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본 롤플레잉 게임의 원조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환타지의 최고 라이벌 게임은 단연 드래곤 퀘스트이다. 사실 파이널 환타지는 드래곤 퀘스트의 성공에 편승해서 2등이라도 되자는 심정으로 만든 게임이다. 하지만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게임이 진화하면서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었다.  드래곤 퀘스트를 만든 게임 크리에이터가 바로 호리이 유이지이다. 게임만큼이나 호리이 유이지와 사카구치는 많은 부분에서 비교의 대상이다. 실제 둘은 작업스타일이나 게임관에 있어서 많은 부분이 다르다. 작업스타일에 있어서 사카구치는 365일 내내 일중독자처럼 일에 몰두하는 스타일이라면 호리이 유이지는 일 외의 것을 많이 즐기며 일하는 중에도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또한 사카구치는 게임의 재미에 감동을 주기 위해서 그래픽의 비주얼이나 사운드에 많이 신경을 쓴다면 호리이 유이지는 오직 재미에 초점을 맞추어서 게임을 제작한다.  일본 최고의 스토리 텔러 자리를 높고 라이벌 관계를 맺고 있지만 둘은 친한 동료이자 친구이다. 크리노 트리거라는 롤플레잉 게임을 통해서 둘은 같이 합작으로 일을 했으며 언제라도 술 한잔 할 수 있는 사이다.

호리이 유이지는 1954년에 태어난다.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 고등학교 졸업 후에 무작정 도쿄로 올라온다. 그는 자신의 만화를 각종 잡지사에 기고했으나 모두 거절당하고 결국 재수를 해서 와세대 대학 국문과에 입학한다.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호리 유이지는 자유 기고가가 되어서 각종 잡지와 신문에 기고를 하였다. 그러던 중에 애플컴퓨터를 접하게 되었고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에닉스에서 주최하는 게임 제작 콘테스트에 테니스 게임을 출품해서 입선을 하게 되고 이 인연으로 게임계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마침 호리이 유이지는 일본 최고의 만화잡지인 소년점프에 글을 기고해서 편집국 사람들과 잘 알고 있었다. 친분이 있는 편집국 사람들이 호리이 유이지에게 당시 최고 인기작가였던 드래곤 볼의 만화가 도리야마 아키라를 소개시켜준다.  둘은 쉽게 의기 투합하여 오늘날의 드래곤 퀘스트를 탄생시켰다. 발매 되자 마자 게임사를 새로 쓰는 드래곤 퀘스트의 성공 덕분에 호리이 유이지는 일본 최고의 게임 작가로 발돋음 하였고 현재 가장 존경 받는 게임 작가로 칭송 받고 있다.



    역대 최고의 자동차 게임 그란 트리스모




야마우치는 세계에서 무려 4천만 장을 넘게 판 역대 최고의 레이싱 게임 그란 투리스모를 제작하기 위해서 직접 레이서가 되었다. 레이서 자격증까지 가지고 있는 그는 사실감 넘치는 레이싱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생활자체를 모두 차와 연결 짓고 있다.  야마우치는 직원모두가 차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면서 각종 렌터카를 빌려서 직원들이 직접 차를 타보라고 하는 것은 기본이다. 회사 직원들에게 진짜 레이서가 되어야 한다면서 전문 교육기관에서 수료한 다음에 레이서 자격증을 따오라고 까지 강요를 하는 수준이다. 

야마우치의 모든 관심사는 자동차에 집중되어 있으며 어떡하면 현실의 자동차를 사실 그대로 게임속에서 구현할까에 대해서 고민한다. 리차드 게리엇과 장르는 틀리지만 오직 하나의 장르에서 최고를 추구하는 그들의 게임관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야마우치는 1967년 지바현에서 태어나는데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동차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역시 리차드 게리엇이 아버지의 영향으로 과학에 관심을 많이 가진 것과 같다.  어린 시절 자동차에 대한 로망으로 자동차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그는 그 란투리스모를 단순히 게임이 아니라 시뮬레이션 한다고 말한다.  즉 현실세계를 텔레비전과 플레이 스테이션에서 똑같이 가상으로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실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코스를 직접 가서 운전을 해볼 정도이다. 이렇듯 그는 그란 투리스모를 통해서 자신이 직접 운전했던 기분을 게임에서 그대로 구현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집착의 수준을 가지고 있다.

