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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그토록 스티브 잡스에 열광할까? 그가 만든 위대한 상품들이 주요한 요인이긴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대부분의 IT 대부들은 재력이 있는 부모를 만나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지냈고, 사업 초창기에 약간 고생을 하지만 이후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순탄하기만한 다른 IT 대부들과 다르게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으며 굴곡 있는 삶을 살았다. 스티브 잡스의 파란만장한 삶을 보면 몹시 극적이고, 그만큼 사람들에게 교훈과 감동을 준다. 스티브 잡스는 실패와 실수를 반복하였고 숱한 고난과 난관을 경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깨달음을 얻어 더욱 강한 사람이 되었다. 예컨대,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 난 후 실패자로 낙인이 찍혔지만 결국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인 토이 스토리를 성공시켰고, 나중에는 애플에 돌아와서 회사의 르네상스를 이끌게 된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인생에서 매우 소중한 가르침을 얻었다고 한다. 만약 자신이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애플을 부활시킬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실패가 자신에게 약이 되었음을 깨달은 그는 실패마저도 삶의 양식으로 생각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의 인생자체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된다. 이번 장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어떠한 고난과 실패를 경험했으며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31. 저는 흠집이 난 스테인리스를 좋아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들과 비슷한 모습이거든요. 저도 내년이면 이제 50세가 되는데 제 인생도 흠집이 난 아이팟의 스테인리스하고 많이 닮았거든요.


The perfect thing, Steven Levy,Simon and Schuster, 2006





32. 제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 중 하나입니다. 저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들은 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했던 분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들이 내 주변에 있는 걸 원치 않았어요. 다른 사람이 나한테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않았으면 했거든요. 저는 기차로 떠돌다가 지금 막 도착한 고아처럼 보이고 싶었습니다. 뿌리나 연줄 그리고 배경이 없는 사람으로 말이죠.


Steve Jobs, Isaacson, Walter, Simon&Schuster  2011.11.21


<해설> 양부모님은 스티브 잡스를 정성스럽게 길렀고 평생 모은 재산을 있는 대로 모두 스티브 잡스의 대학교 학비로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잡스는 부모님에게 매정했다. 원래 부모님은 엄청난 학비 때문에 다른 대학을 가도록 설득했지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가고 싶다는 이유로 리드 대학교를 끝까지 고집했다. 스티브 잡스의 중학교 시절, 당시 가지고 있던 돈을 끌어 모아 가장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를 갔던 양부모님은 이번에도 결국 스티브 잡스의 뜻에 따랐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리드 대학교로 떠났는데, 이는 스티브 잡스에게 평생동안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 되었다. 이 모습만보자면 참으로 철없고 어이없는 행동이지만, 스티브 잡스는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서 평생 모은 재산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는 달라졌다. 그는 누군가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를 양부모님이라고 이야기하면 바로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애플이 성공하자 스티브 잡스는 부모님에게 75만 달러어치의 주식을 주기도 했다. 1980대 초 스티브 잡스는 탐정을 고용해서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찾기 시작했지만,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주의했다. 행여나 양부보님이 섭섭해 하진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부모는 폴과 클라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다. 1986년 클라라 잡스가 폐암으로 사망하고 나서야 스티브 잡스는 생모인 조앤 심프슨에게 연락을 했다.




33. 제가 좀 다르게 처신했더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아버지로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그 애가 내 딸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지원하기로 했고, 크리스앤에게도 양육비를 좀 주었습니다. 팔로알토에 있는 집을 찾아 수리하고선 임대료 없이 크리스앤과 딸애를 살게 했습니다. 애 엄마는 아이가 다닐 만한 좋은 학교를 찾았고, 저는 교육비를 지불했습니다. 저는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을 다시 할 수만 있다면, 더 잘 해보고 싶습니다.

