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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유의 AM2 연구소는 가정용 게임이 아니라 오락실의 아케이드 게임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세계최고의 기술력으로 세계최고의 게임을 개발한다는 그들의 좌우명 되로 AM2 연구소는 버추어 파이터 이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최고의 게임 개발팀으로 공인 받게 된다. 세가가 AM 연구소의 이러한 명성을 그냥 놔둘 리가 없었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 부진했던 세가의 경영진은 AM2연구소에 가정용 게임기인 드림캐스트 전용으로 게임을 개발하도록 지시를 내린다. AM2 연구소는 이로써 첫 번째 가정용 콘솔 게임 전용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사실 이것 때문에 AM2 연구소에서는 여러 가지 논쟁을 벌여야 했다. AM2 연구소가 콘솔 전용 게임을 개발하게 된다는 것은 하드웨어의 제약 없이 무조건 세계 최고 기술로 세계최고의 게임을 만든다는 기본 철학을 흔들어 놓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즈키 유는 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지원해줄 것이라는 말에 세가 본사의 제안을 받아 들이게 된다.


세가는 소니와의 게임기 전쟁에서 새턴이 플레이 스테이션이 밀린 것은 파이널 판타지7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500만대까지 판매량이 비슷했지만 롤플레잉 게임 대작 파이널 판타지7 이 전세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이널 판타지 7을 능가하는 드래곤 퀘스트7은 새턴으로 개발 중 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소니에게 빼앗기고 결국 세가는 새로운 차세대 게임기 개발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다른 회사보다 먼저 차세대 게임기인 드림캐스트를 개발하는 것 자체가 세가는 게임기 전쟁에서 패배를 시인하는 것이었고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상황에서 내놓은 최후의 카드였다. 드림캐스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대작 롤플레잉 게임을 개발해야 하는데 다른 게임개발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결국 세가 경영진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의 게임 개발 연구팀인 AM2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세가는 파이널 판타지를 능가하는 게임을 개발해달라고 스즈키 유에게 간청하였다. 결국 그는 세가경영진의 요청을 받아 들여서 드림캐스트 전용 게임을 프로젝트 버클리라고 명명 하면서 비밀스럽게 게임 개발을 진행한다. 처음 세가 경영진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그가 버추어 파이터의 캐릭터를 활용한 버추어 파이터 RPG를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의미에서 그 말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프로젝트 버클리는 버추어 파이터를 개발하면서 생각했던 게임이기 때문이다. 93년도에 스즈키 유는 실감나는 격투 액션 게임 개발을 위해서 실제 무술을 체험하고 수련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국에 갔었다. 그는 버추어 파이터처럼 무술 그 자체에 비중을 둔 것 이외에 스토리가 있는 무술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다.


한마디로 스토리가 있는 버추어 파이터가 초석이 되어서 발전한 것이 바로 프로젝트 버클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 버클리는 기존의 게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장르의 게임으로 기획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기획한 게임을 팀원에게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심지어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동영상까지 제작해서 팀원간에 의견을 조율해 갔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프로젝트 버클리는 쉔무로 게임 타이틀을 정하게 되고 장르는 F.R.E.E라고 하였다. F.R.E.E는 Full Reactive Eyes Entertainment의 약자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반응하는 완전한 엔터테인먼트 게임이라는 뜻이었다. 게임 장르를 F.R.E.E로 정한 것은 게임 역사상 최고의 자유도를 선보이겠다는 의지의 소산이었다.


 쉔무는 이를 위해서 현실세계와 똑같은 세계를 게임속에 창조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로 마을 하나를 통째로 모델링했으며 NPC(Non Player Character)만 해도 천명이 넘었다. 쉔문의 NPC는 단순히 정해진 길만 왔다갔다하면서 길을 안내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쉔무의 NPC는 모두 인공지능으로 구현된 자신만의 삶과 스케쥴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기본 게임 스토리만 있을 뿐 게임 내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였다. 심지어 게임에 등장하는 오락실에서 게임을 할 수도 있고 도박장에 들어가서는 도박도 할 수 있다. 또한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과 아이템들은 실제 사용할 수도 있었다. 결국 쉔무라는 게임 안에 우리의 실 세계를 그대로 구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세가는 무려 700억 원 이나 되는 돈을 투입하여 제작했다.


쉔무는 그전의 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게임이었다. 매주 공개되는 스크린샷의 그래픽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화려한 그래픽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쉔무에 열광하였다. 버추어 파이터로 세계적인 게임 크리에이터로 명성을 쌓은 그가 자신 있게 내놓는 작품이니 사람들의 기대치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만 갔다. 어떤 사람도 쉔무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감 속에서 쉔무가 1999년 12월에 전격적으로 발매된다. 하지만 쉔무의 결과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일본에서 40만장 해외에서는 6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대 실패를 기록하고 만 것이었다. 이 결과는 세가로써는 치명적이었다. 드림캐스트의 최고 킬러 소프트로 평가받던 쉔무의 몰락은 가정용 게임기 시장 철수라는 극단의 사태로까지 몰고 갔다.

 쉔무의 실패는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우리가 사는 실 세계를 그대로 게임 속에서 한번 구현해보겠다는 무리한 과욕이 불러온 것이었다. 현실과 똑 같은 세계를 게임에 구현했다고 누가 그것을 좋아하겠는가? 우리는 항상 실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뭐 하러 실 세계와 똑 같은 세상을 게임 안에 구현했다고 해서 누가 게임을 구매 하겠는가? 쉔무는 확실히 기존의 게임과는 확실히 다른 대작이었지만 문제는 재미가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은 게임이었다.
 궁극의 자유도를 가지는 윌 라이트(심즈의 개발자)의 게임도 항상 게임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게임제작의 제 1원칙으로 재미를 항상 염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즈키 유는 게임의 세계관과 시스템에 매달리면서 게임의 재미를 잠시 잊은 것이 아닌가 싶다. 게임유저가 게임을 실행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이 결국 게임성 자체를 감소시켰던 것이었다.

결국 쉔무의 실패로 회사자체가 엄청난 위기에 빠져들었지만 스즈키 유 본인도 큰 고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것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AM2연구소와의 결별이었다. 그것은 그가 무장해제를 당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세가의 가장 유력한 차기 사장 후보 중 하나였던 그는 결국 강제로 쫓겨나다 시피하여 디지털 렉스라는 회사로 분사가 되어 좌천당하고 말았다. 세가의 자회사이지만 디지털 렉스의 자본금 10억원도 스즈키 유 본인이 부담해야 할 정도로 세가로부터 찬밥 신세를 받게 된 것이었다.


 이런 그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준 것은 2003년도 미국 인터랙티브 아츠앤 사이언스 학회이다. 그는 동양인으로는 세 번째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면서 그 동안의 구겨진 자존심을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때부터 저주받은 명작 쉔무를 온라인 게임으로 제작할 것을 결심한다. 그는 자신의 재기는 자신을 실패로 몰고 간 쉔무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원래는 한국 제이씨 엔터테인머트와 공동제작이었으나 현재는 대만의 게임 회사와 공동 제작 중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서 한국에서 그에 대한 구설수가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비즈니스에 관한 문제는 회사 당사자들만이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다만 게임 마니아로써의 개인적인 바램은 쉔무에서 펼쳐졌던 멋진 세상이 재미를 갖추어서 온라인으로 승화되기를 기원한다.  그 위대했던 스즈키 유가 이렇게 저물어가는 것은 너무 아쉽다. 행온과 버추어 파이터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듯이 그의 도전정신이 응집된 새로운 게임을 통해서 그가 명장으로 다시 부활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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