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0년 2월에 세계 경영 연구원 IGM에 기고한 글입니다. 8개월이 지난 글이라는 점을 참고해주세요.>

매년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가전 박람회인 CES는 미래 전자 산업의 판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행사다. 이번에도 새로운 신제품들이 발표되면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그 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구글의 스마트폰인 넥서스원이 정식으로 전시되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번에 공개된 넥서스원을 보면 정말 한국의 휴대폰 업체들이 조금만 방심했다가는 지금의 위치를 잃게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들게 했다. 왜냐하면 이번에 공개된 넥서스원은 아이폰 3GS를 포함한 역대 스마트폰 중에서 최강의 성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구글 넥서스원 만든 HTC는 어떤 회사?
아이폰 3GS가 600MHZ의 CPU속도를 가지고 있는데 비해서 넥서스원은 1GHz가 장착되어 있으며 3.7인치 AMOLED와 500만 화소 카메라가 채택되는 등 최고의 스펙으로 무장했다. 한번도 하드웨어를 제작한 경험이 없는 검색 전문 회사 구글이 만든 첫 번째 스마트폰 치고는 너무나 훌륭했다. 물론 대만 업체인 HTC의 도움을 받은 덕분이지만 이런 사실은 한국 업체가 더욱 긴장해야 할 부분으로 보여진다. 왜 그런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HTC는 1997년 대만에서 시작된 스마트폰 전문업체다. 이 회사는 MS가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개발할 때 하드웨어 제작부분을 담당함으로써 회사가 급성장했다. MS와의 공동 제휴 덕분에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고 스마트폰 제조 기술 역시 크게 발전했다. 스마트폰의 조용한 강자로 명성을 쌓아가던 HTC는 세계 최초의 안드로이드폰 HTC Dream을 제작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였다.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 HTC의 시장 점유율은 4.5%다. 삼성이 3%이며 LG는 아직 명함도 내밀지 못한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성적이다.

그런데 HTC가 성장함에 있어서 주목해야 할 것은 MS와 구글로부터 큰 도움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를 반대로 뒤집으면 MS와 구글의 도움을 얻으면 무명의 회사도 세계적인 회사로 급성장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MS가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만들 때 HTC는 기판을 제공했다. MS는 HTC가 제공하는 기판에 최적화된 운영체제를 개발했고 문제점이 있으면 HTC에 수정을 요청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HTC는 MS의 스마트폰 운영체제에 최적화된 하드웨어를 개발할 수 있었다. 덕분에 HTC는 MS의 운영체제를 가장 잘 구현한 스마트폰 제조사로서 명성을 쌓았다. 사실 MS가 처음부터 HTC와 제휴관계를 맺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 다른 휴대폰 제조업체에게도 HTC처럼 제휴를 요청했지만 휴대폰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기업들은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에 MS의 제안을 거절했던 것이다.

HTC가 구글에 올인하는 이유
하지만 HTC가 MS와의 협약이 성사된 후 급성장하자 이제는 휴대폰 제조업체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런데 정작 MS 덕분에 유명해진 HTC가 이번에는 MS와 관계를 끊고 구글 편으로 돌아섰다. 이는 세계 최초의 안드로이드폰 HTC Dream의 성공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HTC는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키보드가 필요 없는 무선 컴퓨터인 태블릿 컴퓨터와 같은 여러 기기들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할 것이라고 한다.

HTC가 이렇게 구글에 올인을 하는 것은 결국 자사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하드웨어는 결국 소프트웨어의 지배를 받는다. 아무리 하드웨어가 뛰어나도 소프트웨어가 지원해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HTC는 과거 MS와의 협약으로 MS의 운영체제에 가장 최적화된 스마트폰 제조사로서 명성을 쌓은 것처럼 지금은 구글과 밀월관계를 가짐으로써 구글 안드로이드 폰으로 또다른 명성을 쌓아나가게 될 것이다. 넥서스원은 가장 최신버전의 안드로이드가 들어가 있는데 이는 HTC가 구글의 최신 소프트웨어를 가장 먼저 만져보고 직접 제품을 개발해봤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공동 개발과정을 통해서 구글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은 안드로이드폰 제품 개발과 관련해서 중요한 기술 노하우 역시 긴밀하게 공유하는 협조체계가 구축됐음을 의미한다. 이는 앞으로 ‘안드로이드를 장착한 스마트폰은 HTC가 최고’라는 명성을 선물할 것이다.

