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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의 위기를 인텔은 어떻게 넘겼나?

멀티라이터 2009. 2. 25. 15:34


1971년 주식을 공개한 인텔은 회사 내에 수많은 백만장자를 탄생시켰다. 메모리 칩의 상업적인 성공으로 인텔은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실리콘 밸리 최고의 기업으로 칭송받았다. 창업이후 10년간 인텔의  수익율은 총매출의 25%가 넘었는데 고부가가치 산업인 메모리 산업을 사실상 독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잘나가던 인텔에게 암운이 드리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다. 일본 업체들이 메모리 시장에 본격적인 진출을 하며 인텔을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메모리는 원래 장치산업이라고 불리운다. 좋은 제조장비로 많이 찍어내면 찍어낼수록 이익을 얻는다. 인텔은 반도체전문회사로 사실 그때까지만해도 성공한 중소기업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의 NEC나 도시바는 전자기기를 만드는 대기업이었다.  이들은 모회사의 지원을 통해서 대규모 투자가 가능했고 덕분에 대량의 메모리 생산을 위한 설비시설을 갖출 수 있었다.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은 인텔이 거래하는 메모리 가격에 무조건 10%를 할인해서 판매를 했다. 이러한 일본 반도체 업체들의 무차별적인 공습에 인텔이 비틀되기 시작했다. 1984년이 되자 3개월동안 메모리 가격이 40%나 폭락하면서 인텔은 원가도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85년이 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85년초만해도 256KB 메모리는 30달러였는데 단 몇 개월만에 3달러로 폭락하였고 그 해 영업실적에서 1억달러의 손해를 본 인텔은 더 이상 회사를 운영하기도 힘들어질 전망이었다.

당시 사장이었던 앤디 그로브는 메모리 시장에서의 참패로 급격하게 어려워진 인텔을 살리기 위한 방법을 골몰했다. 그는 최고 경영자인 고든 무어를 찾아가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했다. 당시 인텔의 상황이라면 주주들이 고든무어와 앤디그로브를 해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주주들이 새로운 경영자를 선임해서 위기의 인텔을 구해내려 한다면 무슨일이 일어날까? 고든 무어와 앤디 그로브는 그 대답을 잘 알고 있었다. 이익이 되지 않는 분야인 메모리를 과감하게 정리했을 것이다. 다만 고든 무어와 앤디 그로브는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 둘은 메모리칩을 직접 개발한 사람이고 메모리에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앤디 그로브는 인텔이 곧 메모리고 메모리가 곧 인텔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메모리분야를 내쳐야 한다는 생각에 차마 그들은 과감하게 행동으로 나서지 못했을 뿐이다. 잘나가던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때의 해결책은 수익이 나지 않는 산업을 정리하고 경쟁력이 있는 분야쪽으로 집중을 해야 한다. 문제는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그 동안 정이 들었던 사람들을 해고 시켜야 한다는 사실에 기존 경영진들은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고 결국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회사는 서서히 침몰했다. 인텔도 바로 그러한 격이었다.

 인텔의 영광을 만들었던 사람을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에 앤디 그로브는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사진에 의해서 사장자리를 해임당하고 새로운 경영진이 온다면 어차피 메모리 분야는 없어지고 말것을 잘알고 있었다. 어차피 메모리 분야의 운명이 그렇게 될수 밖에 없는데 그가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인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알고 있는 사람인 앤디 그로브 본인이 직접 나서서 과감한 구조조정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직접 인텔의 반도체 공장들 방문해서 메모리 관련시설을 폐쇄하기 시작했다. 사실 앤디 그로브는 회사에서 메모리생산을 중단한다고 하면 회사내에서 엄청난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물론 몇몇사람들이 더 획기적인 메모리를 개발해서 일본업체들과 맞서싸워야 한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앤디그로브의 선택을 존중했다. 오히려 왜 이렇게 늦게 결정했냐면서 앤디 그로브를 타박하는 사람도 있었고  몇몇 공장에서는 이미 메모리 생산라인을 폐쇄하고 다른 제품으로 전용하고 있었을 정도다.

