의 부모들은 마이클 델의 학교를 기습적으로 방문한다. 부모님들은 그에게 일체의 방문계획을 알리지 않고 공항에 도착해서야 비로서 전화로 나오라고 알렸다. 마침 컴퓨터를 조립하고 있있던 기숙사방에는 각종 컴퓨터와 부품들로 꽉차 있었다.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방안 곳곳에 컴퓨터를 숨겨두었다. 하지만 그의 기숙사방에 들어선 부모님들은 금방 분위기를 눈치채고 여기저기서 컴퓨터들을 찾아냈다. 그의 아버지는 대를 이어서 아들들이 의사가 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이미 그의 형도 의사과정을 걷고 있었고 마이클 델도 반드시 그러리라고 믿고 있었다. 텍사스대학교의 의과대에 진학한 델을 믿고 있었건만 그가 공부는 하지 않고 컴퓨터 장사나 하고 있다고 하자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런데 그날 마이클 델은 오히려 아버지에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IBM을 이기는 일이라면서 큰소리를 쳤다. 결국 그는 부모님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고 급기야 다시는 컴퓨터 일에 신경쓰지 않고 오직 공부에 열중하기로 맹세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 맹세는 산산이 깨지고 만다. 얼마 후 그는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회사를 창업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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