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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환타지의 성공 이후 스퀘어는 일본 최고의 게임 업체가 되어 있었다.  실속은 에닉스였지만 외형적인 측면에서는 스퀘어가 최고였다. 에닉스는 오직 드래곤 퀘스트 게임하나에 매진하고 있는 동안 스퀘어는 다양한 게임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개발하였다. 로맨싱 사가, 크리노  트리거, 성검 전설등 많은 프렌차이즈 게임들을 보유하게 되면서 회사의 자금도 탄탄하여 졌다.  그리고 이러한 안정과 성공은 사카구치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계기가 된다.


원래 스토리가 있는 게임에서 강점을 보였던 그는 이제 100% 스토리로만 이루어진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바로 그때 그가 애플컴퓨터와 드래곤 퀘스트를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을 다시 한번 겪게 되니 그것이 바로 토이 스토리이다. 100% 컴퓨터 그래픽 에니메이션인 토이 스토리를 본 사카구치는 자신도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서 영화를 만들 결심을 한다.


그는 당시 일본의 컴퓨터 그래픽은 대부분 광고에 들어가는 효과 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퀄리티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스퀘어 USA를 설립하고 세계에서 날고 긴다는 일류 급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을 고용하기로 결심한다. 컴퓨터 그래픽에서 인간과 똑 같은 캐릭터를 창조하자는 것이 그의 당초 목표였다. 사실 이것은 엄청난 도전이었고 도박이었다.


 인간과 유사한 컴퓨터 그래픽을 구현하겠다는 것 자체가 너무 원대했고 영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그가 파이널 환타지라는 이름 하나만 믿고서 엄청난 제작비가 드는 풀 CG영화를 만드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사실 이런 무모함 덕분에 파이널 환타지 시리즈가 성공했다고 보는 스퀘어는 그의 영화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준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재앙으로 돌아오고야 만다. 그는 감독으로써 영화에 필요한 장면의 그래픽을 적절한 퀄리티에서 타협할 줄을 몰랐던 것이다. 오직 장인정신으로 완벽한 화면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것이다. 그는 스케쥴을 생각해서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그림만 그리도록 해야 했는데 남들은 생각하지 않을 나무의 잎사귀까지 그리도록 한 것이었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필연적으로 자신의 그림을 더 완벽하게 그리고 싶어서 최대한 세세하게 온갖 신경을 써서 그리기 마련이다. 이때 그는 단호하게 필요한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을 분류해야 했는데 그는 돈보다는 장인정신을 높이사고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주고 격려를 했던 것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한 사람이 화면에 나오지도 않는 잎사귀를 3개월 동안 그려도 사카구치는 아무런 터치도 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스퀘어 USA의 분위기는 최고였지만 영화제작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났다.  22개국에서 스카우트 해온 175명이 넘는 일류 스탭들과의 영화제작 기간이 4년을 넘어서면서 제작비는 어느덧 1700억원이 넘어 섰던 것이다.


영화가 완성되자 파이널 환타지라는 네임 밸류 덕분에 미국에서만 2400관이 넘는 극장에서 영화가 개봉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처절한 실패만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정말 사람의 몰락은 한 순간이었다. 회사의 몰락도 눈깜짝할 새였다. 파이널 환타지가 미국에서 먼저 개봉하고 전세계에서 영화가 차례로 개봉중이었던 2000년 10월에 스퀘어의 사장이었던 스즈키씨는 영화가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전격적으로 사표를 제출했던 것이다.


 스퀘어는 이미 영화제작중에 심각한 재정난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화려했던 스퀘어가 언제 어떻게 망할지도 모르는 바람 부는 언덕 위의 등불과 같은 존재가 된 것 이었다. 다행히 스퀘어의 파이널 환타지 시리즈 덕분에 게임기 전쟁에서 승리한 플레이 스테이션이 의리를 앞세워 1500억원을 긴급 지원해주면서 스퀘어의 위기는 일단락 된다.


하지만 스퀘어의 상징이자 아이콘이었던 사카구치는 그야말로 사면 초가였다. 영화 제작비 1700억원 중에서 회수된 돈은 고작 500억 원에 불과했다. 스퀘어에서는 1200억 원의 적자 원흉인 그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스퀘어를 살릴 수 있는 것 또한 오직 사카구치의 파이널 환타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는 이때 파이널 환타지의 온라인화에 관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주총회가 가만있지 않았다. 실적이 부진하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주식회사의 숙명이었다. 주주총회 에서는 누군가 가 영화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계속해서 압박하였다. 결국 주주들의 거센 요구로 2001년 2월 사카구치는 사실상 해임을 당한다.

 

<아하!>
사카구치는 다른 작품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는 그 점을 숨기지 않는다. 트랜실바니아라는 어드벤쳐 게임을 보고서 각종 어드벤쳐 게임을 개발한 그는 드래곤 퀘스트에 감동을 느끼고 파이널 환타지를 만든다. 급기야 토이 스토리를 보고서 영화제작에도 뛰어 들었다. 또한 파이널 환티지 11을 온라인 게임으로 개발한 것도 에버 퀘스트라는 MMORPG게임을 재미있게 하고 나서 개발을 결심했다.
</아하!>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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