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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제가 PlayThePC에 기고한 글이니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빌게이츠는 하버드 대학교보다도 더 비싼 학비를 자랑하는 레이드 사이드 학교를 다녔다. 레이드 사이드 학교의 어머니회에서는 바자회를 열어서 3천달러의 수익을 냈는데 이 돈으로 학생들을 위해 컴퓨터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학교에 설치된 컴퓨터를 보고 완전히 매료된 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바로 빌게이츠다. 빌게이츠는 자신의 온 열정을 쏟아부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익힌다. 실력적으로도 학교에서 단연두각을 나타내는데 그보다 한단계 위의 실력을 보여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폴 알렌이었다. 폴 알렌 역시 빌게이츠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였는데 둘은 컴퓨터라는 공통된 화제를 통해서 급속도로 친해진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는 이용시간에 따라서 돈을 내는 종량제 방식이었다. 폴 알렌과 빌게이츠가 실습실에서 과도하게 컴퓨터를 이용하는 바람에 어머니회에서 확보한 자금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학교에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없게 되자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은 직접 컴퓨터 회사를 방문해서 버그를 찾아주는 조건으로 컴퓨터를 공짜로 이용하게 해달라고 했다. 컴퓨터 회사는 10대의 소년들이 다짜고짜 컴퓨터를 이용하게 해달라는 이야기에 어이가 없었지만 빌게이츠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컴퓨터에 자신감을 얻은 빌게이츠는 자신의 실력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던 중 인포메이션 서비스라는 회사에서 직원들의 월급을 계산해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달라고 의뢰한다. 3개월 동안 개발한 끝에 1만달러의 수고비를 받은 빌게이츠는 자신의 실력에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인텔의 CPU를 이용해 고속도로에 돌아가는 자동차의 숫자를 컴퓨터로 계산해내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2만달러에 판매한 것이다. 학교에서도 빌게이츠에게 수업시간표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했는데 이때 빌게이츠는 여학생으로만 이루어진 반을 구성한 후 남자는 자신 혼자만 출석하는 시간표를 만들면서 학창 시절을 즐겁게 지내기도 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로만 이미 4년동안 다닐 대학교 학비를 모두 번 빌게이츠는 변호사인 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에 하버드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다. 하지만 빌게이츠는 학교생활에 흥미가 없었고 매일 친구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포커를 즐겼다. 빌게이츠는 타고난 승부사 답게 포커게임에서도 항상 이겼는데 이때 딴 돈은 나중에 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는데 창업자금으로 쓰였다. 이때 포커게임에서 만난 친구가 현 마이크로소프트의 CEO인 스티브 발머였다.

빌 게이츠의 운명은 1975년 발행된 잡지인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로 변화된다. 폴 알렌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세계 최초의 소형 컴퓨터가 탄생했따는 파퓰러 일렉트로닉스의 기사를 보고는 즉시 하버드 대학교의 빌 게이츠를 만나러 간다.  잡지를 보고 한 후 빌게이츠는 자신이 이제 본격적으로 컴퓨터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음을 직감하였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모든 가정의 집안 책상 위에는 컴퓨터가 놓이는 시대가 올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게 되면 컴퓨터 산업도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게 될것이고 수 많은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빌게이츠는 바로 그런 시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기대하시는 법조인의 바람도 포기하지 못한 채 대학은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세계 최초의 소형컴퓨터 알테어 8800이 등장하자 다른 사람에게 이런 기회를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빼앗길수 있다는 공포감이 엄숙해오자 빌게이츠는 과감하게 컴퓨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한다.
빌게이츠는 알테어 8800을 개발한 MITS에 전화를 걸어서 알테어 8800을 위한 베이직을 개발해주겠노라고 제안한다. 이미 MITS에는 미국전역에서 수많은 프로그래머들이 빌게이츠와 똑같은 제안을 했다. 그래서 MITS는 가장 먼저 베이직을 개발해온 사람에게 계약의 우선권을 주겠다고 한다. 이에 빌게이츠는 폴 알렌과 함께 대학의 컴퓨터 실습실에 들어가서는 베이직 개발에 들어간다. 그는 8주 동안 컴퓨터 실습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베이직 개발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폴 알렌이 MITS 본사가 있는 뉴멕시코로 날아가서 그들이 개발한 베이직을 보여준다. 처음 알테어 8800에서 실행할 때 폴알엔은 혹시나 오류가 날까봐 걱정했지만 놀랍게도 알테어 8800은 완벽하게 작동했고 결국 MITS와 베이직 공급계약을 맺는다.

이 때 빌게이츠는 MITS 근처의 여관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다. 현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용어들은 매우 친숙했지만 빌게이츠가 회사를 창업할때만해도 소프트라고 하면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빌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창업하자 사람들은 작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로 알 정도였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명은 빌게이츠가 얼마나 미래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컴퓨터하면 대형컴퓨터를 생각하던 시절에 소형컴퓨터의 시대를 예견했으며 컴퓨터를 구입하면 소프트웨어를 얹혀주는걸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에 빌게이츠는 소프트웨어만 따로 판매하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빌게이츠는 레이크 사이드 학교에서 같이 컴퓨터를 연구했던 친구들을 속속 합류시킴으로써 회사의 체계를 잡아간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창업 첫해에 10만불의 매출을 기록하고 다음해에는 20만불을 벌어들인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MITS의 더딘 생산 시스템에 불만이 많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MITS의 컴퓨터가 한대씩 팔릴때마다 로열티를 받았는데 문제는 MITS는 생각보다 작은 회사라서 폭증하는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의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MITS의 더딘 생산 시설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MITS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베이직을 납품해달라고 하였지만 독점 공급 계약 항목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1977년 빌게이츠는 오랜 고심 끝에 계약서에 제시된 충실한 마케팅 이행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유로MITS와의 계약 파기를 선언한다. 처음에 MITS는 이제 20대 초반인 빌게이츠가 소송을 걸자 노발대발하면서 화를 냈다.  MITS는 어린 빌게이츠를 얕잡아 봤지만 빌게이츠가 누구인가? 아버지가 시애틀에서 유명한 변호사였고 하버드대학교에서 법학과를 다녔던 사람이었다. 법정으로간 분쟁은 빌게이츠의 완승으로 결론이 난다. 사실 여기에도 빌게이츠의 뛰어난 법적지식이 한몫했다. 처음 계약서를 쓸 때만해도 계약 파기에 대한 내용은 없었지만 계약서를 면밀히 살펴보던 빌게이츠는 계약서 마지막에 MITS가 베이직 판매를 위한 마케팅에 최선을 다한다는 항목을 추가하였다. MITS는 아무렇지 않게 빌게이츠의 의견을 들어주었는데 이때 넣은 계약서 항목이 마이크로소프트를 MITS의 그늘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빌게이츠가 MITS와의 계약을 파기한 결단 역시 절묘했다. 법정에서 승소를 하던 해에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은 100만불이었지만, 이듬 해에는 무려 400만불의 매출을 기록했다. MITS와 계약을 청산한 빌게이츠는 뉴멕시코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빌 게이츠는 자신의 고향인 시애틀로 회사를 옮기게 된다. 이 후 회사는 더욱 승승장구했고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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