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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잡지한권이 애플과 MS의 탄생을 이끌었다?

멀티라이터 2008. 10. 3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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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역사를 뒤돌아 보면 시대의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순간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노벨상을 받은 트랜지스터 그리고 디지털 경제를 이끈 반도체나 인류 역사의 최고 혁신이라고 평가받는 CPU 개발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지금 현재 디지털 시대를 이끄는 주역들을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잡지 한권이 그들의 인생과 회사를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 잡지는 바로 70년대 컴퓨터 괴짜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파퓰러 일렉트로닉스이다. 자 그럼 파퓰러 일렉트로닉스가 디지털 역사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는 1975년 1월호에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 컴퓨터 알테어 8800의 탄생을 알리었다.

마침 빌게이츠의 절친한 친구였던 폴알렌은 이 잡지를 발견하자 마자 하버드대학에 재학중이던 빌게이츠를 찾아간다.  폴 알렌관 빌게이츠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 같이 사업을 해서 수십만달러가 넘는 돈을 벌었다. 그래서 폴알렌은 빌게이츠와 같이 사업을 하고 싶었으나 대학은 졸업해야한다는 부모님의 따라서 빌게이츠는 하버드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폴알렌은 주말마다 하버드 대학교에 찾아가서 컴퓨터와 관련된 사업을 하자고 설득을 하던차였다. 그런데 길거리를 걷다가 폴 알렌은 이 잡지를 발견하였고 빌게이츠를 찾아가서 이제 이 잡지를 보여주었다. 그 순간 빌게이츠는 바로 자신이 기다렸던 바로 그 “때”가 왔음을 직감하였다. 언젠가 모든 가정과 책상에 컴퓨터가 올려져 있는 날이 세상은 변하고 이로 인해서 엄청난 부가 탄생할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다른 사람이 먼저 컴퓨터 업계에 뛰어들어서 자리를 선점하기 전에 먼저 컴퓨터 업계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 서부 개척시대에 돈을 번 사람은  빌 게이츠는 즉시 알테어 8800을 만든 회사MITS에 전화를 걸어서 자신들이 이미 알테어 8800을 위한 베이직을 개발했다고 전화를 건다. 하지만 이미 MITS에는 미국 전역에서 전화가 폭주중이었다. 그리고 MITS의 사장은 베이직을 먼저 개발해오면 프로그램을 구입해주겠다노라고 약속한다. 그날 이후 빌게이츠와 폴알렌은 대학교 실습실에서 8주동안 합숙을 하면서 베이직 개발을 완성한다. 이는 미국 전체에서 가장 먼저 베이직을 개발했음을 의미하였고 MITS와 베이직 프로그램 공급계약을 맺게 된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가 탄생하게 된것이다.

그런데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는 마이크로소프트뿐만 아니라 애플의 탄생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은 HP의 직원이면서 밤에는 컴퓨터 괴짜들의 모임인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활약하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알테어 8800의 탄생을 알리는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를 보고는 역시 큰 충격을 받는다.  세계 최초의 소형 컴퓨터 알테어 8800을 가지고 싶었지만 너무나 가격이 비싸서 구입할 수 없었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신이 직접 소형 컴퓨터를 개발하기로 결심한다. 동네 상점에서 부품을 조달해서 컴퓨터를 만들고 있던 중에 스티브 워즈니악의 절친한 친구인 스티브 잡스가 이를 단순한 취미활동이 아니라 사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회사를 차려서 정식으로 컴퓨터를 판매하자는 스티브 잡스의 제안에 스티브 워즈니악은 조금 흔들렸지만 부모님과 아내의 반대가 극심했다. 잘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자고 하니 가족들은 아예 스티브 잡스와 같이 어울리지 말라고 까지 하였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어떤 사람이던가? 말로 사람을 설득하는데 있어서는 60억명중에 1명이라고 할정도로 뛰어난 설득가가 아니던가? 결국 스티브 워즈니악은 회사도 그만두고 자신이 아끼던 공학용 계산기까지 중고로 팔면서까지 애플을 창업하고야 만다. 

이렇게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컴퓨터 창업에 영향을 주었을뿐만 아니라 게임회사인 EA의 창업에도 영향을 준다. 1975년 하버드 대학교에 다니던 트립 호킨스는 어느 날 친구로부터 세계 최초의 소형 컴퓨터 알테어 8800의 소식을 듣게 된다. 트립 호킨스 역시 알테어 8800이야 말로 세상의 혁명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컴퓨터 공부에 매진한다. 그는 컴퓨터의 발전 속도를 고려한다면 1982년도에 컴퓨터 게임회사를 차려도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트립 호킨스는 1975년 이래로 1982년 게임회사를 차리기 위한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밟아나갔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스탠포드 대학원에 진학하여 MBA를 공부하였다.

 스탠포드 대학교는 휴렛과 팩커드가 HP를 창업한 이래로 벤처기업의 요람으로 통하였다. 실리콘 밸리에 있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스탠포드 대학교와 연결되어 있었다. 컴퓨터 업체에 취직해서 경험을 쌓으려는 트립 호킨스에게 스탠포드 대학원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는 개인용 컴퓨터의 미래라는 석사 논문을 가지고 실리콘 밸리의 여러 업체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을 취직시켜달라고 요청하였다. 여러 회사가 트립 호킨스에게 관심을 가졌는데 특히 애플 컴퓨터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애플 컴퓨터는 1976년 당시만해도 애플컴퓨터는 직원 50여명에 불과하였고 1년동안 판매되는 컴퓨터 천대 정도였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트립 호킨스는 개인용 컴퓨터가 미래의 주역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1978년 68번째 직원으로 애플에 입사한다. 트립 호킨스는 시장조사를 통해서 제품을 디자인 하는 마케팅 담당자였다. 그는 이때 미국전역의 상점을 돌아다니면서 점장들을 상대하고 고객들과 직접대화하는 소중한 경험을 쌓게 된다. 트립 호킨스는 애플에서 마우스를 개발할 때에도 마케팅 담당자로 참가하였다. 스티브 잡스와 팔로알토의 제록스 파크(XEROX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스탠포드 대학원의 석사출신이었던 트립 호킨스는 어디에서든 눈에 뛰는 존재였고 회사에서 쉽게 두각을 나타냈다. 회사의 배려로 스톡옵션을 받은 트립호킨스는 애플이 주식시자에 상장하자 백만장자가 된다. 1980년 12월 주식시장에 상장되면서 백만장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1982년도에 회사를 그만두고 오늘날 세계 최고의 게임퍼블리셔 회사인 EA를 창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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