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구치가 말하는 게임 미스트 워커의 로고는 사카구치가 그의 딸과 같이 만든 것이다. 20번이나 퇴짜를 놓으면서 딸을 괴롭혔다고 웃는 그를 보면 그와 가족들의 관계를 쉽게 예상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게임에 재미뿐만 아니라 감동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노력하는 크리에이터다. 그의 목표는 게임으로 소설이나 영화가 줄 수 없는 감동의 눈물을 선사하는 것이다. 영화는 실패했지만 그는 영화제작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특히 그가 절실히 깨달은 것은 게임 제작이 본격화 되기 전의 프리 프로덕션단계의 중요함이다. 프리 프로덕션에서 가능한 많은 것을 실험해 본 다음에 본격제작에 들어가야 그만큼 시행착오가 줄어들 것 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게임 크리에이터에게 시간관리가 중요하다고 ..
스퀘어를 그만 두게 된 사카구치는 일본에서 다시 하와이로 돌아가서 두문불출하며 종적을 감춘다. 스퀘어와의 결별은 그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그냥 잊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게임과 관련된 일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인생을 즐기면서 그는 최대한의 휴식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고 멋진 곳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여유로운 삶을 살아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1년 6개월의 세월이 흐르던 어느 날 하와의 바다를 산책하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이 40이 넘어서 어린 아이처럼 우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맘껏 눈물을 흘렸다. 그 동안 꾹꾹 참고 참았던 괴롭고 힘..
파이널 환타지의 성공 이후 스퀘어는 일본 최고의 게임 업체가 되어 있었다. 실속은 에닉스였지만 외형적인 측면에서는 스퀘어가 최고였다. 에닉스는 오직 드래곤 퀘스트 게임하나에 매진하고 있는 동안 스퀘어는 다양한 게임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개발하였다. 로맨싱 사가, 크리노 트리거, 성검 전설등 많은 프렌차이즈 게임들을 보유하게 되면서 회사의 자금도 탄탄하여 졌다. 그리고 이러한 안정과 성공은 사카구치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계기가 된다. 원래 스토리가 있는 게임에서 강점을 보였던 그는 이제 100% 스토리로만 이루어진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바로 그때 그가 애플컴퓨터와 드래곤 퀘스트를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을 다시 한번 겪게 되니 그것이 바로 토이 스토리이다. 100% 컴퓨터 그래픽 에니메이션인 토..
드래곤 퀘스트의 놀라운 성공의 뒷 배경에는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드래곤 퀘스트는 발매 4개월 전부터 기대되는 게임 1위였다. 드래곤 퀘스트를 개발중인 에닉스는 무명의 회사였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일본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만화잡지인 소년점프에서 밀어주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드래곤 퀘스트의 아버지 호리이 유이지는 소년점프에서 원고를 기고하는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소년점프 편집부 사람들과는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마침 소년점프에서는 게임 관련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자 호리이 유이지에게 지금 만들고 있는 드래곤 퀘스트의 게임 제작 과정을 원고로 써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호리이 유이지는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드래곤 퀘스트의 게임 제작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계속 되는 게임의 실패! PC 방의 주인인 미야모토 마사시는 스퀘어의 창립자이고 현재 스퀘어 에닉스의 최대 주주로 유명하다. 미야모토 마사시는 다른 사람 보다 먼저 컴퓨터의 가능성을 알아 채고 소프트웨어 사업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인적 네트워크가 부족했던 그는 개발자들을 유인하기 위해서 PC방 사업을 계획한다. 당시까지 만해도 애플의 컴퓨터 가격은 80만엔(우리 돈 800만원)이 넘을 정도로 초고가였다. 그래서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소수였고 PC방까지 찾아오는 사람은 개발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실력을 갖춘 프로그래머였다. 이런 현실을 깨달은 미야모토 마사시는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이라는 뜻을 가진 스퀘어를 PC방으로 창업해서 개발자들을 모을 생각이었다. 미야모토 마사시는 애초에 P..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1962년 11월 25일 이바라키현에서 태어난다. 그가 처음 접한 게임은 12살 때 백화점 옥상에서 했던 퐁이다. 그리고 그는 동생과 함께 닌텐도의 게임&워치나 장난감 광선총을 가지고 즐겁게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게임은 그에게 하나의 놀이에 지나지 않았고 자신이 게임을 개발할 것이라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직접 스쿨 밴드를 조직해서 많은 곳에 공연을 다닐 정도로 음악에 자신을 불살랐다. 음악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생각으로 음악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스쿨밴드에서 그는 작사와 작곡에 보컬 그리고 일렉트로닉 기타까지 맡은 만능 멀티 플레이어로 팀의 리더였다. 그는 일본 공중파 방송사가 주관하는 순수 창작 음악 경영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아무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미지의 초원을 걸어가는 느낌이다. 파이널 환타지의 아버지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을 전세계에 알린 명장 게임 크리에이터이다. 파이널 환타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드래곤 퀘스트의 인기에 영합한 아류 작이라면서 비난을 하였다. 하지만 실제 게임을 플레이 한 사람들의 입 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최고의 롤플레잉 게임 시리즈로 거듭나게 된다. 파이널 환타지는 드래곤 퀘스트와 여러 가지 점에서 비교가 된다. 드래곤 퀘스트는 기존의 캐릭터와 게임시스템을 계속해서 유지하면서 정통성을 내세우는데 비해서 파이널 환타지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드래곤 퀘스트에서의 세계관과 캐릭터가 정해져 있지만 파이널 환타지는 세계관과 캐릭터자체가 계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