그란 투리스모 1탄의 경우는 많은 시행착오로 인해서 무려 4년간이나 제작기간이 필요했는데 그는 작업막바지였던 1년간은 철야를 하면서 회사에서 지냈다고 한다.  야마우치가 보는 게임은 음악과 영상 그리고 스토리 텔링이 함께 어우러져서 만들어진 엔터테인먼트의 한 영역으로 정의한다.  그는 지금 현재 그란투리스모 5를 플레이스테이션 3로 개발중이며 기존에 자동차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게임의 정의처럼 도시와 사람도 등장하여 스토리 텔링이 어우러진 게임으로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세계 3대 격투 게임 데드오어 얼라이브




세계 3대 격투 게임은 드림캐스트의 버추어 파이터와 플레이 스테이션의 철권 그리고 XBOX의 데드 오어 얼라이브를 일컫는 말이었다. 사실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스즈키 유가 이끌었던 AM2연구소의 기술적인 도움과 자문이 없었다면 탄생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세가의 가정용 게임기인 새턴에 게임을 발매한다는 조건으로 세가에서 여러모로 큰 도움을 주었다. 이때 이타가키는 스즈키 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타가키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 버추어 레이싱이고 데드어오 얼라이브는 버추어 파이터를 보고서 만든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이미 그전부터 스즈키 유의 추종자였다. 게임 제작이 난관에 부딪힐 때면 직접 스즈키 유에게 찾아가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이타카키는 스즈키 유처럼 프로그래머 출신이었고 실제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그가 직접 프로그래밍한 작품이다.

테크모는 그 전까지 아케이드 게임을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였지만 이렇다 할 3D기술이 없어서 애를 먹었다. 바로 이럴 때 이타가키가 닌자팀의 리더가 되어서 3D기술을 연구하여 탄생시킨 것이 데드오어 얼라이브이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의 성공덕분에 테크모는 최신의 기술을 확보하고 첨단 회사의 이미지를 덤으로 얻게 되었다. 이는 과거 스즈키 유가 세가에서 AM2 연구소를 이끌어서 최첨단의 기술로 세계시장을 호령했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스즈키유는 이공계 출신이지만 정작 이타카키는 일본 명문 와세다 대학의 법학과 출신이라는 점이다. 막상 법학과를 입학했지만 법률의 딱딱함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서 무려 7년간이나 학교를 다니며 겨우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애초에 법률 관련 일은 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평생 도박꾼이 되고 싶었다.

그거라도 안 된다면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회사를 알아봤다. 결국 그는 출퇴근이 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게임회사인 테크모에 입사를 지원해서 합격한다. 그가 게임계에서 유명 크리에이터가 된 것은 역시 데드 오어 얼라이브다. 그전에 15개나 되는 게임을 만들었지만 이타카키 스스로 그 모든 것이 필요 없어 졌다고 할 만큼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도박꾼을 꿈꿨던 이타카키답게 그는 게임을 도박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도박은 공평한 경쟁을 제공하면서 경쟁의 방식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도박에서 돈을 땄을 때와 잃었을 때의  극적인 순간을 잘 표현한 게임이 좋은 게임이라는 것이 이타카키의 지론이다.

캡콤 인기 게임들의 탄생 비화





캡콤은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발명하기보다는 기존장르에서 혁신을 불러일으켜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수많은 테스트를 거치며 수정을 한다. 캡콤에서 게임 제작 총괄했던  오카모토는 솔직히 스트리트 파이터가 있어서 스트리트 파이터2가 존재하듯이 쿠니오군이 있었기에 파이널 파이트가 있었다고 말한다. 바이오 하자드는 언론 인 더 다크에 영향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그는 95%의 법칙을 따른다. 즉 95% 는 기존의 게임방식에서 완성도를 높이고 나머지 5%에서 독창적인 것을 넣는 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남의 게임을 베끼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시장성을 고려하는 제품이 있는 반면에 상식을 뛰어넘는 게임도 개발해야 업계가 건전해진다는 것이 오카모토의 지론이다.  오카모토는 1961년 에히메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동키콩을 재미있게 하고서 게임 개발자가 될 것을 결심하고 1981년에 일러스트 레이터로 코나미에 입사한다. 그 후 1983년에 캡콥에 입사하며 평사원에서 회사의 전무이사까지 인정받는 입지전적의 인물이 된다. 과거 한때 오락실을 풍미했던 1942와 손손의 기획을 맡아서 능력을 인정받고 회사의 개발 총부장에까지 오른다. 이때 그는 디렉터로 스트리트 파이터2, 바이오 하자드, 귀무자의 제작을 진두지휘하며 오늘날 세계적인 게임 회사인 캡콤을 탄생시켰다. 이 덕분에 게임개발자로써는 최고 높은 자리라고 할 수 있는 전무이사에까지 등극한다. 하지만 일본 게임시장의 불황이 맞물리며 캡콤이 경영난에 빠지자 오카모토와 회사사이에 불화가 생긴다. 이때 오카모토는 회사의 속편위주의 정책에 반발하며 새로운 게임을 자유롭게 창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현재의 게임 리퍼블릭을 창업한다. 오카모토는 현재 일본 게임 스쿨중에 하나인 게임 칼리지의 교장을 겸업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제비우스의 엔도 마사노부와 스매쉬 브라더스의 사쿠라이 마사히로가 바쁜 시간 중에도 게임 칼리지에서 강의를 맡아 줄정도로 오카모토의 게임계 인맥은 유명하다. 재미있는 게임이란 보기에 즐겁고, 하면서 즐겁고, 흉내내면서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코에이 창업 비화




