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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창업공신 앤디그로브(2) 실리콘밸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인텔





인텔이 실리콘 밸리에 끼친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다. 실리콘 밸리라는 어원자체가 8인의 배신자들을 취재하면서 돈 회플러(Don Hoefler)가 만든 말이다. 물론 8인의 배신자중에서 리더는 인텔의 창업자 로버트 노이스였고 그 덕분에 로버트 노이스는 실리콘 밸리의 시장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로버트 노이스는 현재 인텔의 최대 라이벌 업체인 AMD에게도 큰 도움을 줬다. 원래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근무했던 제리 샌더스와 그의 동료들은 회사를 그만두고 AMD를 창업하려했지만 아무런 투자자도 모집하지 못해서 그 꿈을 접으려 했다. 이때 소식을 들은 로버트 노이스는 페어차일드시절의 정을 생각해서  조금의 돈을 투자했다. 반도체 업계의 슈퍼스타 로버트 노이스가 AMD에 투자했다고 외부에 알려지자 AMD는 창업자금을 쉽게 투자받을 수 있었다. 현재는 인텔의 최고 라이벌회사가 되어버린 AMD이지만 이사건은 인텔이 실리콘 밸리에 끼친 영향을 논할때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71년 세계최초의 마이크로 프로세서 4004 를 대량생산할때쯔음에 고든 무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인류역사 최고의 혁신이라고 자화자찬을 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집 한채 크기의 컴퓨터가 겨우 처리했던 능력을  겨우 손바닥 만한 크기의 마이크로 프로세서 4004으로 구현했으니 인텔로써는 정말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인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이 적어도 디지털 시대에 있어서는 확실히 최고 발명품 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빌 게이츠는 71년도에 인텔의 마이크로 프로세서에 대한 기사를 보고 감동하였고 그 제품을 이용해서 사업을 할 결심까지 하였다. 고등학생 신분이었지만 빌게이츠는 그의 첫번째 회사 TRAF- O –DATA를 세우고  인텔의 마이크로 프로세스 404를 150개정도 구입해서는 고속도로의 교통량을 계산하는 장치를 개발하여 판매하기까지 하였다.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 컴퓨터라고 불리우는 알테어 8800에도 인텔의 마이크로 프로세서 8008이 들어 있었다.  결국 빌 게이츠가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도 인텔의 마이크로 프로세서 덕분이다. 알테어 8800의 탄생을 알리는 파퓰러 일렉트로닉스의 75년도 1월호의 기사를 보고 빌게이츠와 그의 동업자 폴알렌은 남들보다 뒤쳐지기 전에 디지털 바다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야 한다면서 학교를 그만뒀기 때문이다. 빌게이츠가 오늘날 세계 최고의 디지털 황제가 되는데 있어서 역시 인텔의 도움을 빠뜨릴 수 없다. 빌게이츠의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유독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와 궁합이 맞았다. 그리고 IBM이 PC를 개발하기 위해서 조언을 구할 때 인텔을 극찬해주었다. IBM은 자사의 PC에 인텔의 8088 칩을 장착했고 빌게이츠는 자신의 프로그래밍 실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는 한때 윈텔(윈도우와 인텔의 합성어)이라 불리울정도로 밀월관계를 유지했고 서로의 상승을 견인하며 오늘날 두 회사는 각각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회사의 최고가 되었다. 


3장의 마이클 델 역시 인텔의 도움을 받아서 컴퓨터 조립을 시작할 수 있었고 인텔과의 독점계약을 통해서 개인용 컴퓨터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91년 인텔인사이드 캠페인이 전 세계적으로 펼쳐졌을 기존의 메이저 업체인 컴팩(Compaq)과 IBM은 인텔을 견제하느라고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판매하는데 소극적이었지만 델 컴퓨터는 이틈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메이저업체로 부상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5장에서 이야기하게될 손정의는 인텔에서 개발한 마이크로프로세서 소식을 듣고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꿈을 디지털에서 찾으려고 했다. 6장의 루거스너가 CEO로 재직했던 IBM은 개인용 PC 이전에 두 회사는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 회사였다. IBM은 인텔의 메모리칩을 집중적으로 구입해준 회사이며 이후 서로 상호 발전을 도운 돈독한 관계였다. 사실 창업자 로버트 노이스가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만든 첫번째 집적회로 기판을 구입해준 회사가 IBM이었기 때문에 두 회사는 원래 친숙한 사이였다. 

인텔의 핵분열과정을 보면 실리콘 밸리 자체가 결국 인텔의 확장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인텔의 직원으로 시작해서 다른 회사로 옮겨가서 실리콘 밸리 신화에 이바지 한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차고에서 컴퓨터를 만들던 두 청년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거액의 돈을 투자한 마쿨라(Markkula)는 원래 인텔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던 사람이었다. 인텔에서 받은 주식이 100만달러의 가치가 넘어서자 회사를 그만두고 편안히 은퇴생활을 보내려 했다. 하지만 애플의 스티브잡스와 워즈니악을 만나서 애플을 정식회사로 설립하게 된다. 그런데 마큘라에게 애플의 존재를 알려준 사람도 인텔의 홍보담당자 레지스 맥키너 였다. 인텔에서 세계최초의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개발한 테드 호프는 나중에 아타리로 옮겨가 가정용 게임기 개발에 큰 역할을 한다. 인텔에서 마케팅 담당일을 했던 존도어는 실리콘 밸리의 벤처 캐피탈리스트로 인터넷 붐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그는 컴팩,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넷스케이프, 아마존, 구글에 투자해서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두며 포브스지로부터 마이다스라는 찬사를 들었다. 사실 벤처 캐피탈리스트라는 개념자체가 바로 인텔에 의해서 정립된 개념이다.  인텔창업초기에 30만달러를 투자한 아서록은 인텔의 주식으로만 7억달러를 벌어들인 전설이 되었다. 그는 실리콘 밸리에 벤처 캐피탈을 도입한 원조로 인정받고 있다. 인텔 투자후 그는 본격적으로 벤처 캐피탈리스트가 되었는데 애플의 초기투자로 역시 큰 돈을 벌어들였다.


사실 인텔이라는 회사를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디지털 시대의 역사에서 그들이 끼친 공헌들에 대해서 새삼 놀라게 된다. 고든무어는 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시대를 변화시키는 진정한 혁명가라고 말하였는데 오늘날 인텔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시대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그러한 자부심이 절대 헛말로 들리지 않는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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