구글 넥서스원 출시가 한국 업체에 주는 의미
문제는 한국의 휴대폰 업체들이다. 지금까지 휴대폰은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가 결정하는 시장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손안의 PC다. PC는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에 의해서 판가름 나는 시장이었다. 즉 MS처럼 운영체제를 만드는 회사가 전체 업계를 이끌어갔다. MS가 만들어 놓은 표준에 맞추어서 하드웨어를 제작했고 하드웨어 제조사들은 MS의 운영체제에 맞는 PC를 만들기 위해서 온 힘을 쏟았다. 앞으로 스마트폰 업체 역시 운영체제를 공급하는 업체에 맞추어서 하드웨어를 제작해야 하는 시기가 왔음을 넥서스원이 보여주고 있다.

넥서스원은 구글이 자신들이 직접 하드웨어 설계에 참여함으로써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에 일종의 제품 표준을 제시한 것이다. 사실 안드로이드의 가장 큰 문제는 애플처럼 제품사양이 통일되어 있지 않아서 각 제조사 입맛에 맞추어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제조사 입장에서야 자사의 기술과 개성을 뽐낼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지만 소비자와 개발자로서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특히 하드웨어 스펙에 영향을 많이 받는 개발자들에게는 각 기종마다 따로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아이폰의 성공이 통일된 스펙과 동일한 개발환경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제품 사양이 제각각인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은 아이폰과 경쟁하는데 어려움을 처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하드웨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구글이 몸소 넥서스원을 통해서 가이드 라인을 선보인 것이다.

이렇게 표준모델을 제시하게 되면 휴대폰 개발력이 떨어졌던 회사는 넥서스원을 참고하면 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스마트폰을 제조할 수 있는데 비해서 그 동안 하드웨어 제작이 뛰어났던 선도적 업체들에게는 오히려 불이익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드웨어 개발력에서 경쟁력을 갖춘 업체들이 정작 자신들의 능력을 뽐낼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드웨어가 뛰어나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운영체제에서 그 성능을 지원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게 스마트폰이다. 그렇기 때문에 PC의 경우처럼 앞으로 휴대폰 제조 업체는 운영체제를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업체에게 종속당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번에 구글과 HTC의 협업으로 완성된 넥서스원은 그런 흐름의 전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구글이 공짜로 안드로이드를 배포해도 돈을 버는 까닭은?
PC 업체에서는 흔히 MS를 로마 제국의 황제로 일컬으며 다른 하드웨어 제조사는 MS에 세금을 바치는 영주로 표현된다. 그런데 스마트폰에서는 하드웨어 제조사가 운영체제 업체에 종속될 가능성이 PC 시장에서보다 더 크다. 왜냐하면 스마트폰의 운영체제는 소프트웨어보다 더 많은 부분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운영체제 안에는 구글독스나 앱스토어와 같은 인터넷 서비스가 통합되어 있다.

구글이 공짜로 운영체제를 휴대폰 제조업체에게 배포하는 것도 사실은 자사의 인터넷 영향력을 통해서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반영되어 있다. 구글이 MS오피스에 대항해서 내놓은 구글독스만 해도 앞으로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에 매우 중요한 소프트웨어 인데 안드로이드는 구글독스에 최적화 되어있다. 또한 이메일 서비스 역시 구글의 Gmail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으며 구글의 동영상 서비스인 유투브 역시 안드로이드와 연동되어 있다.

