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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실리콘 밸리의 문화를 만들어 내다.


57년 HP가 기업상장을 하면서 빌과 팩커드는 큰 부자가 되었다. 60년대와 70년대는 해외진출을 통해서 회사의 고속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빌이 스티브잡스의 전화를 직접 받고 일자리까지 알아봐주었을 때는 HP가 작은 벤처 기업이 아니라 이미 대기업으로 성장하던 때이다.  CEO였던 팩커드는 이미 유명인이 되어서 빌에게 CEO자리를 맡기고 미국정부의 요청에 따라 국방부 차관으로 일할 정도였다. 일례로 팩커드는 3년후에 HP로 돌아오는데 그가 HP에서 일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금전적 손해가 무려 2000만달러였다고 한다.  그렇게 큰 회사의 CEO가 고작 고등학교 1학년생의 전화를 직접 받고 원하는 부품을 보내주고 직접 일자리까지 제안해주는 것 그게 바로 실리콘밸리의 힘이다.


HP는 스티브잡스에게 여러 가지로 영향을 주었다. 스티브 잡스는 빌과 팩커드가 자신의 영웅임을 확실히 밝히고 HP가 자신의 롤 모델임을 여러 번 밝히었다. 그가 HP에 감명받은 것은 근로자와 관리자 사이에 차별이 없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빌과 팩커드는 칸막이가 없는 사무실에 임원과 노동자들이 함께 나란히 앉아서 일을 하였다. 직원들은 빌과 팩커드를 직책이 아니라 “빌”, ”팩커드” 로 그냥 이름만 불렀다.


스티브 잡스는 격식을 차리지 않고 회사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직급에 상관하지 않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고 지시하기를 즐겼다. 이를 현장 순회 경영(management by wandering around)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오늘날 실리콘 밸리의 가장 기본적인 경영방식이기도 하다.  현장 순회 경영은 팩커드가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겪었던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생산중인 제품에 많은 불량품이 발견되자 회사의 지시에 따라서 이를 조사하게 된다. 그는 생산 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생산과정을 꼼꼼히 지켜보고 현장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눈 끝에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이때의 경험을 교훈 삼아 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대화를 하는 경영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이러한 현장 순회 경영은 단순히 경영자가 현장사람을 찾아가는 게 전부가 아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HP는 회장과 CEO를 포함한 모든 임직원들이 출입문 없는 사무실에 일하게 함으로써 직원모두가 쉽게 임원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켰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역시 HP는 그의 인생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72년 HP는 세계 최초의 휴대가 가능한 공학용 전자계산기 HP 35를 만들어 판매한다. 이 제품은 엔지니어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후속편까지 합치면 30만개가 넘어갈 정도의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제품으로 가격만 해도 395달러에 이르렀다. 현재 가치로는 2000달러에 이르는 이 비싼 제품을 구하기 위해 돈을 모았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스티브 워즈니악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기기라고 생각할 정도로 HP 의 전자계산기에 완전히 매료된 워즈니악은 HP라는 기업 자체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HP 35에 열광하고 있던 워즈니악에게 죽마고우였던 알렌 봄으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온다. 그는 HP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것도 HP 35를 만들고 있는 팀에서 말이다. 워즈니악의 실력을 알고 있던 알렌 봄은 직장상사에게 워즈니악을 소개시켜 준다. 면접 후에 HP에서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같이 일하자고 한다. 


공학용 계산기를 설계하는 일을 맡은 워즈니악은 HP의 기업환경에 더욱 감동한다. 엔지니어를 중시하는 기업문화에 용모와 복장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는 도넛과 커피를 제공해주었는데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환담을 하며 친목을 다질 수 있었다. 워즈니악이 HP에 대해서 감탄한 것 중에 하나는 회사가 어려워도 직원을 해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70년대 초반 회사가 어려워지자 HP는 직원을 해고하는 대신 월급을 10%를 줄이고 직원들의 일자리를 유지하였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렇게 고용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에서 평생을 보내고 싶어했다. 스티브 잡스는 끊임없이 HP를 그만두게 하려고 했지만 워즈니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의 주변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워즈니악을 설득 좀 해달라고 부탁한다. 워즈니악의 부모님에게는 스티브 잡스가 직접 찾아가 울면서 도움을 청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워즈니악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HP에서 일할 수 있도록 소개시켜준 알렌 봄이 전화를 해서 앞으로 나아가라면서 회사를 그만두도록 격려하자 결국 워즈니악은 HP와 인연을 끊게 된다.  HP는 바로 이런 회사였다.  


