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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맞는 친구를 찾아라!

천식으로 인해서 친구들에게까지 놀림을 당했던 그는 친구의 칭찬 한마디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HP에서 나온 공학용 전자계산기에 푹 빠진 그는 이를 이용해서 간단한 게임을 만들었다.  이 게임을 본 친구가 진심으로 이와타 사토루를 칭찬해주자 그는 너무나 기뻤고 컴퓨터 공학과에 진학할 결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오자 별로 배울것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가 나온 초창기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와타 사토루가 가지고 있던 지식 그 이상의 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와타 사토루는 자신과 뜻이 맞는 동료를 만나기 위해서 당시 컴퓨터의 성지로 불리었던  세이부 백화점의 컴퓨터 매장을 자주 들락거렸다. 컴퓨터 매장에서는 저마다 컴퓨터 실력자들이 각자 자신들이 짠 프로그램들을 공개하고 자랑하는 자리였였다. 이와타 사토루는 다른 사람의 프로그램을 지켜보면서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거나 수정방법들을 알려주었고 그의 탁월한 실력은 금새 매장전체에 퍼졌다. 그리고 그의 실력을 높이 산  컴퓨터 매장의 점원이 새롭게 창업하는 HAL 연구소를 소개시켜주었다.  HAL 연구소는 나중에 이와타 사토루가 사장에 오르며 닌텐도 사장이 되는데 중요한 발판이 되어주는 회사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 일부러 세이부 백화점을 자주 들랐거렸던 이와타 사토루를 보면 역시 마음 맞는 친구를 찾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임을 알 수 있다.

함부로 노라고 하지마라!

이와타 사토루는 기획자의 아이디어에 “노”라고 말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존중해주었다. 그가 최고의 실력을 가진 프로그래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프로그래머가 “노”라고 하는 순간, 기획자의 아이디어는 거기서 멈추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그의 소신 때문이었다. 이것을 두고 그는 ‘수도꼭지론’으로 설명한다. 프로그래머는 수도꼭지와 같은 존재인데 꼭지를 닫아놓으면 수도관의 물이 흐를 수 없듯이 프로그래머가 “노”라고 하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그림도 무용지물이 되므로 프로그래머는 꼭지가 열려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술상의 제약으로 기획자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때에는 모든 가능성을 한 번에 일축해버리는 “노”가 아니라 기획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들을 제시해야 한다는 게 이와타 사토루의 생각이었다.

세상의 흐름을 읽고 행동하라.

이와타 사토루 덕분에 HAL 연구소는 기술 하나는 최고인 회사로 명성을 드높였다. 회사도 도쿄 번화가 맨션을 벗어나 있는 야마나시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후지산으로 유명한 야마나시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했는데 도심보다는 개발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서 이곳으로 회사를 옮긴 것이다. 1983년 일본에서는 닌텐도의 첫번째 가정용 게임기인 패미콤이 발매되어 단 6개월만에 50만대가 판매될정도로 큰 선풍을 일으킨다. 이와타 사토루는 패미컴이 발매 되기전부터 닌텐도를 주목했다.  닌텐도야 말로 HAL 연구소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와타사토루는 패미컴을 1만5천엔밖에 안하는 값싼 컴퓨터라는 개념으로 패미컴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리고 패미컴에 대한 자신이 붙자 주변사람들에게 부탁해서 패미컴의 개발사인 닌텐도와 관련된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일부러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평소 입지도 않은 양복까지 찾아 입은 이와타 사토루는 닌텐도 본사가 있는 교토로 찾아가서 다짜고짜 패미컴용으로 게임을 개발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당시 닌텐도는 엄격하게 품질관리를 하기로 유명했다.  닌텐도는 소프트웨어 제작사가 게임을 개발하면 무조건 발매 시켜주는게 아니라 닌텐도가 정한 기준에 부합되는지 검토를 한 후에  합격한 게임만 패미컴으로 발매할수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허가 받은 소프트웨어 제작사의 경우 일년에 단 세개만 발매할 수 있도록 하는 강제조항까지 마련했다. 그래서 패미컴용으로 게임을 발매하는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대신 한번 패미컴으로 발매되는 게임은 소수정예였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신뢰가 높았고 덕분에 한번 게임이 발매만 되면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를 찾아간것도 HAL 연구소가 패미컴으로 게임을 발매할 수있도록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24살의 어린 나이었던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에 가서 함께 일하고 싶다고 하자 처음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이와타 사토루는 끈질기게 설득하였고 결국 닌텐도는 정식으로 허가받은 소프트웨어 업체 즉 서드파티가 아니라  외주방식으로 게임을 대신 제작해주기로 했다. 닌텐도 내부에서는 수많은 게임들이 기획을 하고 있었지만 기술상의 문제로 포기한 게임들이 많았다. 닌텐도는 이런 고난이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게임들을 이와타 사토루에게 한번 속는셈 치고 맡겼던 것이다.  하지만 닌텐도가 맡긴 일들을 이와타 사토루가 척척 해내자 닌텐도에서 그의 명성도 덩달아 쌓여갔다. 그래서 게임업계에서는 아이디어의 닌텐도 기술의 HAL연구소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그런데 그가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에서 직원들에게 스타 취급을 받게되는 계기는 프로그래밍 실력이 아니라 컴퓨터 키보드를 빨리치는 타이핑 속도 덕분이었다. 지금 보면 별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당시만 해도 키보드를 안보고 치는 블라인드 타이핑을 할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를 방문하는 날이면  순전히 그의 블라인드 타이핑을 구경하기 위해서 회사의 각 부서사람들이 모여들 정도였다. 당시 이와타 사토루는 마치 진기명기에 나오는 기인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모든 일에서 방관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되라