 일본에서는 최고령 게임 크리에이터인 에리카와 요이치는 코에이의 창업자로 삼국지와 노부나가의 야망과 같은 역사 게임을 기획하고 프로그래밍한 사람으로 일본의 시드 마이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는 중국 삼국시대의 조조나 유비 같은 인물이 되어서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외교를 총괄하는데 시드 마이어의 문명 역시 특정문명시대의 지도자가 되어서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외교분야 대해서 통치를 하는 것과 개념이 유사하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은 여러 문명들을 개척하고 발전시키는데 인기 있는 문명은 역시 로마였다. 아시아의 로마라고 불리는 중국의 삼국지를 소재로 게임을 만든 에리카와 요이치와 서로 상통하는 면이 있다.

특히 시드 마이어의 해적과 에리카와 요이치의 대항해 시대는 바다를 소재로 해서 각종 무역행위를 한다는 개념에서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미국에 시드 마이어가 있다면 일본에는 에리카와 요이치가 있다고 말해도 전혀 틀릴 말이 아닐 것이다.  에리카와 요이치도 시드마이어처럼 불모지와 다름 없었던 게임시장에 출사표를 던져서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는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그는 1950년 10월 토치기현 아시카가시에서 태어난다. 그의 학창 시절은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을 뿐 컴퓨터라는 것은 한번도 접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염료도매상을 시작한다. 하지만 사업은 무척 어려웠고 힘들었다. 그러던 차에 컴퓨터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는 컴퓨터에 빠져든다.

사업이 잘 안 되는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욕구가 결국 컴퓨터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그는 컴퓨터에 집착하면서 프로그래밍도 혼자 힘으로 독파해냈다. 그리고 직접 게임을 개발할 결심을 한다. 게이오대 상경학부 출신인 그가 처음 개발하는 게임의 장르가 경제 시뮬레이션게임인 “투자게임” 이라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의 경제적 지식과 게임이 결합된 덕분에 기존의 게임과는 다른 재미를 창조할 수 있었다. 그는 시험 삼아서 컴퓨터 잡지에 조그맣게 게임 판매 광고를 냈다.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하면 우편으로 디스켓을 보내는 통신사업방식까지 고안했다.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그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컴퓨터 프로그램과 레코드를 파는 상점을 열었다. 그리고 상점의 한 켠에는 게임 개발팀을 만들어서 운영하였다. 폭주하는 주문에 개발하는 시간보다 게임 프로그램을 포장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리자 그는 코에이를 게임만 개발 하는 전문회사로 개편한다.

그리고 염료 도매업도 그만둔다.  우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빠져든 취미가 결국 인생 자체를 바꾸게 된 것이었다. 그 후 코에이는 승승 장구하면서 일본에서 주가 총액에서 일곱번째 규모의 게임 전문 개발사가 되었다. 코에이는 자신들의 게임을 리코에이션이라고 부른다. 즉 Re + Koei + Tion 이 합쳐진 말로 다시 코에이식으로 역사를 재해석해서 게임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댓글
  • 프로필사진 하이컨셉 KOEI의 탄생비화 참 재미있네요. 인생은 어떻게 풀려갈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소년점프가 도리야마 아키라와 호리이 유지의 중매를 선 것과 마찬가지네요 ㅎㅎ. 사실 어찌보면 일본 게임의 강함은 컨텐츠, 그것도 막강한 코믹과 아니메 창작층과의 매쉬업을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2009.01.08 23:42
  • 프로필사진 젤가디스 어렸을때는 정말 게임들의 정보를 접하기도 힘들고 그래서 한글화가 잘되어있고 수준이 높았던 일본게임들을 했는데 그때 접했던 대항해시대와 삼국지시리즈는 지금 해봐도 재밌을정도로 잘만든게임이었죠. 특히 삼국지게임을 너무 재밌게 하다보니 삼국지 인물들, 주요사건들은 달달 외우게 되었죠. 아마 많은 한국 남성들이 그렇지 않을지요. ^^ 드퀘나 파판, 그란 투리스모는 게임기 게임이라 해보지를 못한게 아쉽네요. 2009.01.09 05:46
  • 프로필사진 써클체인지업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다음번에는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팔콤사의 이스 시리즈에 대해서도 한번 다루어주셨으면!!! 2009.01.09 15:19
  • 프로필사진 아크몬드 글이 아주 맛깔납니다 ;)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2009.01.10 16:34
  • 프로필사진 김수연 손오공 이 닮은 거. 같네요핸드 폰으로 하니깐 힘들어..ㅜㅜ 2011.03.06 19:28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