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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게리엇은 마침 MIT에서 경영학 석사를 공부하고 있던 형 로버트 게리엇(현재 미국 NC 소프트 대표로 있다.)의 도움을 받아서 오리진 시스템즈를 창업한다. 이 때문에 개발은 리차드 게리엇이 머무는 텍사스주의 휴스턴에서 진행하고 재정과 홍보 같은 회사의 기타 업무는 메사추세추 주에서 로버트 게리엇이 업무를 처리했다. 로버트 게리엇은 나중에 석사학위를 받고 리차드 게리엇과 함께 텍사스 오스틴에서 합류를 한다.  오리진 시스템즈의 울티마3는 보다 강력해진 그래픽에 파티 시스템을 첨가하였다. 시장에 발매된 울티마3는 역시 롤플레잉 게임의 개척자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역시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어느덧 리차드 게리엇이나 그의 집안에서도 이제 게임 개발은 취미나 장난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바친 가업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때 게임 시리즈 역사상 최고로 평가 받는 대망의 울티마 4탄을 개발하면서서 세계 게임사를 다시 새로 쓴다. 사실 기존의 울티마는 그냥 이름만 같았던 게임이었고 게임간의 연관성이 적었다. 세계관도 어설펐고 스토리도 악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정도로 단순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게임을 개발하면서 얻은 모든 경험과 지식을 쏟아 부어서 4탄을 발매하였고 게임 시리즈 전체 역사상 최고의 역작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는 이게임을 만들고 나서 울티마 게임을 만드는 것에 흥미를 잃었다고 할 정도로 정말 모든 것을 쏟아 부었고 자신이 생각한 모든 것을 구현해냈다.


울티마 4의 특징은 철학과 윤리로 대표된다. 이른바 명성시스템을 도입해서 플레이어가 얼마나 도덕적인 상태에서 적들을 쓰러뜨렸는지가 게임 내용에 반영되었던 것이다. 이는 게임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으며 게임 세계관의 깊이가 철학적인 이슈까지 담고 있다면서 엄청난 극찬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울티마의 전성기는 5탄과 6탄까지 계속되면서 매해 가장 최고의 게임으로 등극하더니 어느덧 울티마 시리즈는 롤플레잉 게임중에서 황제의 자리에 등극한다.


이렇게 승승장구 하던 오리진 시스템즈가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울티마 7 이었다. 울티마 7은 사상최대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거대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울티마 7탄은 버그(게임상에 오류가 있어서 화면이 멈추거나 게임진행이 되지 않는 것) 문제 때문에 계속해서 발매연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서 회사의 자금 사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오직 울티마 7탄만이 성공하기를 기원하면서 회사의 모든 자금을 쏟아 부었고 겨우 출시는 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게임을 실제 구입해서 플레이한 유저들은 수많은 버그와 오류속에서 치를 떨어야 했다. 제대로 버그테스트를 하지 않고 성급하게 게임을 내놓은 결과였다. 이는 회사에 치명타를 가했다. 소비자들의 항의는 계속되었고 게임의 판매는 저조했다. 결국 이로 인해서 오리진 시스템즈는 더 이상 회사를 운영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에 이르고야 만다.


 하지만 이때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 유통업체인 EA가 오리진 시스템즈에 인수를 제의한다. 정확한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리차드 게리엇은 주식을 넘기는 대가로 수백만 달러의 금액을 받는다.

 EA의 인수로 오리진 시스템즈는 다시 자금에 여유가 생겼다. 이 덕분에 오리진 시스템즈는 울티마 8의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 할 수 있었다. 하지만 98년도에 발매된 울티마는 유감스럽게도 롤플레잉 게임이 아니라 액션게임에 불과했다. 기존에 머리를 쓰고 스토리를 음미하던 게임이 아니라 슈퍼 마리오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장애물을 피하는 게임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울티마 8탄으로 인해서 그 동안 울티마 시리즈가 쌓아 놓은 명성이 일거에 무너졌다는 위기감이 회사에 팽배해졌다. 

