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의 초반을 10대로 그리고 나머지 90년대 후반을 20대로 보냈던 저는 90년대가 무척 각별한 시기였습니다. 모두들 10대 후반 20대 중반의 시절들을 많이 그리워하면서 살잖아요. 그래서 저만 90년대를 좀 특별하게 보는지 알았는데… 요즘 90년대 가수들이 컴백하면서 다시한번 당시 그때를 회상하게 만드네요. 생각해보면.. 지금 문화를 꽉잡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면 바로 90년대에 그 원류가 있습니다. 어쩌면 요즘 문화가 90년대처럼 활기차다는 기분보다 퇴보 된다고 느껴지는건… 2000년대 이후 새로운 문화아이콘이 등장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게 문제라고 생각될 만큼.. 90년대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마치 한국문화의 르네상스였다고나 할까요. 90년대 문화를 지배했던 10대 아이콘을 살펴보면 이러한 저의 생각에 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때의 영향력이 지금까지 아직도 2000년도에 그대로 살아 있으니깐요.
1. 음악의 아이콘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오히려 지겨운분들도 많겠지만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제가 경험했던 몇가지만 말씀드리죠. 우선 서태지 이후 워크맨들고 다니는 애들이 절반에서 전부이다 싶을정도로 바뀌었습니다. 당연히 학생들 전부가 서태지테잎을 들고 다녔지요. 또 서태지와 아이들 2집이 나왔을때는 동네 음반점에서 줄을서서 테이프를 사야했습니다. 마침 거기에 친구도 있어서 한참 웃었지요. 근데 음반이 나오자 마자 매진이 되어서 음반점 여러곳을 다녔지만 나오자마자 다 매진됐다는겁니다. 그렇게 음반 매진되는거 처음봤는데 물건이 없자 음반점에서는 예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번호표가 50번이 넘었답니다. 3집나올때는 앨범나오기전에 예약을 해서 쉽게 샀는데 3집이 헤비메탈이라서 어떤 친구는 음악을 제대로 듣겠다며 휴대용 CD-플레이어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그전까지만해도 연예인 따라하면 날라리라고 했는데.. 이상하게 서태지를 따라하면 날라리라는 말보다 멋있다고 흉내내기 바빴죠. 당시 연예인하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서태지는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자 존경의 대상인지라 서태지 흉내내는건 자랑스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2. 드라마의 아이콘 사랑이 뭐길래
제가 드라마 부분에서 어떤 드라마를 이야기해야 할까 고민좀 했습니다. 한국 트렌디 드라마의 효시인 질투와 각축전을 벌였는데요. 질투가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는 절대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이 사실이고 질투할 때 도서실이 텅비었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전국민적으로 보면 사랑이 뭐길래가 역시 한수위였죠. 사랑이 뭐길래하는 시간에는 도로가 텅비고 수도사용량이 줄어든다는 이야기까지 들렸으니깐요. 실제로 당시 케텔이라는 무료 PC통신 서비스가 있었는데요. 접속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입니다. 한시간동안 접속시도를 해야 겨우 접속할수 있었는데 사랑이 뭐길래 할때는 단 한번에 바로 접속할수 있었답니다. ^^; 그리고 제가 이드라마를 선택한것은 이 드라마가 한류의 원조이기 때문입니다. 저희집 친척분들중에 하나가 미국으로 이민갔는데.. 글쌔 중국사람이 한국드라마 재미있다면서 사랑이 뭐길래를 물어보더랍니다. 중국 CC-TV에서 방영된다음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더군요. 어찌됐든 외국인이 한국드라마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신기했던 경험인지라 사랑이 뭐길래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나네요. 그리고 보수적인 남자집안과 개방적인 여자집안이 결합해서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런류의 드라마는 얼마전 끝난 며느리 전성시대에서도 그대로 녹아져 있을 정도로 여전히 한국드라마에 영향을 주고 있고... 사실 한국드라마만의 독특한 서사구조인 만큼 그런 독창성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3. 라디오의 아이콘 별이 빛나는 밤에
90년 초반만해도 내가 경험하기로는 청소년들에게 더 영향력있던 것은 드라마가 아니라 라디오였습니다. 요즘은 학교가면 어제 티비 본 이야기한다고 하는데 저때만해도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이문세가 읽은 사연가지고 이야기를 했죠. 별밤 안들으면 친구들과 대화가 안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악착같이 별밤을 들어야해습니다. 특히 별밤 공개방송은 요즘의 그어떤 토크쇼나 가요방송보다 더 화제가 되었고 빅스타들이 출연했습니다. 이문세씨가 사회를 보고 이경규씨가 보조로 많은 웃음을 선사했는데 도서실에서 방송듣다가 나도 모르게 웃었는데.. 그게 저만 웃는게 아니었답니다. 안타깝게도 1996년 이문세씨가 방송을 그만두면서 저도 그 이후 라디오와는 멀어지게 되더군요. 별밤지기 이문세씨는 단순히 라디오 방송을 한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정신적 스승이자 벗으로써 정말 문화전반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말 하면 너무 과한 것 같지만.. 10대들의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지금도 모범적으로 사시는 것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잘 늙어줘서(?) 감사해요.^^:;
4. 웃음의 아이콘 일요일 일요일 밤에
황금 같은 주말이 다 끝날 무렵… 참 아쉬움이 남는 시간인데.. 그래도 그렇게 슬프지(?) 않았던건..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있었기 때문이죠. 일요일 일요일 밤에 전만해도 짜연진 각본에 의해서 몸개그를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일요일 일요일밤에가 한국 코미디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죠. 순간 순간의 재치가 돋보이는 말개그의 시대로 본격 돌입하게 되면서 신동엽,유재석, 이휘재등 MC형 개그맨의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특히 몰래카메라와 시네마 천구 그리고 이휘재의 인생극장은 일요일 일요일밤에가 내놓은 최고의 코너라고 생각되네요.
