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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학과에서 미국의 명문대학의 하나로 손꼽히는 텍사스 대학에 합격한 리차드 게리엇은 대학에 입학 하기 전에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컴퓨터 랜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컴퓨터 랜드는 애플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각종 소모품을 파는 컴퓨터 상점이었다. 그는 매장에 있는 애플컴퓨터를 이용해서 게임을 개발할 결심을 한다. 그리고 그는 놀랍게도 세계최초로 그래픽을 지원하는 롤플레잉 게임으로 인정받는 알카라베스(Akalabeth) 를 전격적으로 개발한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를 전혀 몰랐다. 


단지 컴퓨터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니깐 자신의 게임을 상점에서 팔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가졌을 뿐이다. 게임을 완성한 그는 200 달러를 들여서 직접 디스크에 게임을 복사하고 플라스틱 가방으로 포장을 하였다. 그리고 게임의 매뉴얼을 직접 쓰고 사진까지 찍어서 게임 설명을 덧붙였다. 게임 개발에서부터 포장 그리고 상품판매까지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원맨 제작시스템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사례이다.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도 힘든 이야기지만 1979년만해도 게임은 만들어서 판다는 개념이 아니라 마니아들이 게임을 만들어서 서로 복사하거나 교환한다는 인식이 강했던 때이다. 게임이라는 개념자체가 생소했고 게임을 만들어서 판다는 것은 더더욱 상상하기 힘들었을 때 리차드 게리엇은 그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다 헤쳐 나간 것이다. 고작 고등학교 3학년인 열 아홉살의 나이에 말이다.

그는 일주일 동안 알카라베스를 모두 다섯 개밖에 팔지 못하여 약간 실망을 한다. 그러던 차에 마침 그의 게임을 좋아했던 컴퓨터 랜드의 상점 점장이 리차드 게리엇 몰래 소프트웨어 유통업체인 캘리포니아 퍼시픽 관계자에게 게임을 유통해달라면서 소포로 보낸다. 


게임을 받아본 캘리포니아 퍼시픽 관계자들은 그 게임의 가치를 알았고 바로 리차드 게리엇에게 전화를 걸어서 일체의 여행경비를 지불할 테니 본사인 캘리포니아로 와서 계약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처음에 그는 그 전화가 의심스러웠다. 거액의 돈을 주고서 자기의 게임을 계약하자고 하니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직접 공항에 마중 나와서 리차드 게리엇을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고급차를 렌트까지 해주었으며 고급호텔로 리차드 게리엇을 안내했다. 국빈 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은 그는 바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 알카라베스(Akalabeth)는 캘리퍼 퍼시픽관계자가 예상한데로 많은 수익을 거두었다. 그는 게임 카피 하나당 5달러를 받기로 하였는데 게임이 3만개를 판매함에 따라서 15만달러의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돈은 리차드 게리엇이 대학 4년 동안 학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텍사스 대학에 들어간 그는 다시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였다. 그는 두 개의 서클에 가입하는데 하나는 펜싱 동아리였고 다른 하나는 창조적 시대착오주의(creative anachronism)로 불리 우는 동아리였다. 

창조적 시대 착오주의 클럽은 각종 보드게임과 환타지 소설에 관해서 토론하고 연구하면서 여러 가지 창조적인 예술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중세시대 복장으로 코스튬플레이(유명캐릭터를 흉내내는 행위)를 하면서 이벤트를 여는 등 꽤 유명한 학교 클럽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켄 아놀드나(Ken Arnold)나 데이비드 웨스턴(David Watson)처럼 차후에 울티마 프로젝트에 같이 일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차츰 대학생활에 익숙해지자 그는 다시 게임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틈틈이 대학생활을 하면서 그는 울티마 1과 울티마2를 연속적으로 발매한다. 역시 시장에서의 반응은 좋았다. 하지만 그는 분명 이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취미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리차드 게리엇은 두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게임 사업을 결심하게 된다.





 

첫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과목에서 F 학점을 맞게 되는 사건이다. 세계 최초로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을 개발한 그가 F 학점을 맞게 되자 그는 도저히 그 사실을 받아 들일 수 가 없었다. 집에서는 아주 잘 실행되었던 프로그램이 정작 학교에서는 실행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프로그래밍에 자신이 있었던 그 에게는 아주 기분 나쁜 일이었고 그는 더 이상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울티마 2의 유통을 맡았던 시에라 온라인과의 불화는 리차드 게리엇이 학교를 중퇴하는데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시에라 온라인이 게임 판매 이익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 그는 자기 회사를 직접 차릴 결심을 한 것이다. 결국 그는 가족에게 대학을 그만둘 것이라고 폭탄 선언을 한다. 


가족들이 모두 반대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의외로 그의 가족들은 모두 일제히 호응을 해준다. 그런 반응에 리차드 게리엇은 조금 놀랐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가 그냥 일시적으로 한번 호기심으로 사업을 해보는 것이라 생각을 했다. 젊은 시절에 사업 경험을 가진다는 차원에서 그의 회사 창업을 반겼을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언젠가는 대학으로 돌아가서 진짜 직업을 가지리라고 봤던 것이다. 게다가 리차드 게리엇이 게임을 팔아서 부수입을 짭짤하게 거두는 것을 직접 지켜본 가족들은 그가 큰 손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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