이때 마침 회사에서는 울티마 온라인을 진행 중이었다. 정식작업은 아니었고 단지 실험적인 차원에서 운영하던 프로젝트였다. 세계최초의 혁신적인 게임을 지향하는 오리진 시스템즈는 언젠가는 온라인 게임이 주류가 될 것이라는 예상으로 테스트 성격의 팀을 가동 중 이었던 것이다.


처음 울티마 온라인팀은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둠과 같은 3D게임으로 제작 중이었다. 하지만 번번히 기술적인 실패를 하면서 좌절 중 이었다. 그래서 욕심을 조금 줄이고 과거의 게임인 울티마6탄의 엔진을 기초로 해서 다시 울티마 온라인을 개발하자 게임의 재미도 있으면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게임 기술이 확보되자 회사에서는 울티마 온라인 게임의 시장성을 예측하고 게임 프로젝트를 본격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때 리차드 게리엇도 울티마 온라인팀에 합류해서 게임 개발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1997년도에 울티마 온라인의 상용서비스를 실시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으로 인해서 리차드 게리엇과 EA 사이에는 앙금이 쌓이게 된다. 

사실 울티마 온라인을 개발할 때만해도 EA측에서는 기존에 성공모델이 없다면서 반대를 하였다. 그가 울티마 온라인팀에 합류하려 하자 돈도 안 되는 온라인팀에 끼지 말고 9탄이나 만들라고 하였다. 

그랬던 사람들이 울티마 온라인이 성공하자 태도가 싹 달라 졌다. 리차드 게리엇과는 아무런 합의도 하지 않고서 EA 독단으로 울티마 온라인3D에서부터 울티마 온라인2, 해리포터 온라인, 윙커맨더 온라인 제작 계획을 전세계에 발표한 것이다.


온라인 게임이 성공하겠느냐며 비아냥  거렸던 그들이 이제 오리진 시스템즈가 세계최고의 온라인 게임회사라면서 회사 운영계획을 마음대로 짰던 것이다. 이런 문제로 EA와 그의 사이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이때 마침 울티마 9이 발매되었고 유감스럽게도 시장에서 저조한 판매기록을 남겼다. EA는 이때다 싶었던지 희생양으로 리차드 게리엇을 지목하고 사퇴압력을 넣는다. 결국 그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오리진 시스템즈를 2000년도에 떠나고 만다. 사실상 쫓겨난 거와 다름 없었다. 1년 이상 동종업계에서 근무할 수 없다는 계약으로 인해서 그는 이때 잠정적인 휴식을 선언하고 세계의 오지를 탐험한다. 


그러던 2001년에 리차드 게리엇은 한국의 NC소프트 미국 지사장인 송재경씨를 만나게 된다. 송재경씨는 원래 울티마를 통해서 게임 제작자가 될 것을 결심할 정도로 게임의 추종자였다. 그는 리차드 게리엇의 진가를 잘 알고 있었다. 송재경씨는 400억 원 이나 되는 거액을 들여서 리차드 게리엇을 스카우트 하려 했다.


400억이라는 돈이 터무니 없이 많은 금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게임 개발자에게 40억씩 10군데의 게임 개발업체에 지원해주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고 얘기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필자는 송재경씨의 선택이 훨씬 현명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 때의 선택이 옳았음은 이미 증명됐다고 확신한다. 우선 송재경씨는 미국에서 이미 한국의 NC소프트로는 글로벌 기업이 힘들 것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NC 소프트를 세계적으로 알릴 이슈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가 리니지를 미국에서 서비스 하기 위해서 관련 경력자를 모집하려 했을 때 아무도 NC소프트에 지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NC소프트가 당시 이미 연간 매출 천억이 넘었던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사람에게는 생소한 회사였다. 미국 개발자를 스카우트 하려 해도 그들은 송재경씨의 신분자체를 의심해서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송재경씨는 회사의 규모도 알리면서 미국 개발자들을 스카우트 할 수 있는 실력자를 알아봐야 했다. 


