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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을 위한 교육용으로 컴퓨터가 각광받자 급속도로 붕괴되는 산업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었다. 사실 컴퓨터와 가정용 게임기는 같은 기술로 시작한 쌍둥이와도 같고 동시에 라이벌이기도 했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 이미 가정용 게임기 아타리 VCS 2600가 2천만 대 넘게 판매되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당시 가정용 컴퓨터의 마케팅 포인트는 우선 게임을 할 수 있으며 그밖에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만능 기계로 강조하는 것이었다. 가정용 게임기의 보완재이자 대체재로써 컴퓨터를 강조하여 초기의 컴퓨터 보급을 이끌었는데 마침 컴퓨터 과목이 정식으로 학교의 교과 과목으로 채택됐을 때 컴퓨터 회사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실행한다. 게임기는 아이의 학업을 망치지만 컴퓨터는 아이를 대학에 보내준다는 것으로 이와 같은 캠페인은 놀라운 파괴력을 발휘해 실질적인 경제권을 갖고 있는 부모들이 집에 있는 게임기를 버리고 새롭게 컴퓨터를 구입하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컴퓨터의 보급이 늘어가면 갈수록 놀랍게도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붕괴되었고 결국은 거짓말처럼 시장 자체가 증발되었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붕괴를 뜻하는 아타리 쇼크 후에 등장한 닌텐도의 문제는 당시 게임에 부정적이었던 여론들이었다. 실제로 처음 닌텐도가 미국 시장에 진출할 당시 언론들은 미국 사정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어느 일본의 무식한 기업가가 미국에 게임기를 들고 나왔다고 비아냥 거렸다. 당시 미국에서는 게임이란 이미 철이 지나도 한 참 지난 유행 같은 것이었다. 롤러 스케이트장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다가 사라졌듯이 미국에서는 게임은 그런 대접을 받고 있던 시기였다. 


이때 닌텐도의 사장인 야마우치 히로시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 붕괴의 원인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수준이 떨어지는 게임들이 무분별하게 시장에 쏟아져 나온 것이 문제라고 봤다. 시장에서 질이 낮은 게임을 구매한 고객들이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에 실망하고 그 다음에는 게임을 아예 구매하지 않게 됐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시장에 검증받은 양질의 게임 콘텐츠만을 제공하면 충분히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부활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바라본 미국 시장은 훨씬 더 심각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너무 심한 나머지 유통업체에게 가정용 게임기인 패미컴을 소개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아예 닌텐도 사람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판매 책임자는 야마우치 히로시의 사위였던 아라카와 미노루였는데 오랫동안 해외에서 근무해봤기 때문에 미국의 그런 현 사정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다. 우선 그는 패미컴이라는 제품명을  NES(Nintendo entertainment)로 바꾸고 여러가지 준비끝에 미국 최고의 전자제품 전시회인 CES에 출품해봤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이미 게임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는지 가정용 게임기를 전시하고 있는 닌텐도의 부스 자체를 방문하지도 않고 외면했다. 이때 아라카와 미노루는 너무나 큰 좌절감을 느낀 나머지 야마우치 히로시에게 미국 시장에서 철수하고 싶다고 밝힐 정도였다. 하지만 야마우치 히로시는 호통을 치면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면서 500만 달러의 금액을 제시하면서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지시했다.


결국 아라카와 미노루는 패미컴이 가정용 게임기로 시장에 접근하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패미컴이 게임기라는 이미지로부터 탈피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패미컴의 디자인도 새롭게 수정하고 각종 부가 기능을 추가했다. 또한 패미컴은 그 자체가 패밀리 컴퓨터라는 약자에서 보여 주듯이 단순히 가정용 게임기가 아니라 컴퓨터의 기능도 고려한 제품이라고 선전했다. 사용자들은 패밀리 컴퓨터로 베이직 언어를 이용하거나 워드프로세서 작업도 할 수 있었고 또한 사운드 칩을 내장해 이를 통해 컴퓨터 음악도 구현할 수 있었는데 아라카와 미노루는 이와 같은 장점을 강조하면서 판촉전을 펼쳤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유통회사로부터 단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라카와 미노루는 다시 완구 제품의 이미지로 패미컴을 재정립하기에 이른다. 닌텐도가 일본에서 내놓아 크게 히트한 완구제품인 로봇 형태의 장난감 R.O.B(Robotic Operating Buddy)를 보너스로 추가해 함께 판매한 것이다.






 R.O,B는 말 그대로 로봇 형태의 장난감이었는데 패미컴의 컨트롤러로 각종 움직임을 조종할 수 있었고 이는 많은 아이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또한 재퍼라는 총 모양의 컨트롤러도 함께 추가했는데 이는 총을 쏘는 사냥 게임으로 실제로 체감하는 느낌의 재미를 살린 제품이었다. 아라카와 미노루의 미국 지사는 당시의 기준으로 일반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가정용 게임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패미컴을 유통업체에 소개한 덕분에 그나마 완구점을 통해 판매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시장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린 미국에서 새롭게 가정용 게임기를 판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움이 많았다.  애초에 패미컴을 취급해주는 가게는 그야말로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패미컴의 판매는 계속 지지부진 하였고 결국 닌텐도는 파격적인 유통안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닌텐도는 패미컴을 가게에서 전시해주기만 해도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하였다.   무료로 패미컴의 견본품을 보내주는 것은 물론이고 만약 가게에 패미컴을 전시할때는  닌텐도 직원들이 직접 찾아가서 패미컴을 설치하였고 가게 전체를 예쁘게 인테리어까지 해주었다. 


또한 패미컴의 재고가 생길 때 100% 환불해주기로 하는등 유통 상인의 입장에서는 패미컴을 상점에 전시한다고 하면 손해볼것도 없었고 오히려 이익이 더 많았다. 사실 일본에서 패미컴을 유통하는 사람은 무조건 선불금을 내고 물건을 가져가야 했으며 재고는 절대로 받아주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미국에서의 각종 인센티브는 파격 그자체로서 시장 개척을 위해 닌텐도가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패미컴이 팔리든 안 팔리든 부담이 없었던 미국의 유통점들은 가게 한 켠에 패미컴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통점을 하나씩 장악하던 중에 마침 미국 최고의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왔고 이때 아이들을 위해 선물을 고르던 부모들은 가게에 예쁘게 전시되어 있던 장난감으로서의 패미컴이 눈에 띄었는데 이때를  계기로 하여 패미컴 판매에 불이 당겨졌다. 한번 패미컴의 판매가 상승하기 시작하자 그야말로 식을줄을 몰랐고 이미 죽었다는 게임시장은 완벽하게 부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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