그는 사장인 자신보다도 먼저 직원들이 생존감각을 발휘하는 모습에 감동을 했고 결국 인텔은 부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인텔의 기업문화가 위기속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통해서 앤디 그로브는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회사란 무릇 경영자의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의심으로 먹고 사는 존재란 것이다. 경영자란 끊임없이 회사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변화를 살펴봐야 했는데 앤디 그로브 스스로 그러지 못했음을 자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10배의 힘이 작용하는 전략적 변곡점이라는 개념을 구체화한다. 이는 그의 탁월한 경영서적으로 인정받는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Only Paranoid Survive)에 상세하게 묘사되어있다.

무성영화 시대의 사람들은 유성영화가 등장할때만 해도 그 위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시대는 완전히 유성영화로 변화하였고 무성영화에서 최고 소리를 듣던 사람들은 퇴출되었다.월마트가 처음등장할때도 주변 상점들은 그 위력을 몰랐다. 하지만 월마트가 미국 전체를 장악하자 수많은 업체들이 경쟁에서 밀려나고 도산했다. 이렇게 급격하게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순간을 그는 전략적 변곡점이라고 하고 이러한 변화에 잘 적응하는 사람은 10배의 힘으로 성공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10배의 힘으로 망하고 만다는 것을 앤디 그로브는 강조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전략적 변곡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게이츠는 세계최초의 소형컴퓨터 알테어 8800이 등장할 때 시대의 변화를 읽어냈고 10배의 힘으로 세계최고의 갑부가 되었다. 하지만 소형컴퓨터를 무시했던 당시의 대형 컴퓨터 회사들 이를 테면 DEC 같은 경우는 회사가 위기속에 빠졌고 결국은 데스크탑 컴퓨터 전문회사인 컴팩에게 인수당하였다. 게임에서도 이런 경우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3D의 시대를 대비못했던 닌텐도는 80%가 넘는 어마어마한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소니에게 그 왕관을 물려준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 게임이 화려한 그래픽보다는 체감형 게임이 각광받으면서 소니가 가졌던 왕관을 다시 닌텐도가 가져갈수 있었다.  전략적 변곡점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아 그때가 바로 중요한 변혁의 시기였다고 판단하지만 사실 그 순간에는 인지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앤디 그로브는 전략적 변곡점에 대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지나치다고 싶을 정도로 사업환경을 검토하고 또한 의심하고 심사숙고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약 전략적 변곡점을 그냥 지나쳐서 대비를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잘나가는 회사라도 단번에 퇴출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
  • 프로필사진 도이모이 대단하시네요. 정남님은 분야도 없으시네요 ~ 2009.02.25 18:15
  • 프로필사진 멀티라이터 감사합니다. ^^;;; 용기가 나네요.^^;; 2009.02.26 11:14 신고
  • 프로필사진 구차니 돌아서면 후회하고, 그 자리에 있음 알 수가 없는 인생
    그래서 더 재미있는것 같습니다 ㅎ

    물론 사라져가는 입장에서는 유쾌하지 못한 일이겠지만 말이죠.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
    2009.02.26 10:27
  • 프로필사진 멀티라이터 예.. 그렇죠... 결국 리더의 자리가 어떤건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게 계속 좋은것일수 없는게 경영의 세계 같아요.^^;; 과감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분야같아요.^^;; 2009.02.26 11:15 신고
  • 프로필사진 참깨군 인텔에게 있어서는 그 당시 최악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결정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을 한 결과가 되었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2009.02.26 14:47
  • 프로필사진 날카로운 이야기로군요. 저는 공대생이라 경영쪽은 교양과목으로 조금밖에 안 들었는데 거기서 들었던 내용과 거의 같네요.
    한 포인트를 짚어내는 날카로움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2009.02.2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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