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위한 교육용으로 컴퓨터가 각광받자 급속도로 붕괴되는 산업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었다. 사실 컴퓨터와 가정용 게임기는 같은 기술로 시작한 쌍둥이와도 같고 동시에 라이벌이기도 했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 이미 가정용 게임기 아타리 VCS 2600가 2천만 대 넘게 판매되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당시 가정용 컴퓨터의 마케팅 포인트는 우선 게임을 할 수 있으며 그밖에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만능 기계로 강조하는 것이었다. 가정용 게임기의 보완재이자 대체재로써 컴퓨터를 강조하여 초기의 컴퓨터 보급을 이끌었는데 마침 컴퓨터 과목이 정식으로 학교의 교과 과목으로 채택됐을 때 컴퓨터 회사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실행한다. 게임기는 아이의 학업을 망치지만 컴퓨터는 아..
이글은 포켓 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스토리 -하편- 으로 마지막 글입니다. 이전의 글을 보고 싶으면 아래 글을 클릭하세요. 포켓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상- 포켓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중- 포켓몬스터의 놀라운 미디어 믹스 전략 포켓몬스터는 일본에서 게임이 먼저 나오고 또한 게임을 중심으로 프로모션이 진행되었던데 비해 미국에서는 에니메이션이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 에니메이션을 총책임졌던 쿠보마사카즈가 미국을 몇번이나 방문하면서 관련 프로젝트를 협의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에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이름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포케몬에는 일본식 이름이 들어갔는데 미국인들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지는 발음이 많았다. 사실 애초부터 포켓몬스터라는 말 자체가 걸림돌이 되었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이 ..
이글은 포켓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중편입니다. 상편을 읽어 보고 싶은 분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포켓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상- 포켓몬스터라는 게임은 타지리 사토시가 만들었지만 이를 전세계적인 문화로 승화시킨건 이시하라 츠네카즈의 노력이 컸다. 그는 포켓몬스터가 발매되기 전부터 다양한 미디어를 통한 원소스 멀티유스 전략을 세웠다. 게임이 발매되기 전이었던 1995년 11월에 이미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포켓 몬스터를 만화로 연재하기 위해서 코로코로 코믹스를 발행하는 소학관을 직접 찾아간다. 코로코로 코믹스는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대상으로 발행하는 만화 전문지로 매달 180만부를 넘게 발행하는 인기잡지였다. 코로코로 코믹스는 단순히 만화만 연재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나 취미와 관련된 소식도 전하면서 초..
포켓 몬스터는 중학생 시절부터 게임광으로 유명했던 타지리 사토시로부터 시작된다. 1965년 도쿄의 외곽 지역인 마니치에서 태어난 그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보는 순간 완전히 게임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즐겼다. 어느 날은 부모님이 공부를 위해 학원을 다니라고 했는데 그는 오락실과 가장 가까운 곳의 학원을 등록할 정도로 게임에 미쳐있었다. 그의 게임 실력도 출중하여서 오락실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가 16살이 되던 해에 마침 세가에서는 게임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하는데 여기에 응모를 한 타지리 사토시는 대상을 받게된다. 이후 게임의 세계에 더욱 빠져든 그는 다음 해에 게임 잡지 GAME Freak 를 직접 창간한다. 1983년은 닌텐도에서 패미컴..
1. 좋은 아이디어는 팀워크로도 만들어진다. 세상에는 마리오의 창조자인 미야모토 시게루 같은 천재는 적다. 하지만 팀워크로도 좋은 아이디어는 탄생할 수 있다. 2. 때로는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게 더 빠르다 4년동안 교착상태였던 게임 마더2의 해결사로 투입된 이와타 사토루는 과감하게 처음부터 원리에 맞게 개발을 함으로써 단 1년만에 개발을 완료한다. 3. 적을 만들지 않는다. 외부에서 사장으로 영입된 이와타 사토루는 회사의 단합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사내에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4. 효율성을 추구하라 이와타 사토루는 개발의 중복작업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개발의 공통적인 요소를 찾아서 이를 하고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환경제작부를 조직한다. 5. 위기의식을 강조하되 패배의식은 안된다. 변화하지 않..
