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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로퍼와 오카모토는 묘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우선 둘이 회사를 그만 둘 때가 2003년도 6월로 비슷한 시기이다. 그런데 이 둘은 비대해진 회사에서 원하는 게임을 개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퇴이유까지 똑같다.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지 않고  후속작으로 수익을 챙기려는 회사에 불만이 생겼던 과정도 비슷하다. 무엇보다 기이한 것은 바로 플래그 쉽이라는 회사이름이다. 빌 로퍼가 블리자드를 그만두고 새운 회사의 이름이 플래그 쉽인데 오카모토가 귀무자와 바이오하자드의 시나리오를 전담시키기 위해서 캡콤 재직시에 세운 회사가 바로 플래그 쉽이었다.


회사를 그만 두었을 때 전 직장의 동료 대여섯 명과 같이 독립하는 과정도 비슷하고 다른 대형 게임 퍼블리셔 업체가 서로 스카우트 하려는 광경마저도 똑같았다. 그리고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도 있다. 빌로퍼야 잘 알려졌다 시피 스타 크래프트 덕분에 한국에서 떴다. 비록 오카모토가 한국에서 유명해지거나 이득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코코캡콤을 한국에 설립했고 한국에서 게임 제작 강좌를 여러 번 열정도로 열성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제작스타일도 비슷하다.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발명하기보다는 기존장르에서 혁신을 불러일으켜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수많은 테스트를 거치며 수정을 한다. 오카모토는 솔직히 스트리트 파이터가 있어서 스트리트 파이터2가 존재하듯이 쿠니오군이 있었기에 파이널 파이트가 있었다고 말한다. 바이오 하자드는 언론 인 더 다크에 영향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그는 95%의 법칙을 따른다. 즉 95% 는 기존의 게임방식에서 완성도를 높이고 나머지 5%에서 독창적인 것을 넣는 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남의 게임을 베끼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시장성을 고려하는 제품이 있는 반면에 상식을 뛰어넘는 게임도 개발해야 업계가 건전해진다는 것이 오카모토의 지론이다. 그가 독립 한 것도 속편위주로 재편된 일본 게임시장에 활기를 찾아주기 위한 도전이라고 밝힌다. 오카모토는 1961년 에히메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동키콩을 재미있게 하고서 게임 개발자가 될 것을 결심하고 1981년에 일러스트 레이터로 코나미에 입사한다. 그 후 1983년에 캡콥에 입사하며 평사원에서 회사의 전무이사까지 인정받는 입지전적의 인물이 된다. 과거 한때 오락실을 풍미했던 1942와 손손의 기획을 맡아서 능력을 인정받고 회사의 개발 총부장에까지 오른다. 이때 그는 디렉터로 스트리트 파이터2, 바이오 하자드, 귀무자의 제작을 진두지휘하며 오늘날 세계적인 게임 회사인 캡콤을 탄생시켰다. 이 덕분에 게임개발자로써는 최고 높은 자리라고 할 수 있는 전무이사에까지 등극한다. 하지만 일본 게임시장의 불황이 맞물리며 캡콤이 경영난에 빠지자 오카모토와 회사사이에 불화가 생긴다. 이때 오카모토는 회사의 속편위주의 정책에 반발하며 새로운 게임을 자유롭게 창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현재의 게임 리퍼블릭을 창업한다. 오카모토는 현재 일본 게임 스쿨중에 하나인 게임 칼리지의 교장을 겸업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제비우스의 엔도 마사노부와 스매쉬 브라더스의 사쿠라이 마사히로가 바쁜 시간 중에도 게임 칼리지에서 강의를 맡아 줄정도로 오카모토의 게임계 인맥은 유명하다. 재미있는 게임이란 보기에 즐겁고, 하면서 즐겁고, 흉내내면서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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