좋은 친구들, 그 중에서도 스티브 워즈니악


그러면 스티브 잡스는 왜 그토록 워즈니악이 잘 다니던 회사인 HP를 그만두도록 열을 올렸을까? 그건 그 만큼 애플에 스티브 워즈니악이 꼭 필요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1950년 아버지 제리 워즈니악과 마가렛 사이에서 1950년에 태어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잡스의 아버지와는 다르게 제리 워즈니악은 명문대학인 칼텍을 졸업하고 미사일등을 만드는 록히드사에 취직한 전문 엔지니어였다.  그래서 워즈니악은 어린 시절부터 엔지니어인 아버지에게 과학에 대한 심층적인 지식을 교육받았다. 그는 학교에서도 수학과 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워즈니악은 학교에서 겉돌게 된다. 남들에게 말 한마디 못 붙이는 수줍은 성격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를 못했다. 외톨이였던 스티브 워즈니악이 열중했던 것은 전자공학과 컴퓨터였다. 아버지가 읽던 공학저널서 세계최초의 컴퓨터 애니악(ENIAC)을 비롯한 각종 컴퓨터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이들 기사를 읽으며 컴퓨터의 세계에 매료된 워즈니악은 컴퓨터를 공부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콜로라도 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컴퓨터 강좌를 직접 들으며 더욱 더 컴퓨터의 세계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의 열정이 너무나 과한 탓에 예상치 못한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워즈니악은 특정 수학식을 만들어서 그 결과물을 종이에 인쇄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컴퓨터 언어로 구현한다.  실습실의 컴퓨터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워즈니악은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아침 저녁으로 돌려서 수 백 페이지에 이르는 인쇄물을 찍어낸다. 하지만 워즈니악은 정말 잘못 알고 있었다. 컴퓨터 실습실은 원래 정해진 예산이 있었는데 워즈니악은 며칠 만에 1년치 예산의 다섯 배를 초과해서 사용해 버린다. 학교로부터 근신 처분을 받게 된 워즈니악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근처의 디 앤자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게 된다. 


다행히 워즈니악의 컴퓨터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고 오히려 미래에는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실제로 워즈니악은 대학교를 1년 정도 다닌 후에 휴학을 하고 기어이 테넷이라는 회사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취직한다.  그는 남는 시간에 컴퓨터 설계도를 그리며 보냈다. 이를 알게 된 회사 중역이 부품을 공급해줄 테니 컴퓨터를 만들어 보라는 제안을 하게 된다. 충분한 부품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워즈니악은 최소한의 칩을 사용해서 컴퓨터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는 학교 후배인 빌 페르난데스의 집 차고에서 컴퓨터를 제작한다. 빌 페르난데스 역시 컴퓨터와 전자공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컴퓨터 제작에 기꺼이 도움을 주었다. 둘은 함께 크림소다를 마시며 작업을 했기 때문에 컴퓨터의 이름을 크림소다 컴퓨터라고 붙인다. 


