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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몰리뉴는 새로 게임회사를 창업하면서 우선 회사이름을 게임회사와 어울리는 볼프로그(Bullfrog )로 개명하기로 한다. 그는 뭔가 세상을 깜짝 놀랠만한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렸다. 개미들을 괴롭히며 자신이 그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절대자의 기분과 느낌을 게임에 적용하면 어떨까 하고 고심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컨셉을 확대 발전시켜서 게임 플레이어가 신이 되어서 세상을 다스리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을 해보았다.


이렇게 해서 신이 인간생활에는 직접 개입하지는 않지만 주변환경이나 날씨등의 변화를 통제하면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지켜보는 갓 게임(God Game)을 제작하게 된다. 이게임의 원래 제목은 크리에이션(CREATION)이었으나 게임을 유통해주기로 계약한 EA의 마케팅 담당자인 죠스 엘리스가 파퓰러스라는 새로운 게임 이름을 제안한다.


처음 파퓰러스라는 소리를 들은 피터 몰리뉴는 마침 영국의 유명한 여론조사 기관의 이름과 똑같은 것을 알고서는 게임제목이 게임의 내용을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하고 게임 제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파퓰러스는 선한 신의 은총을 받는 인간종족이 악한 신을 숭배하는 다른 종족들과 싸워서 이기는 게임이다. 게임유저는 선한 신이 되어서 건물을 세우고 주변 환경을 조종할 수 가 있다. 플레이어가 직접적으로 인간들을 조종하지는 않지만 인간종족들은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어서 선한 신의 움직임에 따라서 번성하거나 혹은 망하기도 한다.

 

 

 특히 나쁜 신도 자기의 종족을 가지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선한 신의 종족 지역을 침략을 한다. 이러한 매커니즘 덕분에 최초의 실시간 전투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물론 파퓰리스 이전에 실시간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파퓰러스와 거의 동시기에 출시되었으며 게임으로써의 가치는 파퓰러스가 월등히 뛰어났다.


 또한 400백만 장이라는 판매고를 통해서 시장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실시간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의 원조로 파퓰러스를 뽑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 보느 스카이 뷰 화면은 유저가 신이 된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 손색이 없었다. 마우스에 따른 자연스런 카메라 앵글의 변화는 당시로써는 가장 독창적이고 신선한 게임 시스템 중에 하나였으며 이미 기존의 게임과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하였다. 그리고 이런 카메라 뷰와 인터페이스는 나중에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포퓰러스와 가장 많이 비교되는 것은 전투 게임이 아니라 심시티였다. 도시 건설의 부분에서 많은 부분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과거 듄이나 스타 크래프트가 일본에서 소개될 때는 심시티와 같은 도시 시뮬레이션 장르로 소개 될 정도였으니 그 두 게임의 비교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심시티도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  여러 가지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전투라는 측면에서 특화가 된 실시간 전투시뮬레이션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그 장르의 탄생에는 파퓰러스가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보여진다. 이미 앞에서 얘기했지만 세계 3대 크리에이터로 윌라이트가 아니라 피터 몰리뉴가 뽑혔느냐의 의문은 후대에 끼친 영향을 보고 평가한 것으로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갓 게임이라고 불리는 그 시스템은 한때 게임계의 주류였던 실시간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의 큰 영감을 제공함으로써 피터 몰리뉴의 명성을 더 끌어 올렸다고 생각된다. 또한 경영시뮬레이션 게임인 테마파크 역시 시스템 대부분을 파퓰러스의 것을 계승하였다. 그리고 그 테마파크가 오늘날의 롤러 코스터 타이쿤 같은 게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생각하면 역시 파퓰러스의 위대함은 다시 한번 확인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 3대 게임 크리에이터라는 타이틀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그 말이 유행했던 90년대 중반을 기준으로 한다면 피터 몰리뉴가 윌라이트를 제치고 세계 3대 크리에이터로 불리 운 것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파퓰러스의 대성공으로 일약 세계적인 게임 개발자가 된 피터 몰리뉴는 많은 사람들에게 락스타와 같은 대접을 받는다. 포퓰러스 이전 까지만 해도 피터 몰리뉴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는데 파퓰러스 이후 그는 피자집도 마음 데로 못 갈 정도로 유명인이 된다.

 

 

 


획기적인 게임 방식으로 많은 사람의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서 게임 개발 수준이 떨어졌던 영국에서 세계적인 게임이 등장하자 영국과 유럽에서 그를 집중 조명한 덕분이었다. 이에 호응하듯 파워몽거, 신디게이트, 매직카펫을 연달아 히트하며 볼프로그는 유럽 최고의 회사로 급성장 한다. 그리고 불프로그는 1996년에 세계적인 퍼블리셔 업체인 EA와 전략적 관계를 맺는다. 20명이었던 직원은 어느덧 100여명에 육박하게 된다.


1997년에 그는 세계적인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던전키퍼를 제작 중이었다. 던전키퍼는 플레이어가 선한 주인공이 되어서 악을 물리친다는 기존 통념을 깨뜨린 게임으로 유저들의 기대치가 매우 높았다. 던전 키퍼에서는 게임유저가 선한 주인공이 아닌 악당이 되어서 영웅들을 괴롭히는 게임으로 기존에 없던 게임 개념이었기 때문에 게임 제작자들이 게임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90명이나 되는 던전키퍼의 제작인원이 그의 머리 속에 다 들어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게임을 팀원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노력하였으나 대규모 화된 게임팀안에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가 무슨 게임을 만드는지도 모르는 팀 내의 다른 개발자들을 보면서 한심하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일일이 게임 내용을 설명할 때면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개발팀이 20명 내외의 사람일 때는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면서 게임을 설명하고 서로 이해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게임을 개발하는 느낌이었다. 가족적인 느낌으로 게임 개발 자체가 즐거웠지만 100명이나 되는 개발팀에서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가 없었다. 마음은 황폐해지고 오직 돈을 위해서 정해진 일 만 하는 회사 환경이 그를 옥죄었다. 그는 초기의 불프로그 시절이 그리웠다. 개발자 모두가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고 한마음이 되어서 공동의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던전키퍼를 개발할 때가 게임 개발인생에 있어서 가장 괴로울 때라고 밝힐 정도로 가장 힘든 시기였다. 결국 그는 던전 키퍼가 완성되고 나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EA에게 말을 하였다. EA는 그의 마음을 이해했고 피터 몰리뉴의 주식 전체를 인도 받기로 한다. 던전 키퍼는 불프로그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두지만 그는 만족스럽지 못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피터 몰리뉴는 EA에 넘긴 주식 덕분에 1997년 그 해의 최고 고소득자 명단에 오른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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