Steve Jobs, Isaacson, Walter, Simon&Schuster  2011.11.21



<해설> 스티브 잡스가 받는 가장 큰 비난은 젊은 시절 여자친구 크래스앤 브레넌과의 사이에서 낳았던 친딸, 리사를 부정했다는 점이다. 그 사실만 본다면 스티브 잡스는 굉장히 나쁜 사람이지만, 후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고,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인텔의 CEO였던 앤디 그로브는(이게 맞는말인데 잘못썼네요.)) 스티브 잡스는 본인 스스로 애플에 돌아오기 전의 스티브 잡스 1.0과 돌아온 후의 스티브 잡스 2.0으로 나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볼 때에는, 스티브 잡스는 결혼 전의 스티브 잡스 1.0과 결혼 후의 스티브 잡스 2.0으로 분류된다. 결혼 후 스티브 잡스는 무엇보다 가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남자가 되었다. 사실 스티브 잡스는 아내 로렌이 임신을 했을 당시, 헤어질 뻔한 위기를 겪었지만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리사를 데려와 정성스럽게 키웠다.로렌과의 사이에서 3명의 자녀를 낳았고 아이들과 노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이웃은 그가 좋은 아빠였다고 기억했다. 결혼 후에 좀더 남을 생각하고 부드러운 남자로 변신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으려 노력했기에 행복한 가족의 가장이 될 수 있었다. 





34. 자신의 컴퓨터를 직접 조립하고 싶어 하는 하드웨어 애호가들은 1,000명중에 한 명밖에 안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느긋하게 컴퓨터를 즐기고 싶을 뿐이지요... 제가 10살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애플 II에는 최초로 완성품 상태로 포장된 컴퓨터로 팔겠다는 나의 꿈이 담겨져 있습니다.

AppleDesign,Paul Kunkel, Rick English,Graphis Inc., 1997



 

<해설> 스티브 잡스의 개발과정은 그 자신의 인생과도 닮았다. 실수나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 이에 깨달음을 얻고 극복하고자 한다. 150여 대 판매된 애플Ⅰ 컴퓨터는 엄밀히 말하면 실패작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애플Ⅰ컴퓨터가 일부 마니아들에게만 통한 제품이었다는 점을 깨닫고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컴퓨터를 구상한 끝에 애플 Ⅱ를 완성하게 된다.




35. 무한히 셀 수 없는 돈을 잃었습니다. 만약에 애플 Ⅲ가 성공했다면 IBM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들어오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이지요. 우리는 그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더 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STEVEN JOBS: PLAYBOY INTERVIEW , DAVID SHEFF , the February 1985





36. 우선, 너무 비쌌습니다. 만 달러 정도나요. 우리 회사의 근간이 팔려나가고 있을 때, 애플은《포춘Fortune》지에서 발표하는 500대 기업 리스트에 들었고, 거대 기업들에 상품을 판매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문제들도 있었습니다. 늦은 배송이었습니다. 애썼지만 소프트웨어가 결국 함께 배송되지 못했습니다. 일은 탄력을 잃었지요. 우리 가격이 너무 높고, 제품 배송이 6개월씩이나 늦어지는 사이에 IBM은 아주 순풍을 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다른 전략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150명의 딜러만으로 198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개인용 컴퓨터 모델 Lisa를 팔기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정말이지 희생이 컸던 어리석은 결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케팅 및 경영 분야의 전문가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럴 듯한 아이디어였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너무 신규 사업 분야였고,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들은 더 많은 손실만 초래했습니다. 

STEVEN JOBS: PLAYBOY INTERVIEW , DAVID SHEFF , the February 1985



<해설> 애플 Ⅱ 이후에 스티브 잡스는 애플 Ⅲ와 리사의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둘 모두 커다란 실패를 낳게 되었다. 애플 Ⅲ는 완성되지 않은 제품을 무리하게 출시한 것이 문제였으며, 리사는 9,995달러라는 비싼 가격과 소프트웨어 부족이 문제였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개발하면서 합리적인 가격의 컴퓨터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직접 부품 제조사를 찾아가 가격을 낮추기 위한 협상을 벌이기도 해서 모토로라의 CPU를 9달러에 공급받았다. 이는 원래 모토로라가 제시한 금액의 4분의 1밖에 안된 금액이었다. 덕분에 매킨토시는 리사보다 훨씬 저렴한 2,500달러에 판매되었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소프트웨어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마이크로소프트나 로터스같은 업체를 직접 찾아가서 매킨토시용으로 소프트웨어를 발매하도록 하였다. 이때 스티브 잡스가 발굴한 업체 중에 하나가 바로 차고에서 시작된 어도비가 있다.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의 기술을 높이 사서 250만 달러를 투자하기도 한다. 