마음 맞는 친구를 찾아라! 천식으로 인해서 친구들에게까지 놀림을 당했던 그는 친구의 칭찬 한마디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HP에서 나온 공학용 전자계산기에 푹 빠진 그는 이를 이용해서 간단한 게임을 만들었다. 이 게임을 본 친구가 진심으로 이와타 사토루를 칭찬해주자 그는 너무나 기뻤고 컴퓨터 공학과에 진학할 결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오자 별로 배울것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가 나온 초창기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와타 사토루가 가지고 있던 지식 그 이상의 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와타 사토루는 자신과 뜻이 맞는 동료를 만나기 위해서 당시 컴퓨터의 성지로 불리었던 세이부 백화점의 컴퓨터 매장을 자주 들락거렸다. 컴퓨터 매장에서는 저마다 컴퓨터 실력자들이 각자 자신들이 짠..
닌텐도의 모든 것은 결국 창조로 귀결된다. 그들은 창조적일 때 빛났고 창조적이지 못했을 때 그들은 어려웠던 시기를 보냈다. 닌텐도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창조를 통해 부활한 만큼 그 어떤 회사보다 창조적인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를 주제로 닌텐도를 바라보면 그들의 모든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창조는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기준으로 평가를 하면 창조의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그래서 과거에 이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 닌텐도는 마케팅 자료로 상품을 평가하지 않는다. 실제로 패미컴과 포켓몬스터가 미국에 진출할 때에도 닌텐도는 마케팅 자료를 참고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마케팅 자료를 참고했다면 미국에서 패미컴과 포..
오랜만에 책을 한권 출간 했습니다. 책의 제목은 "닌텐도처럼 창조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부터 닌텐도만을 다룬 깊이있는 책을 쓰고 싶었는데 이제야 출판을 하게되었습니다. 닌텐도 처럼 창조 한다는 것은 위기 속에서 더욱 강해지는 닌텐도의 놀라운 저력에 주목하여 쓰여졌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닌텐도의 성공 비결을 논하는 책은 아닙니다. 예전에는 실적이 좋은 몇몇 일류기업들을 선정한 후 그들을 성공으로 이끈 황금 공식이 무엇인지를 분석한 책들이 유행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책들에서 극찬을 받은 일류기업들이 얼마 못 가 망하고 나니 최근에는 왜 기업이 실패하는지를 연구한 책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사실 기업의 역사를 보면 성공의 이유가 곧 실패의 이유가 될 수도 있고 또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단지 사람들..
닌텐도가 차세대 휴대용 게임기 3DS 발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서 한번 닌텐도가 그동안 발매했던 휴대용 게임기를 정리해보는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한번 정리해봤습니다. 아래 휴대용 게임기는 닌텐도가 발매한 모든 제품이 아니라 중요한 의미를 담은 제품들만 모아둔것입니다. 1. 게임 워치 게임워치를 만들기 직전에 닌텐도는 그야말로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코이 군페이라는 분이 우연히 출장을 갔다가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전자계산기를 들고서 이리저리 노는 모습을 보고 이를 게임에 접목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의 운전기사가 몸이 아파서 운전을 못하게 됩니다. 이때 요코이 군페이가 대신 운전을 해주게 되는데 이때 사장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합니다. 그냥 ..
지금 게임계가 닌텐도의 새로운 게임기 3DS때문에 난리가 나고 있습니다. 게임쪽 언론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위크나 로이터 같은 메이저 언론사들도 닌텐도의 새로운 게임기에 대해서 대서특필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각종 언론의 메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삼 닌텐도가 언론과 사람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 참 노련한 회사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닌텐도 역시 스토리를 이용할 수 있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그 스토리는 결론을 점치기 힘든 노련한 추리 소설을 보는듯 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정보는 단 하나 안경이 필요 없이 맨눈으로 3D입체영상을 즐길 수 있다는 겁니다. 달랑 몇줄로 차세대 게임기 개발소식을 알렸을 뿐인데 이 정보를 토대로 각종 언론들이 알아서 스토리를 만들어 주고 있네요. 앞으로 우리는 닌..
닌텐도가 차세대 DS를 전격 발표했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닌텐도의 공식 홈페이지에 떴습니다. PDF로 글을 공개했습니다.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www.nintendo.co.jp/ir/pdf/2010/100323.pdf 닌텐도 DS는 지금까지 1억 2500만대를 판매한 최고의 휴대용 게임기인데요. 이 게임의 후계기로 닌텐도 3DS를 전격 발매한다고 합니다. 이 게임기의 특징은 맨눈으로 3D를 즐길 수 있는 게 특징이라고 합니다. 공지로는 여기까지 소개되어있으며 나머지는 오는 6월에 미국에서 실시하는 세계적인 게임전시회인 E3에서 발표하겠답니다. 정말 놀라운 소식입니다. 참고적으로 닌텐도는 버추얼보이라고 해서 머리에 착용해서 즐기는 휴대용 게임기를 발매했었습니다. 1995년에 발매되어서 ..
