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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박스 이야기는 잡스가 고등학교 3학년 그리고 워즈니악이 버클리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블루박스사건 이후 잡스는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리드대학교에 입학한다. 대학에 들어간 스티브 잡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 생활에 실망하게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강좌를 필수과목으로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규정이 싫었고 대학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어려운 재정상황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대학을 자퇴한 후 잡스는 대학에 남아서 관심이 가는 강좌들을 수강하였다.  



돈이 별로 없었던 잡스는 빈 병을 모아서 용돈을 마련하였고 숙식은 친구 집에서 해결하였다. 한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 11km를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교 사원을 가기도 하였다. 그곳에서는 공짜로 식사를 제공했기 때문에 잡스는 일요일마다 그곳을 향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 도서관에서 많은 책들을 읽었는데 그의 흥미를 끈 것은 각종 불교관련 서적이었다. 선불교에 관심이 많아진 그는 인도를 여행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18개월간의 대학교 캠퍼스 생활을 마감하고 부모님 집으로 돌아온 잡스는 인도를 여행할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취직을 결심한다.  신문의 구인란을 보던 중 그의 눈길을 끄는 회사가 보였다. 바로 아타리였다. 


컴퓨터 게임의 시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많은 논쟁을 낳고 있다. 최초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역사학적인 관점에서는 1958년에 만들어진 테니스 포 투(Tennis For Two)가 최초의 컴퓨터 게임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립 브룩헤이븐 연구소(Brookhaven National Laboratory, 미국 원자핵 물리학 연구소)에서 연구 책임자로 일을 하고 있었던 윌리엄 히긴보텀(William Higinbotham)은 선구적인 컴퓨터 학자중의 한 명이었는데 견학을 오는 사람들이 따분하지 않고 재미있게 컴퓨터를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테니스 포투라는 게임을 생각해 내었다. 테니스 포투는 말 그대로 테니스에서 모티브를 얻었는데 공이 화면의 끝에 닿는 타이밍에 맞추어 버튼을 누르면 공이 튀겨나가는 단순한 방식의 게임이었다. 



테니스 포투가 완성되자 윌리엄 히긴 보텀은  연구소에 견학하는 방문객들을 상대로  게임을 공개하였다. 윌리엄 히긴보텀이 당초 의도 하였던 대로 많은 사람들이 직접 게임에 참여해서는 열광하고 즐거워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테니스 포투는  잊혀지기 시작했다. 윌리엄 히긴 보텀은 테니스 포투를 이용해서 사업화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나마 1970년대부터는 더 이상 외부인들에게 공개하지 않은 상태로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브룩헤이븐 연구소를 방문해서 직접 게임을 시연해 본 소수의 몇몇 사람만이 테니스포 투를 기억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1982년도에 크리에이티브 컴퓨팅(Creative Computing)이라는 미국잡지가 심층 발굴한 특종 기사를 통하여 그 동안 잊혀졌던 테니스 포투의 존재를 찾아냄으로써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윌리엄 히긴보텀의 테니스 포투가 언론기사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스티브 러셀(Steve Russell)이 개발한 스페이스 워(SPACE WAR)가 세계최초의 컴퓨터 게임으로 공인 받고 있었다. 스티븐 러셀은 MIT 대학의 학생으로 재학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티븐 러셀이 다니는 학교 연구소에 1962년 당시로써는 혁명적인 성능의 최신 컴퓨터 PDP-1(Programmed Data Processor-1)이 들어오게 된다.


 처음 컴퓨터를 보게 된 스티브 러셀은  PDP-1 컴퓨터의 뛰어난 성능을 활용해서 자신의 능력도 과시하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 싶었다. 마침 1962년도는 미국과 소련이 본격적으로 우주 개발의 경쟁시대에 돌입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당시 미국에서는 우주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스티브 러셀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 우주관련 다큐멘터리와 소설을 많이 읽었던 그는 우주를 배경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게임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스페이스 워로 명명된 이 게임은 두 대의 우주선이 서로를 공격하는 2인용 슈팅게임으로 제작되었다. 스페이스 워는 당시 컴퓨터가 있는 모든 대학과 연구소에 퍼져나가더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많은 학생들이 컴퓨터 실습실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스티브 러셀이 개발한 게임 스페이스 워에 몰입하였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학교 내 골칫거리로 대두될 정도였다. 


스페이스 워와 테니스 포투에 대해서는 최초논쟁은 아직까지 계속 되고 있는데 논쟁의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테니스 포투를 시연한 사람은 연구소를 방문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공개된 것 인데 실험실에 있는 모든 제품을 최초라고 공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밝혀지지 않아서 그렇지 실험실에서는 온갖 장치들이 개발되고 또 폐기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스페이스 워는 수많은 팬들이 있었고 많은 게임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논쟁의 두 번째 사유는 테니스 포투의 영상출력장치가 정식 비디오화면이 아니라 전기의 강약을 표시해주는 오실로스코프(oscilloscope)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식으로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사용한 스티브 러셀의 스페이스워가 정식으로 만들어진 진짜 비디오 게임이라는 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최초의 전자 게임은 테니스포투를 말하고 최초의 비디오 게임은 스티브 러셀로 구분하여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컴퓨터 게임과 관련되어서 미국 정부로부터 최초의 특허까지 받고 사업을 시작한 사람은 랄프베어(Ralph Baer)이다. 발명왕으로 유명했던 랄프베어는 미국 각 가정에 보급된 텔레비전을 활용한 발명품을 만들려고 고심하였다. 그는 버스터미널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다 문득 텔레비전에 연결해서 즐길 수 있는 게임기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직접 게임기를 만들고 임원들에게 시연을 하였다.  그러자 임원들은 랄프 베어의 발명품에 격렬하게 반대하였다. 하지만 정작 사장이 랄프 베어의 게임을 흥미롭게 플레이 하게 된 후부터 위기에 빠졌던 프로젝트는 순항하게 된다.


