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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포켓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중편입니다. 상편을 읽어 보고 싶은 분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포켓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상-



포켓몬스터라는 게임은 타지리 사토시가 만들었지만 이를 전세계적인 문화로 승화시킨건 이시하라 츠네카즈의 노력이 컸다.  그는 포켓몬스터가 발매되기 전부터 다양한 미디어를 통한 원소스 멀티유스 전략을 세웠다.  게임이 발매되기 전이었던 1995년 11월에 이미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포켓 몬스터를 만화로 연재하기 위해서 코로코로 코믹스를 발행하는 소학관을 직접 찾아간다.   코로코로 코믹스는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대상으로 발행하는 만화 전문지로 매달  180만부를 넘게 발행하는 인기잡지였다.  코로코로 코믹스는 단순히 만화만 연재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나 취미와 관련된 소식도 전하면서 초등학생들의 관심사와 유행을 선도하였다.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코로코로 코믹스의 부편집장인 쿠보 마사카즈에게 포켓몬스터 게임을 보여주면서 잡지와 연계된 다양한 사업을 논의 한다. 쿠보 마사카즈는 처음 캐릭터를 보고서 95%가 남자 구독자인 코로코로 코믹스에 합당한가 의구심을 가졌지만 통신 케이블을 이용한 게임방식에 매료되어 적극적으로 포켓몬스터를 밀어주기로 한다.  1996년 2월 28일 코로코로 코믹스 4월호에서 포켓몬스터 만화가 연재 되면서 서서히 게임의 인기도 오르게 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곳에서 포켓몬스터의 인기를 급속도로 끌어올리는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원래 포켓 몬스터는 150마리의 몬스터를 모으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소수의 몇몇 사람들에게만  151번째의 새로운 몬스터가 발견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처음에는 제작자들도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나중에 자체 조사를 진행해 보니 프로그래머중에 한명이 회사에 보고를 하지 않고 임의로 몬스터를 하나 추가했던 것이다. 원래는 테스트를 위해서 넣은 것이었는데 정상적인 플레이로는 절대로 등장할수 없는 몬스터였지만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소수의 몇사람에게만 등장했던 것이다.  비밀의 몬스터가 존재한다는 입소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은  151번째의 몬스터를 획득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다.  포켓몬스터 자체가 150마리의 몬스터를 모아서 도감을 완성한다는 게 목표였고 이를 완수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영웅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남들이 가지지 못한 또 다른 151번째의 몬스터를 가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특별해질수 있는 기회였다. 

 이런 소식은 코로코로 코믹스에도 전해졌다.  잡지 구독자들로부터 151 번째 몬스터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묻는 문의 전화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시하라 츠네카즈를 통해서 진상을 알게된 부편집장 쿠보 마사카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린다.  코로코로 코믹스에서 엽서를 보내준 사람중에 100명을 추첨해서 151번째 몬스터 뮤를 선물해주는 이벤트였다. 그런데 뮤를 선물 받고자 응모를 한 사람이 무려 78000명에 이르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이벤트 덕분에 포켓몬스터의 인지도가 일본 전체로 높아지면서 게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미디어 믹스 전략의 위력을 새삼 확인한 코로 코로 코믹스와 포켓몬스터 관계자는 더욱 긴밀한 관계가 되어서 함께 공동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마침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포켓 몬스터를 카드 게임으로 개발하고 있었다. 원래 닌텐도는 화투와 트럼프로 성장한 회사였던 만큼 카드 게임을 만드는건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이시하라 츠네카츠가 카드게임에 대한 기획안을 가지고 간 곳은 닌텐도가 아니라 일본의 대표적인 출판사인 리쿠르트였다.   이는 리쿠르트와의 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염두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전략적 사고였다. 그래서 제조는 닌텐도가 하고 판매는 리쿠르트의 자회사인 미디어 팩토리가 대행하는 체제가 만들어졌다. 물론 포켓몬 카드 게임의 출시를 가장 먼저 알린곳 은 코로코로 코믹스를 통해서였고 책을 구입한 사람에게는 공짜로 포케몬 카드를 나누어주는등의 각종 이벤트를 함께 진행했다.

사실 게임이 발매된 1996년까지만 해도 포켓몬스터는 보통의 게임중에 하나였고 그나마 초등학생 남자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 코로코로 코믹스의 부편집장인 쿠보 마사카즈는 포켓몬 캐릭터를 여자아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수 있는 방안으로써 에니메이션을 생각한다.  포켓몬스터를 에니메이션으로 만들자고 하자 원작자인 타지리 사토시와 닌텐도는 반대를 했다.  자칫 서두르다가 에니메이션의 수준이 떨어질 수 있고 이로인해서 포켓몬스터의 이미지에 타격을 줄수도 있다는 우려때문이었다. 하지만 쿠모 마사카즈는 앙케이트 조사를 근거로   타지리 사토시와 닌텐도를 끈질기게 설득해서 겨우 에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판권을 얻게 된다.

그렇게 제작된 포켓 몬스터 에니메이션은 1997년 4월 1일에 방영되기 시작하여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고 포켓 몬스터 관련 상품들도 덩달아 팔리기 시작했다. 에니메이션의 효과로 초등학생 여자아이들도 포켓몬스터를 알게 되었고 게임의 인기는 서서히 사회적인 붐으로 발전해가면서 관련 상품도 인기리에 팔리기 시작했다. 포켓몬 카레가 4800만개가 팔리더니 봉제인형이 40만개를 손바닥 피카추우는 218만개 그리고 에니메이션 주제가가 185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할 정도로 대히트를 기록한다.  영화역시 6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48억엔이라는 수입을 얻게 된다. 특히 발매 초기에 잠잠했던 포켓몬 카드 게임의 경우 에니메이션의 인기 덕에 판매고가 급상승하였고 2000년도에 누적판매량 10억장을 돌파하였다.  당시 조사에 의하면 97%의 아이들이 포켓몬 카드를 알고 있었고 실제로 71%의 아이들이 상품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끈다.  물론 게임 포켓몬스터의 판매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오리지널 포케몬의 경우 천만개를 돌파했다.  그 때까지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렸던 게임이 650만장을 판매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기록이었다.

일본에서 포켓몬스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닌텐도는 해외로 눈을 돌린다. 포켓몬스터의 성공을 통해서 닌텐도는 한가지 교훈을 얻었다. 캐릭터의 힘은 친숙함과 익숙함에서 온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는 동시 다발적으로 노출되면 그만큼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닌텐도는 일본에서의 영광을 해외에서도 재현하려면 1998년 당시 일본의 모습처럼 어디를 가나 포켓몬스터가 보여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특히 미국은 광활한 영토를 자랑하기 때문에 단기간내에 사회현상을 불러일으킬려면 강력한 마케팅 계획이 필요했다. 그래서 닌텐도는 미국내에서 각 분야별로 최고의 회사들을 파트너로 삼았다. 에니메이션은 4kdis사와 제휴를 하였고 영화는 워너브라더스를 장난감은 하스브로 그리고 카드 게임은 위자드사와 협약을 맺는 등 가능한 많은 협력자를 모으려고 했다.

<다음으로 포켓 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하편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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