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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IT 기업들의 성공을 지켜볼때 주의할 점은 그들이 최초로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개발한 발명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시장의 창조자이지 세상에 없었던 물건을 발명하는 최초와는 거리가 멀다. 남보다 앞선 선구자라기 보다는 시장에서 환영 받는 상품을 만들어 시장의 리더가 되었고 그 결과로 소비자들의 생활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인도 여행 후에 인간의 물질 세계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고자 한 스티브 잡스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컴퓨터를 접근했고 편리하고 유용한 생활의 도구로써 컴퓨터를 재탄생시켰다. 닌텐도 역시 인간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하는 엔터테인먼트 장치로써 가정용 게임기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렇듯 애플과 닌텐도의 성공에서 가장 주목해야 부분은 그들이 상품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시장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해서 큰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도 있다. 대형 컴퓨터 시장을 장악했던 IBM의 CEO였던 토머스 왓슨(Thomas Watson)은 전세계에서 컴퓨터의 수요는 매년 다섯 대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IBM과 대형 컴퓨터시장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DEC의 CEO인 켄올슨은 가정에서 컴퓨터를 써야 할 이유가 한가지도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이들 업체는 애플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소형 컴퓨터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수 있는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용 컴퓨터터의 필요성을 과소평가하여 시장에 늦게 진출하는 뼈아픈 실책을 저지르고 만다. 결국 이러한 중대한 전략적 미스 때문에 IBM과 DEC는 화려한 영광을 뒤로 하고  실리콘 밸리의 작은 벤처기업들에게 농락당하고 만다. 특히 아이러니 한 사실중 하나는 대형 컴퓨터 시장을 호령했던 DEC는 가정용 컴퓨터 업체중 하니인 컴팩에 인수 당했다는 점이다.  


 상품의 가치와 중요성을 올바로 판단하지 못해서 이익을 얻지 못한 경우는 최초로 개인용 소형 컴퓨터를 만든 에드워드 로버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MITS라는 회사를 차려서 세계최초의 개인용 소형 컴퓨터 알테어(Altair) 8800을 개발하고 판매에 나섰다. 그가 소형 컴퓨터를 만들었다는 기사는 당시 제일의 컴퓨터관련 잡지인 파퓰러일렉트로닉스에 대서 특필되었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이다. 그는 알테어 8800의 탄생을 보고 곧 가정용 컴퓨터 시장의 시대를 예감했다. 그래서 다니고 있던 하버드 대학교를 그만두고 소프트웨어 사업에 뛰어든다. 이 시절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도 마찬가지였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알테어 8800을 사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 직접 부품을 구입해서 손수 만든 컴퓨터가 바로 애플 I 컴퓨터였다.


이렇게 디지털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들에게 컴퓨터에 대한 열정과 동기를 제시했던 알테어 8800의 개발자인 에드워드 로버츠는 컴퓨터가 그냥 괴짜들의 취미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사업을 더 크게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하루 빨리 회사를 팔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애플2 컴퓨터가 발표되었던 1977년 4월 16일 웨스트 코스트 컴퓨터 전시회에서 스티브 잡스는 가정용 컴퓨터의 성공을 확신하며 거대한 부스를 빌려서 대형 이벤트를 열고 적극적인 판촉전을 펼쳤지만 정작 최초로 소형 컴퓨터를 개발해서 많은 찬사를 들었던 에드워드 로버츠는 다른 회사의 기업가들에게 제발 자신의 회사를 사달라고 애원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게임계에서도 이와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 세계 최초의 게임 테니스 포투를 개발한 윌리엄 히긴보텀은 그것이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팔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조차 못했다. 그래서 그가 세계 최초로 발명한 컴퓨터 게임인 테니스 포투는 상품화되지도 못하였고 오랜 시간  연구소의 창고에 쳐 박혀 있는 신세가 되었다. 그 후 스티븐 러셀이라는 MIT 공대생이 친구들과 스페이스 워를 공동으로 개발해서 미국 전역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큰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그 역시 비디오 게임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그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게임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그는 게임을 시장에서 팔 수 있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였고 단순히 게임을 만들었다는 그 자체에 만족할 뿐이었다.


이렇게 게임이 잊혀져 가는중에 처음으로 비디오 게임을 상용화할 생각을 한 사람은 독일 출신의 천재적인 발명가 랄프베어이다. 그는 미국의 모든 가정에 텔레비전이 있으니 이를 이용한 상품을 개발하고자 했다.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바로 텔레비전에 연결해서 사용하는 가정용 게임기였다. 랄프베어는 미국 정부로부터 가정용 게임기에 대해서 최초로 특허까지 공인 받었고  게임을 시장에서 판매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세계최초의 가정용 게임기인 마그나복스사의 오딧세이(Odyssey)는 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이 게임기를 통해서 야마우치 히로시는 놀이와 기술이 결합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실제로 야마우치 히로시는 일본 지역에서 오딧세이의 판매권을 획득하고 게임사업을 본격화 한다. 그런데 정작 랄프베어는 게임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정확하게 했지만  가치를 평가하는데 있어서는 무척 인색했다.


놀란 부쉬넬이라는 아타리의 창업자는 랄프베어의 가정용 게임기에 영감을 얻어 여러 가지 게임을 개발했다. 이에 분노한 랄프베어는 놀란 부쉬넬을 법원에 고발한다. 그러자 놀란 부쉬넬은 랄프베어에게 70만 달러에 화해하자고 제의 한다. 그러자 랄프베어는 놀란부쉬넬이 제시한  금액에 크게 만족해서는 기꺼이 합의를 본다. 하지만 놀란 부쉬넬의 아타리사는 랄프베어가 예상치 못한 큰 성공을 거둔다. 놀란 부쉬넬의 아타리는 퐁의 히트 이후 승승장구하였고 이로 인해서 놀란 부쉬넬 혼자서 벌어들인 수입만해도 2천 만 달러가 넘는 천만장자가 되었다. 결국 랄프베어는 그의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단돈 70만 달러에 게임 관련 특허권을 놀란 부쉬넬에게 넘긴 것을 가장 뼈아픈 실수라고 말할 정도로 큰 후회를 하고 있다.


그런데 사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도 중요하지만 그에 따른 실행 능력도 더 중요하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 그 순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최소 다섯 명 정도 대한민국 안에 존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마이클 델이 상점을 거쳐서 컴퓨터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의 주문에 따라서 직접 판매하는 다이렉트 마케팅을 하겠다고 회사를 창업했을 때 주변사람들은 천 달러가 넘는 컴퓨터를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직접 보지도 않고 전화만으로 컴퓨터를 구입할 리가 없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이클 델처럼 상점을 거치지 않고 고객에게 직접 컴퓨터를 공급하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마이클 델 스스로 자신의 아이디어는 특별하지도 않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문제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확신을 가지고 실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아이디이가 구체화 되는 과정에서의 여러 문제점도 파악하고 해결할줄 알아야한다. 마이클 델은 소비자들이 얼굴을 보지 않은 상대와 거래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는 점을 정확하게 간파 있었다. 그래서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을 잠재우는 것이 사업의 승패를 결정한다고 봤다.


그는 우선 전 직원들이 전문적인 컴퓨터 지식을 갖도록 해서 소비자들에게 컴퓨터에 대해 정확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도록 했다. 또한 고객이 원하면 24시간 내에 직접 고객의 집에 방문해서 컴퓨터를 수리해주었다. 그는 일부러 컴퓨터 조립 공장을 크게 지었는데 이는 사람들이 견학을 와서 델이라는 회사가 믿을 수 있는 회사라는 것을 고객에게 인지시키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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