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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구치 히로노부는 1962년 11월 25일 이바라키현에서 태어난다. 그가 처음 접한 게임은 12살 때 백화점 옥상에서 했던 퐁이다. 그리고 그는 동생과 함께 닌텐도의 게임&워치나 장난감 광선총을 가지고 즐겁게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게임은 그에게 하나의 놀이에 지나지 않았고 자신이 게임을 개발할 것이라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직접 스쿨 밴드를 조직해서 많은 곳에 공연을 다닐 정도로 음악에 자신을 불살랐다. 음악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생각으로 음악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스쿨밴드에서 그는 작사와 작곡에 보컬 그리고 일렉트로닉 기타까지 맡은 만능 멀티 플레이어로 팀의 리더였다. 그는 일본 공중파 방송사가 주관하는 순수 창작 음악 경영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의 꿈은 오직 전문 뮤지션이 되는 것이었고 그에게 공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막상 대학 시험에 떨어지게 되자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떨게 된다. 결국 사카구치는 전격적으로 음악을 포기하고 재수를 선언한다.


재수를 하는 1년 간은 그가 태어나서 했던 공부의 전체양보다 그 1년 간이 더 많을 정도로 대학 시험 공부에 매진한다. 그가 대학을 가고 싶었던 이유는 대학을 가면 불안하고 막연한 미래가 조금은 더 밝아 질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고향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주인공이 집을 떠나 모험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성장하듯이 그도 롤플레잉 게임속 주인공처럼 세상을 탐험하고 싶었다.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몰랐지만 확실한 것은 집을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대학도 일부러 집과는 멀리 떨어진 요코하마 대학 전자 공학부를 선택했다.


막상 대학에 들어간 그는 역시 공부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는 자유로운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며 밴드 생활에 다시 열심히 빠져들었다. 하지만 우연히 동급생 친구인 다나카 히로미치 집에서 처음 애플 2 컴퓨터를 보고서 충격을 맛보게 된다. 특별한 목표가 없었던 그의 인생에 새로운 도전 꺼리가 생긴 것이었다. 그는 이때부터 재수생활 이후 다시 한번 공부라는 것을 하게 된다. 프로그래밍 공부를 집중적으로 시작한 그는 파스칼, C언, 베이직등을 닥치는 대로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당시만해도 프로그래밍 전문가는 별로 없었기 때문에 독학으로 해낼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프로그래밍에 자신감을 갖게 된 그는 프로그래밍 기술을 이용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1985년 봄방학을 맞이하여서 사카구치와 그의 친구인 다나카 히로미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같이 알아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바이트 정보지에서 한눈에 끌리는 광고를 보게 된다. 시급이 무려 1500엔을 준다는 PC방 광고였다.  당시만해도 일반 아르바이트의 급료는 기껏해야 400엔에서 500엔일 때 1500엔을 준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그와 다나카 히로미치는 아르바이트 정보지를 보자마자 광고를 낸 PC 방에 달려가서 취업을 지원한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정보지의 광고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전형적인 과장광고였다. 광고를 낸 PC 방사장인 미야모토 마사시는 그와 다나카 히로미치를 보자마자 1500엔을 줄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하였다.

하지만 PC방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팔면 충분히 1500엔을 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완전히 다른 제안을 하였다. 막상 그 얘기를 들은 그와 다나카는 왠지 모르게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용솟음 치면서 한번 도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은 사기라면서 아르바이트를 포기했지만 그 둘은 아직은 젊었던 시절인지라 미야모토 마사시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그 둘은 봄방학 동안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봄방학 동안 그냥 PC방에서 컴퓨터를 마음 데로 쓰면서 지내는 것도 나쁠 것이 없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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