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유는 게임 크리에이터 중에서 가장 다재 다능한 사람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미술 전시회를 열 정도로 수준급의 그림실력을 보여준다. 이미 AM2연구소에서부터 프로그래밍 실력은 최고로 인정 받았다. 그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로 속도를 즐기는 스피드 광이기도 하다. 세가에서 페라리라는 말이 나오면 스즈키 유를 연상할 정도로 동급의 이미지로 취급 받을 정도이다. 모터 스포츠외에 그가 즐기는 취미는 와인과 당구이다. 이미 당구는 쉔무에서 게임으로 구현했고 그는 이제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을 게임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농담 삼아 말한다. 그는 행복한 가정을 가꾼 훌륭한 가장 중에 하나다. 그는 집에서 아이들과 하는 게임이 가장 재미있기 때문에 직장에서 일로써 게임..
스즈키 유의 AM2 연구소는 가정용 게임이 아니라 오락실의 아케이드 게임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세계최고의 기술력으로 세계최고의 게임을 개발한다는 그들의 좌우명 되로 AM2 연구소는 버추어 파이터 이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최고의 게임 개발팀으로 공인 받게 된다. 세가가 AM 연구소의 이러한 명성을 그냥 놔둘 리가 없었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 부진했던 세가의 경영진은 AM2연구소에 가정용 게임기인 드림캐스트 전용으로 게임을 개발하도록 지시를 내린다. AM2 연구소는 이로써 첫 번째 가정용 콘솔 게임 전용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사실 이것 때문에 AM2 연구소에서는 여러 가지 논쟁을 벌여야 했다. AM2 연구소가 콘솔 전용 게임을 개발하게 된다는 것은 하드웨어의 제약 없이 무조건 세계 최고 기술..
1980년대 후반만해도 3D 기술은 백만 달러가 넘는 초고속 컴퓨터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3D 그래픽 기술을 게임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감히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상의 단 한명 스즈키 유는 그 동안의 명성 덕분에 당돌하게도 3D 전용의 하드웨어 머쉰을 게임에 구현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바로 MODEL 1이다. 스즈키 유는 당시 비행기 조종사들을 대상으로 실제 비행기를 탄 것처럼 가상적인 그래픽환경을 3D로 제공하여 교육 시키는 컴퓨터 기술을 게임에 응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스즈키 유는 전투기나 비행기를 만드는 록히드 마틴사가 그 기술에 최고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과 접촉했다. 그렇게 해서 록히드 마틴사는 세가의 주문대로 동시 발색수 1600만색에 1초당 18만폴리곤..
스즈키 유는 1958년 6월 10일 이와테 현의 외곽지역인 카마이시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자랐다. 그는 어린 시절 게임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로 미술과 음악과 같은 예능 분야에 조예가 깊었는데 이 덕분에 그는 공부 이외에도 여러 예능 활동을 하느라고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는 서예와 그림까지 공부하면서 그는 게임 크리에이터가 갖춰야 할 기본능력을 이미 갖추게 되었다. 물론 그는 이때까지의 모든 예능 활동이 게임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는 그때까지 게임이라는 것 자체를 몰랐던 시절이었다. 자신은 그저 아버지처럼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스즈키 유는 오카와마 공과 대학에 입학해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게 된다. 대학생..
"오늘 실패한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실패했다고 해서 내일도 모레도 계속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게임 개발이라는 것은 대부분 실패의 연속입니다. 실패가 거듭되다가 포기하기 직전 성공하는 것이죠.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붑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즈키 유는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로 일약 세계적인 게임 크리에이터로 도약했다. 하지만 세계최초의 아케이드 게임인 “행온”을 1985년에 발표하면서 이미 세가 내에서는 최고의 게임 크리에이터로 인정받고 있었다. 행온은 그가 1983년에 세가에 입사해서 단 2년 만에 이루어놓은 성과이기에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행온에서 그는 프로그래밍과 기획을 같이 담당하여 게임의 개발에 절대적인 공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