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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둘은 회사를 막상 차렸지만 자신들의 일에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 둘은 원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몰래 게임을 개발했던 것이다. 이른 바 투잡스였다. 6개월 동안 낮에는 회사에 출근하고 밤에는 모여서 게임을 개발했던 것이다.

 그리고 개발 중인 게임에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자 게임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그러고 나서야 회사를 그만두고 게임 개발에 전념했다. 2주만에 레드 바론보다 훨씬 좋은 게임을 개발하겠다는 시드마이어의 장담 한마디로 시작한 마이크로 프로즈답게 그 둘은 창업을 하고 1년 정도 연구기간을 가지더니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스핏 파이어 에이스(Spitfire Ace)를 시작으로 솔로파이트(Solo Flight), 아크로젯(Acrojet), 스트라이크 이글등(Strike Eagle)을 연속적으로 히트시키며 마이크로 프로즈는 전쟁 게임 전문회사로 명성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간다. 군사 전문가인 빌 스텔리는 게임 개발에 있어서 큰 힘이 되었다. 특히 게임의 사실성을 갖추는데 있어서 최고의 조언자였다. 빌스텔리의 방대한 군사 전문 지식들은 시드 마이어가 각종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하는데 큰 동기를 마련해주었다. 잠수함을 소재로 한 사일런트 서비스(Silent Servic), 유럽전쟁을 소재로 한 나토 커맨더(NATO Commander) 와 크루세이드인 유럽(Crusade in Europe)은 실제와 같은 시뮬레이션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1987년 비행기와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서 제작 노하우를 쌓은 그는 어린 시절의 로망인 해적들의 이야기를 게임으로 개발할 결심을 한다. 하지만 빌 스텔리는 그의 생각에 반대하였다. 전쟁과 군사물을 소재로 하여 인기를 얻고 있는 회사에서 뜬금없이 해적을 소재로 해서 게임을 만든다고 하면 사람들이 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드 마이어는 꼭 해적과 관련된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다. 그러자 빌 스텔리는 한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그 동안 시드 마이어가 F16 스트라이 이글과 같은 게임을 개발해서 유명해졌으니 그의 이름을 표지에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시드 마이어가 만들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게임에 신뢰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판매가 쉬울 것이라는 얘기였다.

 처음 시드 마이어는 자신의 이름을 게임 제목에 붙인다는 것이 너무 쑥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해적을 소재로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기 때문에 빌 스텔리의 말에 이내 동의를 한다.



최초로 게임 타이틀에 게임 크리에이터의 이름을 사용하다.





빌 스텔리의 말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시드마이어의 해적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이 게임은 회사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이 되어서 돌아 왔다. 게임 타이틀에 게임 개발자의 이름을 단 것은 이때가 최초였기 때문에 시드  마이어는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가 영화를 선택할 때 영화를 만든 감독을 보고 선택하듯이 이제 게임도 누가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판단 잣대가 되는 시대를 연 것이다. 사실 그전까지 만해도 게임회사들은 인력이 유출 될 까봐 개발자들을 외부에 알리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시드 마이어는 절친한 동업자 빌 스텔리 덕분에 최초로 게임 타이틀에 크리에이터 이름을 써넣은 사람으로 기억이 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사건은 게임 개발에 있어서 회사보다는 실제 게임 개발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부각시킨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였다. 

시드 마이어의 해적이 성공을 거두자 그는 더욱 새롭고 더욱 실험적인 게임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던 차에 심시티(Sim City)의 성공을 지켜본 그는 심시티의 건설에 다가 경영적인 요소를 삽입할 결심을 한다. 그것이 바로 철도를 소재로한 레일로드 타이쿤이었다. 철도회사를 운영하면서 철도역을 건설하거나 각종 경영,교역,주식거래를 통해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게임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게임이었지만 실제 게임을 하게 되면 빠져 들 수 밖에 없는 매력을 선사하였던 것이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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