그리고 그 해답은 리차드 게리엇이었다. 그가 오리진 시스템즈를 나왔을 때 그를 따라서 20명이나 되는 고급 기술자들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뿐인가? 텍사스 오스틴은 미국 게임개발사들의 메카다. 그런데 그런 메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존경 받는 게임 크리에이터인 리차드 게리엇 옆에서 일하고 싶어서 사람들이 모여 들었기 때문이다. 


게임은 사람이 많다고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천재들이 만들어 가는 산업이다. 그런 측면에서 리차드 게리엇은 그의 행동 하나 하나가 언론의 취재대상이 되는 슈퍼 스타급의 게임 크리에이터였다.

그를 영입한 후에 얼마나 많은 잡지와 신문들이 그의 소식을 특종으로 보도하였는지를 살펴보면 광고비용 차원에서도400억원 이라는 돈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기사에는 항상 NC소프트가 어떤 회사인지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현황과 함께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환경까지 설명을 해주어서 NC소프트뿐만 아니라 한국의 위상까지 올라가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리차드 게리엇 덕분에 미국 게임개발자들을 스카우트하기가 손쉬워졌다. 우선 2004년도 최고의 MMORPG게임으로 뽑힌 시티 오브 히어로즈만 해도 그가 만남을 주선해서 퍼블리싱 계약을 했다. 

또한 올해 발매되어 100만장을 넘게 판매한 길드 워를 만든 아레나 넷만 해도 리차드 게리엇이 그들을 발굴했고 NC소프트가 인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 미국의 NC 소프트 법인은 흑자를 기록했고 앞으로도 본사의 지원 없이 충분히 경영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자금까지 확보했다.그리고 이제 마침내 4년 동안 먹튀라는 오명을 들으면서까지 개발을 했던 타뷸라 라사가 발매될 예정이다. 4년 동안의 개발과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지만 그건 정말 게임개발의 속성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처음 팀을 만들어서 새로운 형태의 게임을 개발한다는 것은 항상 시행착오를 거치가 마련이다. 


스즈키 유나 빌 로퍼만해도 개발중인 게임을 엎어서 새로 개발했고 나중에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란 투리스모 1탄은 개발 기간이 4년이나 걸렸다. 게임이란 만들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도 하고 대작의 경우는 4년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모르고 벌써부터 그것 봐라 하면서 고소해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이제 그는 2006년도에 게임을 공개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도 않은 시간이다.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쓸데 없는 비웃음 보다는 그가 어떤 게임을 선보일지 기대를 하도록 하자.  게임의 적은 게임이 아니다. 게임의 라이벌은 오히려 사람들이 여가시간에 즐기는 인터넷이나 영화 같은 다른 문화산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의 여가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시간을 가장 즐겁게 해줄 것에 투자하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싸이를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드라마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혹은 어떤 사람은 게임을 하기도 한다. 결국 게임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싸이를 하는 사람을 게임계로 끌어들여야 하는 것이다. 


게임관련 종사자라면 당연히 좋은 게임이 나와서 전체 게임 산업계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진정한 바램이어야 한다. 무작정 게임의 실패를 바라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리차드 게리엇엇이 누구인가? 

불모지와 다름없었던 게임산업계를 오늘날 이렇게 당당하게 문화산업으로 대접받게 만든 컴퓨터 게임계의 영웅 아닌가?  그는 지금까지 많은 혁신으로 게임산업계에 큰 자극을 주었다. 그의 실패 보다는 그가 성공적인 게임을 통해서 컴퓨터 산업계에 긍정적인 변화의 물꼬를 제공해주기를 기원하는 것이 게임업계 종사자나 게임 마니아에게 가장 타당한 바램이 아닐까 싶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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