맥도널드가 닌텐도 DS를 이용해서 아르바이트생을 교육 시킨다는 소식입니다. 일본 맥도널드에서 이스마트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닌텐도 DS와 함께 일본의 3700개의 점포에 이를 배포할 예정이랍니다. 이스마트시스템을 구축하는데 220만달러가 들어갔지만 이를 활용하면 여러가지로 이점이 많다고 하는군요. 아르바이트생들은 금방 일을 그만두기 때문에 교육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수 없었는데 마침 이스마트를 이용하면 기존에 들어가던 시간의 절반이면 교육을 끝낼수 있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맥도널드가 닌텐도 DS를 이용하여 직원 교육용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었던데는 맥도널드와 닌텐도 사이에 여러 제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맥도널드 매장에서는 닌텐도 DS를 통해서 무료로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
외국 웹진에 Ten Things You Didn't Know About Super Mario Bros.라는 재미난 글이 있기에 소개합니다. 원문에는 별설명이 없는데 제가 아는 몇가지를 추가로 코멘트를 덧붙혔습니다. 1.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풀과 구름의 모양은 같다. 저렇게 한 이유는 당시 메모리를 줄이기 위해서 였습니다. 2. 마이너스 월드 꽉 막힌 벽을 통해서 들어가면 나오는 이상한 스테이지인데요. 아무래도 만들다가 완성을 못해서 막아둔 세상인데 그걸 유저들이 알아낸듯 합니다. ^^;; 자세한건 동영상을 보면 이해가 되실겁니다. 3. 마리오의 이름은 건물 주인의 이름이다.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죠. 미국 닌텐도의 사장이이었던 아라카와 미노루가 점프맨으로 붙여진 게임 캐릭터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기 위해..
수 많은 글에서 필자는 닌텐도의 창의력은 커뮤니케이션에 있다고 말하였다. 그들의 수많은 인기 상품들이 직원들간의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발전했다. 사실 많은 회사들이 닌텐도 처럼 직원들간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회사차원에서 문화로 정립시키지 않으면 쉽게 이뤄지지 않는게 바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다. 인텔을 창업한 앤디 그로브는 회의에서 결정되는 여러 안건들이 사실은 자유로운 토론의 결과가 아니라 직위가 높은 임원의 의사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혁신이라는 것은 과거 기술의 한계를 발견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때 일어난다. 하지만 문제는 회사의 고위 임원들이란 과거 자신이 발견한 기술을 통해서 공을 쌓은 사람들이다. 회의 결과가 직장상사의 의견을 일방적..
닌텐도는 경소단박을 상품 개발에 가장 중요한 철학으로 여기는 회사답게 그들의 기업 조직 역시 불필요한 인력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소수정예를 유지하려고 한다. 닌텐도가 소수의 집단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지는 다른 초일류 회사들과 비교를 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3768명의 직원을 고용한 닌텐도의 2008년 매출은 2조 4366억원인데 다른 초일류 기업들과 비교하면 직원대비 매출이 압도적으로 높다. 비슷한 매출의 구글이 2조 7520억원인데 비해서 직원이 무려 20164 명으로 닌텐도보다 5배나 많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경쟁자들인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를 비교하면 닌텐도의 효율성은 더욱 극명해진다. 소니의 경우 전체 매출은 10조 2444억원인데 비해 18만 500명의 직원을 고용..
포켓몬스터 잘 아시죠? 포켓몬스터는 일본에서만 매출이 1조엔 세계적으로 2조엔을 기록한 게임의 대표적인 성공 신화죠. 원래 일본이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지가 좋지 못했지만 포켓몬의 피카츄 덕분에 국가 이미지도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그뿐만 아니라 현재 일본문화를 추종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포켓몬을 좋아하면서 일본 만화에 빠져들고 일본 대중문화에 호감을 가지게 되더니 일본에 대한 국가 이미지가 좋아하진 경우죠. 하여튼 포켓몬은 문화컨텐츠의 중요성을 세상에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포켓몬은 닌텐도가 유통하고 일부 제작비용을 되었기 때문에 닌텐도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 제작사는 게임 프리크라고 동경에 소재하고 있는 게임회사입니다. 게임 프리크의 창업자가 타지리 사토시입니다. 타지리 사토시는 포켓몬의 아버지..