5. 첨단의 아이콘 워크맨,비디오,삐삐, 컴퓨터, PC통신
90년대 들면서 한국사회가 급격하게 변할수 있었던 것은 역시 기술의 진보도 빼놓을수 없을겁니다. 학생들은 워크맨으로음악을 듣고 비디오로 영화를 보고 삐삐로 연락을 했으며 컴퓨터로 게임하고(^^;;) PC통신으로 자기의 생각을 담아서 공유를 했지요. 지금은 MP3와 휴대폰 그리고 인터넷으로 대변되지만 사실 안에 들어가 있는 콘텐츠는 많이 달라 보이지 않네요. 오히려 기계는 아날로그였고 불편했지만 그렇기에 사람의 상상력을 더 자극하고 감성적으로 더 와닿는게 있습니다. MP3로 자기가 좋아하는 곡만 골라서 듣는게 편리하겠지만 워크맨으로 앨범전체를 들으면서 가수가 전하려는 음악이무엇인지 더 깊히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해볼수가 있기때문이죠.
6. 소설의 아이콘 영웅문
영웅문이 사실 90년대의 문화는 아닙니다. 이게 70년대에 이미 나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중고등학생들이라면 한번씩 빠져드는 문화였죠. 저는 아직도 기억나는게 선생님이 학생에게 영웅문 1부 1권을 압수하게 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점심시간에 학생을 찾아와서는 영웅문 2권있냐고 묻더라구요. 그때 한참 웃었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네요.
7. 만화의 아이콘 슬램덩크
사실 무협지는 제가 빠져있었고 조금 매니아틱한 면이 있었습니다. 같이 영웅문 읽는 친구끼리 연대의식같은게 있었는데 슬램덩크는대세였죠. 특히 드래곤볼과 슬램덩크가 양대산맥을 이루었는데.. 드래곤볼이 은근히 취향을 탓고 여자애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만 슬램덩크는 여자애들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90년대의 만화아이콘에는 역시 슬램덩크라고 생각됩니다. 당시 만화책은 만화가게에서 한번 보고 끝나는것이었는데… 슬램덩크는 직접 구입해서 보관하도록 만들더군요. 근데 당시 슬램덩크는 제가 가는곳 어디서나 보였다는 겁니다. 학교에 가면 여기저기서 슬램덩크를 보고 있고 .. 또 도서관 가면 친구중에 하나가 책을 들고왔기 때문에 역시 슬램덩크를 보고 있고.. 또 학원가면 역시 누군가 슬램덩크를 보고 있고... 또 수학여행이나 소풍가도 슬램덩크 들고 오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물며 화장실가도 슬램덩크 읽는 친구들이 있었으니깐요. 옆칸에서 웃고 있으면 백퍼센트 슬램덩크를 보고 있는거였죠. 그리고 슬램덩크가 소년챔프라는 만화책에 연재되었는데 학교에 그 책을 사오는 친구들은 정말 인기 최고였습니다. 그런데 그 만화보는 순서 때문에 싸움도 나고.. 수업시간에 보다가 선생님한테 들키고… 정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8. 영화의 아이콘 쉬리
당시 PC통신에서 난리났던 기억이 납니다. 쉬리처럼 PC통신에서 논란을 일으킨 작품을 본적이 없습니다. 근데 그 반응이 재미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홍콩영화보다 못한다는 반응과 홍콩영화 수준까지 간게 어디냐 그런걸로 말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영웅본색과 첩혈쌍웅 같은 홍콩영화가 정말 대세였던 적이 있는데 쉬리 이후 한국영화의 약진이 두드러졌고 공교롭게도 홍콩영화는 하락세를 맞이하고 한국영화가 대세가 되었다는겁니다. 서태지와아이들이 한국가요계의흐름을 바꿔놓았다면 쉬리가 바로 그런 역할을 했다고 했다고 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만해도 한국가요를 상당히 무시했습니다. 는 가요는 안듣고 팝송만듣는 사람들이 꽤많았고.. 나름대로 선민의식을 가지고 한국가요를 비난했지만… 그 소리가 건방지게 느껴지지 않을정도로 “현실”을 인정해야 했거든요. 근데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오히려 가요듣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음반 판매도 그전까지만해도 5;5였는데 서태지 이후 6;4로 바뀐걸로 압니다. 사실 서태지와아이들은 한국가수와 경쟁한게 아니라 사실 뉴키즈 온더블럭과 경쟁한거였죠. 이근데 쉬리가 바로 한국 영화에 대한 선입관을 바꾸어 놓았죠. 예전에 이런말이 있었습니다. 극장에서 돈주고 한국영화를 보느니 베스트셀러극장을 보겠다고 말이죠. 또 당시에는 한국영화의 화면이 무척 어둡게 나와서 사실 극장에서 화면볼 엄두가 안났죠. 근데 쉬리는 한국 영화도 할수 있다는 생각도 들게해줬고 한국영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실히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9. 사회의 아이콘 IMF