비단 이뿐만 아니라 여러 실패를 겪어서인지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의 완성도에 집중했다. 매킨토시는 1982년 1월까지 완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발매를 계속 연기하였고 1984년에야 매킨토시를 소개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에게 “출시 전까지 끝나지 않았다”는 말을 하면서 늘 완성도 높은 제품을 강조했다. 출시 기일이 미루어지더라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려고 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의 합리적인 가격과 풍부한 소프트웨어, 높은 완성도 덕분에 리사의 실패를 극복하고 컴퓨터를 재발명했다는 극찬을 받게 되었다.





37. 누군가 마치 제 배를 강타한 듯이, 숨통이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겨우 30 세였고 계속해서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컴퓨터가 최소한 한 대 이상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지요. 하지만 애플은 제게 그것들을 개발할 어떤 기회도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PLAYBOY, September 1987(via Apple confidential 2.0)



<해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것은 단순히 그가 창업한 회사를 그만두는 수준이 아니었다. 자신이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마이크 마쿨라(애플이 차고 시절에 있을 때 자금을 투자했으며, 후에 애플의 CEO.), 아서록(인텔에 자금을 투자한 벤처투자가로 애플에도 자금을 투자함), 존 스컬리(스티브 잡스가 영입한 CEO)로부터 버림받은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38. 그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것은 제가 겪었던 일들 중 최고 중에 하나였습니다. 성공한 사람의 무거움은 다시 초심자의 가벼움으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것이 덜 확실했지요.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 시기로 들어가는 데 자유를 주었습니다. 

다음 5년 동안, 저는 넥스트에서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픽사라는 회사를 차렸고, 그곳에서 훗날 제 아내인 굉장히 멋진 여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토이 스토리>라는 첫 번째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입니다. 더욱 믿을 수 없는 사건은 애플이 넥스트를 사고 내가 애플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넥스트에서 개발된 기술은 현재 애플 르네상스의 핵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로렌과 저는 멋진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만약 애플을 떠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 거라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독하게 쓴 약이었지만 제 생각에 그것은 환자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삶이 당신의 머리를 벽돌로 내려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저를 계속 유지하게 한 유일한 힘이 바로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한 것에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 역시 사랑하는 것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Speech 2005‎




 

39. 저는 언제나 보다 혁명적인 변화에 마음이 더 끌립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정말 힘들고 정신적으로 더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는데도 말이죠. 게다가 저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완전히 끝장났다"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Steve Jobs in 1994: The Rolling Stone Interview, JEFF GOODELL, ROLLING STONE, 1994





40. 픽사에서 <토이 스토리>를 만들 때 스토리가 훌륭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을 겪었습니다. 그 당시의 스토리는 정말 별로였습니다. 우리는 5개월 동안 작업을 중단하고 빈둥거리며 진짜 <토이 스토리>라고 할 만한 시나리오가 완성되기만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만약 작업을 중단할 용기를 가지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토이 스토리>나 픽사는 절대로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그것을 스토리의 위기라고 하는데 그런 일이 절대로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영화에는 그와 같은 위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5개월씩이나 작업을 중단하지는 않죠, 하지만 우리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좀 더 현명하게 생각합니다. 일이 제대로 잘 되지 않는 순간은 언제나 있습니다. 그럴 때 당신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도 스스로를 바보라고 생각하기 쉬워지는 법입니다.


Steve Jobs speaks out, Fortune,  MARCH 0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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