닌텐도의 전 사장인야마우치 히로시는 상대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협상에 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중에 일부러 자리를 비워서 마치 다른 곳에서 더 좋은 제의가 온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외국인들에게 일본어로 고함과 욕설을 퍼부으면서 상대를 제압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닌텐도의 성공을 뒤돌아 보면 그들이 훌륭한 전략에 위대한 제품을 만든 덕분이었지만 회사의 이익을 공고히 하는 장면을 보면 법적인 협상전술도 한 몫했다. 닌텐도는 돈키콩이 세계적으로 히트한 직 후 유니버셜 영화사로부터 항의 문서를 받는다. 게임 돈키콩에 등장하는 고릴라가 영화 킹콩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적절한 보상금을 주지 않으면 법적으로 고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때 나선 인물이 미국 닌텐도의 법적 고문을 맡았던 변호사..
슈퍼마리오와 젤다의 전설로 유명한 게임의 신 미야모토 시게루가 Digital Contend Expo에서 벌인 인터뷰가 화제입니다. 어린시절 인형극을 재미있게 본 그는 인형극 연출가를 꿈꾸지만 나중에 만화에 흥미가 생겨서 중학교때는 만화 클럽을 만들어서 3년간 만화에 빠져 지냈지만 자신의 실력으로는 프로가 될수 없음을 깨닫고 만화가의 꿈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만화가의 꿈을 포기했지만 그림을 잊지 못하고 공업디자인학과에 입학을 하였고 졸업한 후에는 아버지의 소개로 닌텐도에 입사하게 되었답니다. 완구와 트럼프등을 디자인한 그는 맥도날드에서 경품으로 제공하는 장난감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일본에서 성공을 하자 닌텐도 역시 게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미야모토 시게루는 돈키콩을 개발하게 됩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여자 가수 비욘세 잘 아시죠? 요즘 한국에서 꿀벅지 열풍이 불면서 새삼스럽게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바로 비욘세이죠. 그리고 그의 남편 제이지는 한국의 연정훈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비욘세의 결혼을 안타깝게 여기는 남자분들도 많이 있지요. 그런 비욘세가 요즘 닌텐도 위핏 게임에 한창 빠져있답니다. 위핏을 정말 사랑하게 됐다는 그녀는 댄스를 결합한 게임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었답니다. 평소 그녀는 지루하게 기구를 이용해서 운동을 하지 않고 춤과 퍼포먼스를 결합해서 재미있게 운동을 하고 있다며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운동을 한다면 더욱 즐거울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를전하는 해외 외신들은 이미 비욘세가 이미 패션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잘알고 있는 만큼 비욘세가 게임을 만들고..
비즈니스 위크에서 선정한 올해의 최고 기업에 닌텐도가 1위에 선정되었습니다. 2위가 구글이고 3위가 애플이길래 IT 기업중에서 선정한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글쌔 4위가 두산 중공업이고 5위가 현대 중공업이 올랐네요. 저는 두산이 내가 알고 있는 기업인가 의심스러워서 국적 먼저 살펴봤는데 한국의 두산이 맞더군요. 제가 그다음으로 한일은 무엇일까요? 삼성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두회사는 39위안에 없더군요. 안타깝게도 LG와 현대도 없고 소니 또한 명단에 등장하지 않았네요. IT 기업으로는 17위에 IT 기업과 31위의 오라클 정도입니다. 그런데 30위까지 순위를 보니 석유기업들이 무려 9개가 되더군요. 역시 석유기업의 이익이 대단합니다. 이러한 조사 자료는 어떻게 매겨졌나 보니 20%를..
GamesRadar에서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일본 게임 광고의 변천사를 소개했는데요. 이것저것 살펴보니 재미있는 것들이 있어서 함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1. 닌텐도의 첫번째 게임기 GAME 6 닌텐도의 가정용 게임기하면 패미컴 먼저 떠오르시겠지만 1979년 이미 game 6와 game 9을 발매헀습니다. 지금이야 닌텐도는 독창적인 게임개발로 유명하지만 위의 동영상을 보시면 아타리의 퐁을 많이 베꼈음을 알것입니다. 그런데 1979년만해도 게임화면에다가 해설자가 계속 게임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지루함 그자체의 광고를 내보냈는데요. 1980년대에는 조금 변화된 모습을 보입니다. 2. 세가의 새로운 도전 SG-1000 SG-1000은 패미컴과 비슷한 시기에 발매되었으나 크게 실패한 비운의 게임기입니다. 19..