IMF 이후 정말 한국사회는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IMF전만해도 결혼을 한다고 하면 돈이 없어도 같이 고생하면서 함께 모아서 산다는 기분이었는데 IMF이후 일정이상의 경제력을 갖춘다음에 결혼해야한다는 걸로 바뀌었죠. 그리고 당장 돈은 없어도 능력이 있어서 장래성있는 사람을 높이평가했지만 IMF이후는 당장 손안에 돈있는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하고… 모든 잣대가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기 시작했던것같습니다. IMF이전만해도 강남산다고 뭐 특별대우받는건 없었지만 이후에는 강남프리미엄도 높아졌고 좋은 자동차있는 애들이 확실히 인기가 많아지더라구요. 이런 인식의 변화가 드라마에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예전 드라마 보면 남자가 돈이 없는데 여자가 장래성을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당시에 남자주인공이 인생은 마라톤이라면서 우리 함께 돈 모아서 집도 사고 자동차도 사면 된다는 식으로 프로포즈했거든요. 하지만 어느순간 그런건 공허한 목소리가 되고 아예 처음부터 돈많은 재벌이 나타나서 잘살잘고 프로포즈 해대기 시작한거죠. 그전만해도 재벌하면 돈은 많은 대신 졸부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어느순간 재벌 2세는 그야말로 완벽한 인간 그자체로 표현되었죠. IMF이전만해도 보통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았는데 IMF이후는 가족드라마에도 재벌급 인물이 어디든지 꼭 등장하게 되더군요. 또 IMF이전만 해도 여자가 결혼후에 계속 일을 해야하느냐 마느냐가 엄청난 갈등요소였습니다. 당연히 여자가 회사를 그만두고 시집으로 들어가기 마련이었는데 IMF이후는 그런 갈등이 줄어들었고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죠. 왜냐하면 갑자기 물가가 상승해서 살기 어려운판국인데 한푼이라도 돈을 더 벌어야 하는 시기였죠. 당시 전업주부들이 일자리 구하러다니는 판국인데 멀쩡히 직장이 있는 사람이 결혼 때문에 그만두는게 이해할수 없게 된겁니다. 또 IMF 이후 이혼율이 급격히 늘어나는데.. 예전에는 결혼하면 남녀관계 거기서 끝났는데.. 그 이후 드라마는 결혼이 끝이 아니더군요. ^^;;
10. 게임의 아이콘 스타크래프트
90년대 초반이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표된다면 90년대 후반은 스타크래프트라고 생각될정도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죠. 예전에는 남자들이 만나면 당구장에 갔습니다. 그래서 게임한판? 이러면 당연히 당구장 가는거였는데 스타크래프트 이후는 PC방 가자는 거였죠.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이후 오락실도 몰락하게 되고.. 남자들끼리 모임있으면 스타크래프트가 필수 코스가 됐죠. 그리고 게임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는데 스타크래프트 덕분에 하나의 문화이자 스포츠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또 PC방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현재 IT 강국이 되는데 초석이 된 게임입니다. 사실 김대중대통령이 맨날 영화 주라기 공원을 이야기하면서 일년동안 현대가 자동차 수출하는것보다 영화한편이 수익이 더 많이 난다는 이야기를 지겹도록 반복했는데.. 스타크래프트한편으로 달라지 한국을 보면서.. 게임하나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지켜보면서 정말 킬러콘텐츠의중요성을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듯합니다. 그리고 사실 2000년대 이전만해도 담배를 못피면 묘하게 왕따를 당한다고나 할까요. 담배못피면 자칫 소외받을수도 있었거든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흡연실에서 같이 담배피면서 여러대화를 나눴으니깐요. 그런데 스타크래프트가 한창 유행할 때 회사에서 점심시간 끝나면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는데.. 정말 스타크래프트 못하면 소외당하기 쉽상이었기 때문에 사회활동을 위해서도 스타크래프트를 “공부”하던 사람도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