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몰리뉴는 영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기획자이니만큼 그는 단순히 자기의 게임회사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항상 유럽에서 게임 산업이 어떻게 해야 발전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한다. 300여 개 였던 게임 개발사가 수십 개에 불과해진 현재의 유럽의 상황에 대해서 그는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회사가 자금을 투자 받는 방식에 대한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그의 이런 노력을 알기 때문에 영국왕실에서도 그에게 영국 국민에게 최고의 영예인 대영제국훈장(OBE)을 선사한 것이다. 현재 영국 왕실도 게임을 미래 전략 산업으로 보고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영국 왕실의 앤드류 왕자가 한국에 와서 게임업체인 엔씨 소프트와 웹젠을 방문한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토니 블레어 수상도 피터 몰리뉴..
EA를 그만 둔 후에 피터 몰리뉴는 무조건적인 휴식을 선언한다 그래서 한때 사람들은 그가 게임계에서 은퇴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돈도 많이 있으니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하는 게임 개발자 보다는 뭔가 편한 일을 찾아 볼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약간의 휴식을 하고 바로 게임계로 복귀한다. 그리고 라이언 헤드를 설립한다. 그는 게임 개발사를 차리면서 한가지 결심을 하게 된다. 한 팀에서 20명 이상을 투입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긴밀한 관계 속에서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개발 인력의 한계를 20명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급박한 상황 속에서는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하는 비상 사태가 있을지라도 핵심 인력은 무조건 20명을 상한으로 두는 원칙을 세웠던 것이다. 이러..
피터 몰리뉴는 새로 게임회사를 창업하면서 우선 회사이름을 게임회사와 어울리는 볼프로그(Bullfrog )로 개명하기로 한다. 그는 뭔가 세상을 깜짝 놀랠만한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렸다. 개미들을 괴롭히며 자신이 그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절대자의 기분과 느낌을 게임에 적용하면 어떨까 하고 고심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컨셉을 확대 발전시켜서 게임 플레이어가 신이 되어서 세상을 다스리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을 해보았다. 이렇게 해서 신이 인간생활에는 직접 개입하지는 않지만 주변환경이나 날씨등의 변화를 통제하면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지켜보는 갓 게임(God Game)을 제작하게 된다. 이게임의 원래 제목은 크리에이션(CREATION)이었으나 게임을 유통..
개미 킬러였던 어린 시절 피터 몰리뉴는 1960년 영국 길포드 써레이(Guildford, Surrey)에서 장난감 가게 주인의 아들로 태어난다. 곤충들에 대한 특별한 호기심을 제외하고는 그의 어린 시절은 일반 사람과 틀린 것이 없었다. 그는 다섯 살쯤에 집의 앞마당에서 우연히 개미떼를 발견한 이후에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큰 재미를 느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인가 개미들의 생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우선 막대 사탕과 과자 그리고 설탕들을 모아서 개미들이 모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이동경로를 따라서 흙을 팠다. 개미들의 본거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개미 본거지에서 여왕개미를 보고서 그들의 권력관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왠지 모르게 심술이 난 그는 개미들의 안식처(?)를 일부러 부..
나는 한때 게임이 스노보드와 같이 일시적인 유행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게임은 영화의 최고 경쟁자이다. 와우~! 정말 놀랍지 않은가요? 영국 명예 훈장 수상 소감 중에서 피터 몰리뉴는 리차드 게리엇(울티마 시리즈 개발) 그리고 시드마이어(문명 시리즈 개발)와 함께 세계 3대 게임 개발자로 불린다. 하지만 필자 본인의 생각에 그는 리차드 게리엇이나 시드 마이어보다는 중량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리차드 게리엇은 아시다시피 울티마라는 게임으로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을 최초로 개발했고 6개월 차이로 최초의 타이틀은 놓쳤지만 울티마 온라인을 통해서 MMORPG 게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또한 시드 마이어는 게임타이틀에다가 자기이름을 붙인 최초의 게임 크리에이터이다. 시드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