 랄프 베어가 개발한 게임기는 1972년 마그나 복스사에서 오딧세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고 이는 세계최초로 특허받은 게임기로 인정받고 있다. 오딧세이가 처음 시장에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판매량도 13만개에 이를 정도로 승승장구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반짝하더니 인기는 사그라지고 금방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 마침 게임의 사업성을 간파하고 있던 새로운 인물이 있었으니 오늘날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로 불리 우는 아타리의 창업자 놀란 부쉬넬 (Nolan K. Bushnell)이다. 


유타 대학의 컴퓨터 공학과에서 그래픽을 공부하던 그는 학교의 실습실에 설치된 컴퓨터에서 스페이스 워라는 게임을 처음 접해보고는 완전히 빠져들게 된다. 60년대만해도 컴퓨터라고 하면 일반 사람들이 떠오르는 이미지는 벽한 면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크기의 컴퓨터를 떠오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70년대에 이르러서는 컴퓨터기술의 급속한 발전 덕분에 책상 크기만한 마이크로 컴퓨터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대학을 졸업 한 후에 전자회사에 다니고 있었던  놀란 부쉬넬은 집에서 스티븐 러셀의 스페이스 워 게임을 그대로 복제한 컴퓨터 스페이스(COMPUTER SPACE)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그는 거대한 대형 컴퓨터에서 돌아가던 스페이스 워를 책상 크기 만한 컴퓨터에서 똑같이 구현을 하였고 이는 당시로써는 매우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놀란 부쉬넬은 사업의 성공을 확신했지만 정작 게임기계는 2천대 밖에 판매되지 않았다. 지금 보면 간단한 슈팅게임에 불과한 컴퓨터 스페이스였지만 당시만 해도 게임에 대한 개념자체가 없었던 시대였다. 사람들은 총알을 쏘고 피하는 컴퓨터 스페이스의 게임 방식을 무척 어려워했으며 컴퓨터라는 기계자체에 가까이 다가가기를 낯설어 했다. 그래서 놀란 부쉬넬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진행이 되는 매우 간단한 게임 방식을 떠올렸는데 그것이 바로 탁구를 소재로 한 게임 퐁 이었다. 



테니스포투의 탁구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퐁이 발매되자 컴퓨터 스페이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이 새로운 놀이에 완전히 열광했고 당시의 사회상을 바꾸어 놓을 정도였다. 퐁을 설치한 가게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오락기에 너무 많은 동전이 들어가서 기계의 작동을 멈추고 수시로 동전을 회수해야만 했다. 


덕분에 퐁을 설치한 가게 주인은 많은 돈을 벌었는데 그들이 번 돈은 동전이었던 관계로 매일 은행에 지폐로 바꾸어야 했다. 돈을 환전하기 위해서 은행을 방문하는 가게의 주인들은 강도의 표적들이 되어야 했고 결국 경호원을 고용하거나 총이나 도끼를 들고 은행에 가는 사람들이 나타날 정도였다.  어느 날은 가게에 퐁이 고장 났다는 연락을 받아서 출장을 가면 동전투입구에 돈이 꽉 차서 작동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듯 퐁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게임이 되었고 놀란 부쉬넬은 이 덕분에 게임의 아버지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게 되었다. 또한 아타리는 실리콘 밸리에서 최초로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을 성공 시킨 최초의 기업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회사였다.


<다음회에 계속>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아침 7시 주 3회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IT 왕조실록은 전자책으로 출판되어 있습니다.

멀티라이터의 IT 왕조실록 2.0은 IT 왕조실록 5권과 그외 4권  총 9권의 책이 전자책으로  담겨져 있습니다.

멀티라이터의 IT 왕조실록 2.0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IT 왕조실록 1권 : 스티브잡스와 빌게이츠의 PC 혁명
IT 왕조실록 2권 : 빌 게이츠의 소프트웨어 전쟁과 윈텔의 시대
IT 왕조실록 3권 : 인터넷의 시대 구글의 탄생과 IBM 의 부활
IT 왕조실록 4권 : 애플의 부활과 스마트폰 삼국지
IT 왕조실록 5권 : 페이스북 그리고 모두를 위한 소셜네트워크 시대

IT 왕조실록에 포함된 별책도서


6권IT 슈퍼리치의 탄생
7권 스티브잡스 명언집
8권 기획의 신 스티브 잡스
9권 애플 성공 신화의 비밀

IT 왕조실록의 구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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