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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퀘스트의 놀라운 성공의 뒷 배경에는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드래곤 퀘스트는 발매 4개월 전부터 기대되는 게임 1위였다. 드래곤 퀘스트를 개발중인 에닉스는 무명의 회사였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일본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만화잡지인 소년점프에서 밀어주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드래곤 퀘스트의 아버지 호리이 유이지는 소년점프에서 원고를 기고하는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소년점프 편집부 사람들과는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마침 소년점프에서는 게임 관련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자 호리이 유이지에게 지금 만들고 있는 드래곤 퀘스트의 게임 제작 과정을 원고로 써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호리이 유이지는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드래곤 퀘스트의 게임 제작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매주 소년점프에 기고하였다. 소년점프 편집부는 이 원고가 반응이 좋자 상부 상조의 정신으로 드래곤 퀘스트를 적극 홍보를 해준다.


최고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소년점프의 파괴력은 정말 대단했다. 무명의 게임 제작사에서 만드는 드래곤 퀘스트는 나오기 전부터 이미 기대 순위1위를 기록할 정도로 최고의 화제를 뿌렸던 것이다. 사실 드래곤 볼의 작가인 토리야마 아키라가 드래곤 퀘스트의 캐릭터를 그려준 것도 소년점프의 편집부에서 강력하게 추천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소년 점프가 밀어준 덕분에 드래곤 퀘스트는 발매와 동시에 매진에 매진을 거듭하여 당시로써는 상상하기도 힘든 숫자인 15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홍보도 없는 상태에서 발매를 시작한 파이널 환타지가 처음부터 잘 팔릴 것이라고 생각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조용했던 시장 반응은 실제 게임을 플레이 했던 사람들이 모이는 중고시장을 중심으로 파이널 환타지에 대한 입 소문이 서서히 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파이널 환타지는 52만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리면서 사카구치가 약속 했던 드래곤 퀘스트 다음의 2등이라는 목표는 달성하게 된다. 결국 게임의 성공으로 인해서 사카구치의 학력은 영원히 대학 중퇴로 남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파이널 환타지가 성공을 하자 대학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게임개발에 전념하게 된다.


그는 이런 기세를 몰아서 1년 후 1988년에 파이널 환타지를 발매하며 76만장을 판매하더니 1990년 4월에 발매한 파이널 환티지3는 140만장을 판매하며 밀리언 셀러에 등극하게 된다. 이제 파이널 환타지는 명실공히 최고의 게임 시리즈가 되면서 드래곤 퀘스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었다. 파이널 환타지는 두 개의 팀이 동시에 게임을 개발한다. 시리즈가 홀수인 팀에서는 게임에 많은 실험과 시도를 통해서 혁신적인 게임개발을 목표로 하고 짝수인 팀에서는 기존 시스템에 더 안정화를 이루고 스토리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이것은 파이널 환타지 7과 파이널 환티지8을 보면 금방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이널 환타지 7에서는 혁신적인 3D와  ATB(액티브 배틀 시스템)를 시도하였고 파이널 환타지8에서는 기존 게임시스템에 안정성을 더하고 시나리오에 감동을 더 하였다.


파이널 환타지 시리즈는 시리즈가 거듭할수록 인기에 가속도를 붙여온 게임이다.  패미컴 시절에 100만장에서 슈퍼 패미콤 시절에는 200만장을 그리고 플레이 스테이션에서는 드디어 300백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미 언급하였다시피 특히 플레이 스테이션에서는 게임의 역사를 바꿀 정도로 영향력 있는 게임이 되었다. 파이널 환타지7는 킬러소프트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가를 보여주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게임역사에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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