애플은 앱스토어를 통해서 1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는데 구글 역시 안드로이드 마켓을 서비스 중이다. 여기에 구글은 북스토어와 같은 신규서비스를 계속 선보일 예정인데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과 연동되면 구글은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구글 수익의 90%를 차지하는 광고를 생각하면 왜 구글이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서 만든 안드로이드를 공짜로 배포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구글은 또 구글 보이스라는 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운영 중인데 앞으로 구글의 광고를 보는 사람은 구글 보이스를 이용해서 무료로 통화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이는 한해 수익의 90%를 광고로 버는 구글만이 실행할 수 있는 계획이다. 이게 현실화 되면 이동 통신 업체들 역시 구글의 눈치를 보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렇게 스마트폰과 관련된 구글의 행보를 보면 단순히 스마트폰 한 대를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서비스하는 인터넷 서비스들을 한 곳에 응축해서 언제 어디서든 구글과 숨쉬도록 하는 거대한 전략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업체들의 미래는?
문제는 세계 2위와 3위의 휴대폰 제조업체를 가진 한국의 행보다. HTC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는 구글과 전면적인 협력관계를 맺음으로써 충분히 덕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삼성과 LG는 구글에 모든 것을 걸기에는 규모가 크다. 노키아는 세계 1위 휴대폰 업체로서 독자적인 운영체제 심비안을 가지고 있으며 시장 점유율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데 정작 삼성과 LG는 그런 독자적인 운영체제도 없다. 물론 삼성이 바다라는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하지만, 하드웨어 전문회사인 삼성의 소프트웨어 개발력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의구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운영체제는 단순히 성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개발자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구글, MS, 애플의 저력은 바로 개발자 생태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과연 삼성이 구글, MS, 애플을 뛰어넘을 개발자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힘들 것 같다. 왜냐하면 이들 세 회사는 소프트웨어로 기적을 만들어 놓은 세계 최강의 소프트웨어 회사이고 이들의 뛰어난 소프트웨어 개발력을 공유함으로써 충성도 높은 개발자들을 확보해 놓았다. 그런데 삼성이 그런 개발자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불러 모을 수 있을까? 이는 삼성이 구글, MS, 애플처럼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 반열에 오른 다음에나 꿈꿀 수 있는 일이다. 소프트웨어 회사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을 하루 아침에 삼성이 가져갈 수는 없다.

결국 독자적인 운영체제 개발에 한계가 있는 국내 제조사는 구글이나 MS처럼 자사의 운영체제를 라이선스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앞에서 이야기했던 문제점들이 재현된다. 국내 제조사는 구글과 MS 같은 여러 회사와 파트너 관계를 맺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HTC의 경우처럼 구글이라는 한 회사와만 밀월관계를 맺게 되는 경우 갖게 되는 이익은 누릴 수 없다. 구글 안드로이드 폰에 최적화된 휴대폰으로 HTC와 모토로라등이 포지셔닝된다면 안드로이드폰 시장에서는 국내 제조사의 입지는 그만큼 줄어든다.

또 MS의 운영체제에 올인하기에는 갈수록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MS가 앞으로 발표하는 운영체제는 매우 폐쇄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MS의 윈도우 모바일은 휴대폰 제조사가 수정할 수 있었다. 메뉴의 모양은 물론이거니와 내장된 프로그램의 변경도 가능했다. 그런데 앞으로는 MS의 운영체제를 함부로 수정할 수 없으며 앱스토어 역시 MS의 것을 이용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하드웨어 제조사들은 더욱 더 소프트웨어 제조업체에게 종속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프트웨어 업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하드웨어 전문인 한국 업체들의 입지는 더욱 흔들리게 될 공산이 크다.  결국 오직 하드웨어 개발에만 몰두한 한국 기업들이 손안의 컴퓨터 시대를 맞아 참으로 어려운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CES를 방문한 이건희 전 회장은 삼성도 까딱 잘못하면 구멍가게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고 한다. 새롭게 떠오르는 스마트폰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한국의 휴대폰 업체 역시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 스마트폰은 손안의 PC다. 하드웨어 개발에만 전력을 쏟아 부은 한국은 소프트웨어 개발력에도 힘을 쏟아 부어야 한다. 비록 구글이나 MS같은 운영체제를 만들지는 못해도 그 운영체제에서 돌아가는 응용 소프트웨에라도 경쟁력을 가져야 스마트폰 시대에서 생존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2010년 2월에 세계 경영 연구원 IGM에 기고한 글입니다. 8개월이 지난 글이라는 점을 참고해주세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