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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아무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미지의 초원을 걸어가는 느낌이다.

파이널 환타지의 아버지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을 전세계에 알린 명장 게임 크리에이터이다. 파이널 환타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드래곤 퀘스트의 인기에 영합한 아류 작이라면서 비난을 하였다. 하지만 실제 게임을 플레이 한 사람들의 입 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최고의 롤플레잉 게임 시리즈로 거듭나게 된다.


파이널 환타지는 드래곤 퀘스트와 여러 가지 점에서 비교가 된다. 드래곤 퀘스트는 기존의 캐릭터와 게임시스템을 계속해서 유지하면서 정통성을 내세우는데 비해서 파이널 환타지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드래곤 퀘스트에서의 세계관과 캐릭터가 정해져 있지만 파이널 환타지는 세계관과 캐릭터자체가 계속해서 달라진다.


그래서 파이널 환타지는 그 제목만 똑같을 뿐이지 각 시리즈마다 다른 주인공과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파이널 환타지 시리즈가 게임계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킬러 소프트의 파워가 과연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1997년이 시작될 때만 해도 32비트 가정용 게임기인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의 게임기 전쟁은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팽팽하였다. 마침 두 게임기는 발매된 지 2년째를 맞아서 나란히 500만개 돌파를 앞두고 있었다. 과연 두 게임기중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뉘었고 이렇게 치열한 경쟁은 스포츠 경기를 보듯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게임에 의해서 이 전쟁은 끝나고 만다. 그것이 바로 파이널 환타지 7이다. 패밀리와 슈퍼 패미컴으로 등장했던 파이널 환타지 시리즈는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하기에 당연히 닌텐도의 게임기로 개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파이널 환타지7는 닌텐도의 차세대 게임기인 닌텐도 64로 개발중 이었다. 하지만 파이널 환타지 시리즈의 최종 책임자인 사카구치는 이제 자신의 스토리 텔링 능력을 더욱 비주얼하게 표현하고 싶어했다. 제작비용에 부담이 큰 롬팩에 들어갈 수 있는 용량은 한정되어 있는 만큼 640MB가 넘는 고용량을 저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는 CD-ROM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다.


 그래서 닌텐도가 차세대 게임기의 저장매체로 롬팩을 사용할 것이라는 발표를 하자마자 사카구치는 히로노부는 자신의 분신과 같은 게임인 파이널 환타지를 플레이 스테이션으로 발매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97년 1월 31일에 역사적인 파이널 환타지 7의 발매가 이루어진다.


2D에서 3D로 변신한 파이널 환타지 7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스토리에 따라서 함께 제공하는 동영상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이상의 감동을 전해주었다. 파이널 환타지 7의 발매일은 전세계에 새로운 게임 패러다임을 선포하는 날이었다. 이제 2D의 시대는 가고 진정한 3D의 시대가 왔음을 알림과 동시에 새턴은 이제 그 운명을 다했음을 암시하는 것과 같았다.


파이널 판타지 7의 발매 이후 세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게임기 개발을 시작해야 했다. 사실상 게임기 시장에서 패배했음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세가는 파이널 환타지 7 발매 이후 불과 1년 10개월 후에 차세대 게임기인 드림캐스트를 발매하고 만다. 그리고 파이널 환타지 시리즈에 뒤지지 않는 게임 소프트를 만들기 위해서 세가가 자랑하는 게임 크리에이터인 스즈키 유에게 700억이 넘는 돈을 투자했지만 결국 시장에서 패배하고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 전격 철수를 선언하게 된다.


세가에게 있어서 파이널 환타지 시리즈는 악몽과도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킬러 소프트가 게임기 시장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세계 게임 마케팅 교과서에서 파이널 환타지 7은 컨텐츠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가장 흔하게 언급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또한 파이널 환타지 7은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이 미국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 번째 게임이기도 하다. 그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롤플레잉 게임은 자유도가 떨어져서 미국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선입관을 주었던 장르이다. 게임의 자유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인들의 입장에서 일본의 롤플레잉 게임은 단지 정해진 플레이만 해야 하는 어드벤쳐 게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입관을 파이널 환타지 7이 깨뜨린 것이었다. 그 기반에는 아름다운 그래픽과 훌륭한 스토리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비록 자유도가 떨어지지만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캐릭터와 화려한 배경 그리고 감동적인 스토리가 어울어 지면서 새로운 재미를 경험하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덕분에 파이널 환타지 7은 미국에서만 무려 20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전세계에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의 최고봉은 바로 파이널 환타지 시리즈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일본내에서의 판매량과 인기에서는 드래곤 퀘스트시리즈가  앞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시장에서는 파이널 환타지가 더 높은 평가를 받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일본이 아닌 해외에서 드래곤 퀘스트의 크리에이터 호리이 유이지는 몰라도 파이널 환타지의 크리에이터 사카구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이렇듯 치열한 게임기 시장을 종식시켰다는 것과 일본의 롤플레잉 게임을 세계에 알렸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카구치의 최대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업적이 제대로 평가를 받아서 그 많고도 쟁쟁한 일본 게임 크리에이터를 모두 제치고 미야모토 시게루 다음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당되는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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