닌텐도가 이번에 새로운 특허를 등록했습니다. 바로 체감형 럭비 게임입니다. 이미 승마형 게임에 대한 특허를 등록했고 여기에 자전거 폐달 게임에 대한 카탈로그가 돌아다니고 있는데요. 이걸 보니 닌텐도가 자신들의 미래 전략을 장난감회사로 결정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닌텐도는 장난감회사로 시작되었고 비디오 게임을 장난감의 하나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때문에 애들만을 상대로 게임을 만든다는 인식이 강해졌고 닌텐도는 아이들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게임을 만드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닌텐도 DS에서는 두뇌트레이닝게임을 내놓고 닌텐도위로는 위핏을 내놓음으로써 육체를 단련한다는 신 개념의 게임을 만들어서 게임기 전쟁에서 완승을 거두었죠. 현재는 닌텐도는 게임의 벽 자..
아주 재미있는 소식이 하나 전해졌네요. 닌텐도가 이번에는 자전거 폐달 게임을 내놓는답니다. 크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위에 사진을 보면 어떤 게임인지 단번에 알수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제작사와 출시시기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닌텐도의 게임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다수입니다. 자전거를 밖에서 타지 뭐하러 저런 기구를 89달러주고 구입을 하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저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저처럼 밖에 나가기는 싫지만 또 운동은 건강차원에서 해야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닌텐도 위핏만 해도 밖에서 30분 뛰는게 좋지 뭐하러 닌텐도 위핏을 구입하느냐고 하지만.. 저는 구입해서 매일 30분씩 운동합니다. 물론 큰 운동효과는 아니지만 확실히 안한것보다는 괜찮더군요. 그런데 제가 하체가 약한데 저 기구라면..
지금 일본은 국민게임인 드래곤 퀘스트가 발매되어서 아주 난리가 났네요. 드래곤 퀘스트 9은 단 이틀만에 230만개가 넘게 판매되었고 시리즈 전체는 5천만개가 넘게 되었습니다. 공략집도 15만권이 넘게 판매 되어서 6주동안 1위를 기록했던 무라카미 하루키를 밀어 내버렸습니다. 드래곤 퀘스트 9가 발매 된후 닌텐도 DS 역시 판매량이 급상승해서 한주간 무려 15만대가넘게 팔렸다는군요. 그렇게 많이 팔린 닌텐도 DS가 아직도 더 팔릴 시장이 있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 그런데 드래곤 퀘스트 9가 나온직후 아마존을 중심으로 게임에 대한 악평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패미통에서 시리즈 사상 최초로 만점을 받으면서 진정 국면으로 접어든 양상입니다. 비록 패미통이 과거 같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시작된 경제 위기는 그 후 금융계로 옮겨져서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세계 최고의 금융회사로 평가받던 AIG와 시티은행의 생존까지 불투명하게 만들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경제위기는 또다시 제조업에게까지 이어져서 세계최대 자동차 회사인 GM이 파산직전에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으며 짠물 경영의 도요타마저도 적자를 기록하면서 전세계 경제에 쇼크를 안겨주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그나마 괜찮은 실적을 보여줬던 IT 마저도 최근 급격한 경영위기를 겪으려 세계 초일류 기업들이 구조조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미 소니, IBM, 델, HP, 이베이, 야후등이 구조조정안을 발표했으며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경비절감을 위해서 1만명이 넘는 직원을 해고할수 있다는 소문이..

닌텐도 연혁 1989년 야마우치 후사지로는 일본 교토에 화투와 트럼프 같은 카드제조회사인 닌텐도를 창업한다. 1927년 닌텐도를 게임시장에 진출시키는 야마우치 히로시가 태어난다. 어린시절 야마우치 히로시의 아버지 키미는 집을 나가 행방불명된다. 1929년 야마우치 세키요가 야마우치 후사지로의 뒤를 이어 사장이 된다. 야마우치 세키요는 야마우치 히로시의 할아버지로 야마우치 히로시를 실질적으로 양육한다. 1933년 야마우치 세키요는 교토지역에 있던 카드회사를 모두 합병한다. 그후 카드의 원재료인 종이회사를 인수하는등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1945년 와세다 대학의 법학과 학생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는 지역의 명문가 출신인 이나바와 결혼을 한다. 1947년 와세다 대학의 재학중 할아버지인 야마우치 세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