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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라이트는 게임이 단순히 놀이가 아닌 그 이상이 되기를 바랬다. 그는 자신이 완성시킨 발겔링만의 습격을 실제로 게임플레이 하는 것보다는 만드는 과정이 훨씬 재미있었던 체험을 곰곰이되씹어 보았다. 발겔링만의 습격을 제작할 때 게임의 배경으로 쓰이는 사물들을 마음 데로 배치하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의 일종인 맵 에디터를 가지고 스테이지를 디자인 했던 기억을 통해서 그는 새로운 결론을 내린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만드는 창조의 순간이야 말로 참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그날 이후 게임 플레이어가 게임속에서 직접 뭔가를 만들면서 창조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는 새로운 게임 개발을 위해서 수많은 책을 읽었다. 그리고 도시역학과 시스템 역학의 아버지로 불리 우는 MIT 전자공학 교수인 제이 포레스터의 책들을 통해서 많은 아이디어들을 정리 할 수 있었다.


제이 포레스터는 인구, 출생률, 부동산, 범죄, 공해 같은 20여개의 변수로 도시를 시뮬레이션하려고 시도 했었다. 윌라이트는 제이 포레스터가 50년대에 시도했던 도시 시뮬레이션을 게임으로 만들어 보기로 결심한다.
우선 윌 라이트는 반겔링만의 습격에서 사용했던 맵에디터를 수정해서 프로토 타입을 완성한다. 게임 내용은 플레이어가 도시의 시장으로 취임해서 학교, 병원, 운동장, 도로, 발전소, 공장 건설을 계획하고 시행해야 한다. 도시 시장으로 세금도 걷는 등의 여러 가지 공공 정책도 집행하는데 만약 도시를 잘 운영하면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이 이사 오고 여론조사도 높아지는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의 엔딩은 없었다. 도시가 발전해서 인구가 한없이 늘어났다고 해서 게임이 끝나는 일은 없는 것이다. 심지어 플레이어는 플레이 목표를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가 있었다. 만약 자신이 만든 도시를 망가뜨리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도 있는 것이었다.


약 6개월 정도의 제작을 통해서 윌 라이트는 반겔링만의 습격을 유통했던 브로더 번드 사람에게 게임을 직접 시연해 보였다. 반겔링만의 습격처럼 브러더 번드 사람들은 역시 게임에 호의적이었고 바로 계약까지 했다. 하지만 브러더 번드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는 이 도시건설 게임에 대해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가 이기고 지는지가 분명해야 게임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대한 목표가 명확해지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목적이나 목표도 없이 단지 플레이어가 도시에 원하는 건물들을 원하는 곳에 건설 할 수만 있도록 한 것은 게임으로 볼 수 없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불과하다는 것이 브로더 번드 유통 관계자들의 주장이었다.


사실 그 말은 당시로써는 가장 상식적이고 정확한 지적이었다. 하지만 윌 라이트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그는 다른 게임 유통업체를 알아봐야 했다. 그는 미국에 존재하는 모든 게임 유통 업체를 쫓아 다녀야 했고 모든 곳에서 거절을 당해야만 했다. 그의 게임을 본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그의 게임에 어리둥절했고 심지어는 그의 면전 앞에서 모욕을 주기도 하였다.
그는 이렇게 당시의 게임에 대한 선입관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유통업체를 구하지 못한 그는 1987년까지 마이크로 폴리스로 명명된 이 도시건설 시뮬레이션 게임을 끊임없이 수정하며 오클랜드의 자기 아파트에서 혼자서 개발해야만 했다. 출시자체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게임 제작은 어려움에 봉착했고 그는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정말 고난의 시간이었다. 반겔링만의 습격으로 벌어놓았던 돈도 이제 서서히 바닥을 드러나기 시작했다.

 

평생의 친구를 만나다.

 

 그러던 어느 날 윌 라이트는 우연히 프로그래머가 모인 파티에서 평생의 친구를 만나게 되며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다. 바로 맥시스의 공동 창립자 제프 브라운이다. 제프 브라운은  게임관련 업종의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자신의 아파트에 파티를 주최했다. 우연히 제프 브라운의 옆자리에 앉게 된 윌 라이트는 자신이 현재 개발중인 게임이라면서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인 마이크로 폴리스를 얘기해 주었다. 제프 브라운은 그가 만들고 있다는 게임에 설명을 듣고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며칠 후에 제프 브라운은 그의 게임을 직접보고 바로 합류를 결심한다. 그는 당시 제프 브라운이 심시티를 보자마자 큰 흥미를 보이면서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을 하자 큰 힘과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 동안 많은 게임 유통업체에서 게임을 거절 당하면서 많은 자신감을 잃었고 결국 게임에 대해서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쓰레기통에 버려질 쓰레기 같은 존재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는 도로 우울한 상태였다. 그런데 바로 이때 제프 브라운이 나타난 것이다. 게임을 보고 순수하게 감동을 해주는 모습에 그는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지금도 제프 브라운을 영원의 친구라고 말 할 정도로 둘은 아직도 깊은 신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게임을 처음 보자 마자 게임에 대한 확신이 생겼던 제프 브라운은 회사를 만들어서 함께 제작하자고 설득한다. 윌라이트는 처음에 망설이지만 제프 브라운의 굳은 의지에 자신감을 얻고서 같이 맥시스를 만들게 된다. 맥시스라는 이름은 제프브라운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아침 여섯시 즉  SIX AM을 거꾸로 한 것이 바로 MAXIS가 된 것이다.


사실 제프 브라운과 함께 회사를 창업한 이후에 곧바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게임 제작장소가 윌 라이트의 집에서 조금 더 넓은 제프 브라운의 아파트로 바뀐 것이었다. 그리고 제작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자 프로그래머 몇 명을 더 추가하고 어셈블리로 작성됐던 마이크로 폴리스를 C 로 컨버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 게임의 이름도 마이크로 폴리스에서 심시티로 바꾸게 된다. 이미 다른 컴퓨터 하드웨어 업체에서 마이크로 폴리스라는 이름을 쓰기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심시티라는 이름은 당시 프로그래머로 일했던 마이클 브래머의 작품이었다. 그가 개발중인 게임에는 도시시장과 시민과의 관계가 중요한 게임이었다. 도시시장이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도시 시민들의 행동이 달라졌다. 마이클 브래머는 그런 도시 시민들을 심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그래서 심들의 도시라는 뜻에서 게임 이름을 심시티로 정한 것이었다. 드디어 대망의 1989년! 5년간의 작업 끝에 마침내 게임을 완성하게 된다.  당시에 많이 사용되었던 퍼스널 컴퓨터인 맥킨토시와 아미가 버전의 심시티를 발매하려 했으나 막상 게임을 포장할 돈이 없었다.  결국 그와 제프 브라운은 다시 한번 브로더 번드를 찾아간다.

 

<아하>
부끄러움이 많은 윌라이트
윌 라이트는 지금도 제프브라운과의 만남을 아주 신기하게 생각한다. 평소 부끄러움을 잘타고 내성적인 윌 라이트는 특히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낯을 많이 가렸다. 프로그래머들의 파티에 막상 가기는 했지만 그는 아무와 말도 못하고 멀뚱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파티를 주최한 제프 브라운이 옆에 앉았고 신기하게도 윌 라이트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게임을 청산 유수처럼 설명을 했던 것이다. 윌 라이트의 평소 성격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윌 라이트는 그때의 만남이야 말로 인연이고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하>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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