빌 페르난데스의 친구 중에 한 명이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빌 페르난데스가 차고에 잡스를 부름으로써 컴퓨터 산업에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다.  워즈니악은 자신이 설계한 전자기기와 컴퓨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이를 너무나 잘 이해해주는 잡스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잡스 역시 혼자 힘으로 컴퓨터를 만들어 내는 워즈니악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같은 아웃사이더이고 컴퓨터에 대한 관심사와 음악적인 취향 그리고 장난을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둘은 곧 연인처럼 함께 어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공통점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반대되는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가 한때 마리화나까지 필 정도로 뼛속까지 히피였다면, 워즈니악은 30살까지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았으며,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은 대단히 인기 있는 남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히피와는 거리가 먼 순진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스티브 잡스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했지만, 워즈니악은 모임에 나가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될 정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다섯 살이나 차이 나는 둘이 그렇게 친하게 지낸 것에 대해서 의아함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생활에서야 그럴 수도 있지만 당시 잡스는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다섯 살이라는 차이는 아무래도 커 보이는데 스티브 잡스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워즈니악은 덜 성숙했고 자기는 남보다 더 성숙했으니 둘이 동갑내기처럼 수준이 맞았다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잡스가 확실히 남들보다 성숙했으며 워즈니악이 정말 남들보다 생각이 어리긴 어리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잡스는 고등학교 때 여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할 정도로 어른 행세를 했던 반면에 워즈니악은 잡스가 학교에서 장난을 쳐서 정학처분을 받을 때 옆에서 이를 신나게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정학을 당할 정도의 장난을 치려고 계획을 세우면 다섯 살 많은 형이라면 당연히 이를 말리기 마련인데 학교 선배인 워즈니악은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장난에 동참하고 이를 즐겼으니 말이다.


그런데 장난을 극도로 좋아하는 성격덕분에 블루박스라는 것을 만들어서 돈을 벌기도 하였다. 워즈니악은 에스콰이어라는 잡지를 읽다가 공짜로 장거리 전화를 걸 수 있는 비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워즈니악은 즉시 잡스에게 전화해서 이 사실을 알리게 된다. 둘은 스탠포드 대학교의 도서관으로 가서 관련 정보들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약간의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블루박스를 완성한다. 잡스와 워즈니악은 블루박스를 이용해서 전세계에 공짜로 전화를 걸면서 각종 장난전화를 건다. 이들 장난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워즈니악이 국무부 장관이었던 헨리 키진저로 속여서 로마의 교황청에 전화를 걸었을 때이다.  교황과 통화를 하기 직전에 통역을 하는 주교에 의해서 발각되었지만 잡스와 워즈니악에게는 꽤 짜릿했던 순간이었다.  


장난으로 시작한 블루박스에 사업적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잡스 였다.  40달러의 제작비가 드는 블루박스를 150달러에 판매하자는 잡스의 제안에 워즈니악 역시 동의하면서 둘의 기념비적인 첫 번째 사업이 시작된다. 둘은 대학 기숙사를 돌아다니면서 제품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은밀하게 접근해서 블루박스를 판매했다. 


대략 100개 정도를 팔았을 때 이들은 믿기지 않는 극적인 사건을 경험하면서 동업을 그만두게 된다. 블루박스에 관심을 가진 고객이 갑자기 총으로 위협하는 강도로 돌변한 것이다.  권총을 그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던 잡스는 두려움 속에 블루박스를 건네주었다. 이 사건 이후 잡스는 블루박스에 대한 흥미자체를 잃게 된다. 블루박스는 잡스와 워즈니악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작은 기판 하나로 국가기간 망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으며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잡스는 블루박스가 없었다면 애플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워즈니악의 기술과 잡스의 비전이 합쳐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비즈니스적 감각을 익힐 수 있었기에 그런 발언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음회에 계속>  월요일 금요일 아침 7시 주 2회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IT 왕조실록은 전자책으로 출판되어 있습니다.

멀티라이터의 IT 왕조실록 2.0은 IT 왕조실록 5권과 그외 4권  총 9권의 책이 전자책으로  담겨져 있습니다.

멀티라이터의 IT 왕조실록 2.0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IT 왕조실록 1권 : 스티브잡스와 빌게이츠의 PC 혁명
IT 왕조실록 2권 : 빌 게이츠의 소프트웨어 전쟁과 윈텔의 시대
IT 왕조실록 3권 : 인터넷의 시대 구글의 탄생과 IBM 의 부활
IT 왕조실록 4권 : 애플의 부활과 스마트폰 삼국지
IT 왕조실록 5권 : 페이스북 그리고 모두를 위한 소셜네트워크 시대

IT 왕조실록에 포함된 별책도서


6권IT 슈퍼리치의 탄생
7권 스티브잡스 명언집
8권 기획의 신 스티브 잡스
9권 애플 성공 신화의 비밀

IT 왕조실록의 구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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