1991년 일본에서는 부동산 버블이 붕괴가 장기 불황의 시대가 열린다. 이는 2006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미국에 끼친 영향보다도 당시 일본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져 주었다. 마침 1991년 HAL 연구소는 대규모의 사옥을 완성하는데 버블붕괴의 영향으로 자산가치가 하락하면서 경영위기를 겪게 된다. 결국 1993년 HAL 연구소는 무려 50 억엔에 이르는 부채를 갚지 못하고 부도가 난다. 그리고 회사 위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32세의 프로그래머 이와타 사토루였다. 

이와타 사토루의 뛰어난 기술력과 친화력은 난파된 HAL 연구소의 새로운 선장으로 최적의선택이었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가 HAL 연구소의 사장을 맡은 것은 대단히 위험한 선택이었다. 이와타사토루가 명문대생으로써 HAL 연구소라는 벤처기업을 선택한 것이 일종의 모험이라면 HAL 연구소의 사장이 되는 것은 도박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회사가 빚을 지면 사장이 책임을 지어야 하는데 무려 50억엔의 빚을 지고 있는 회사의 사장이 되겠다는건 보통 정신으로 선택할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좋은 회사에서 더 많은 연봉을 주겠다는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고 당시 이와타 사토루는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도 있는 남자였다. 사실 이와타 사토루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아내가 HAL 연구소의 사장이 되는것에 반대 하지 않았다는 것에 가장 고마워할 정도로 그 자신도 꽤 위험한 선택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가 그 위험한 HAL 연구소의 사장직을 받아들인데는 두가지 성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우선 같이 땀흘렸던 동료들을 놔누고 도망갈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실 그는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도망가거나 피하는 것을 아예 옵션으로 조차 생각하지 않는 성향의 소유자다. 왜냐하면 모든 일에서 방관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될수 있는 찬스가 있는데 그것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후회할일을 만들지 말고 힘이 있으면 그것을 전부 사용하자라는 신념의 소유자인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리스크가 없으면 성취감도 느끼지 못하는 승부사 적인 기질을 타고난 만큼  사장직 제의가 왔을 때 피하지 않고 직접 위험한 도박의 주인공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사물의 인과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이치를 따져라

와타 사토루는 이공계 출신으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즉시 각오가 서는 인물이었다. 이와타 사토루는 사물을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으로써 스스로 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왜냐하면 HAL 연구소는 기술에 강점이 있는 회사인데 결국 개발의 총 책임자였던 자신이 회사를 부활시키는데 적격자라고 봤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가 경영 서적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자신이 사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다른 사람보다 논리적으로 생각 할 수 있는 사고력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했기 떄문이다. 그가 이렇게 논리적인 이치 따지기에 자신감을 가질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가 프로그래밍작업을 통해서 수련한 결과이기도 하다.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은 사람이 원하는 작업을 컴퓨터에 구현하기 위한 논리적인 명령들의 집합이다. 그러므로 프로그래밍작업에서 하나의 오류만 있어도 컴퓨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들은 코드를 짤 때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는 작업을 반복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프로그래머들은 자연스럽게 논리적 사고를 익히게 된다. 그는 컴퓨터와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프로그래밍 작업을 통해서 곤란한 과제를 분석하고 실마리를 찾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경험들이 회사를 경영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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