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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클린이라 불린 인텔 창업자!

멀티라이터 2009. 4. 30. 15:33

















인텔의 창업자중에 한명인 앤디그로브는 인텔의 여러 제도를 만들어 냈다. 회사의 직원 직원평가제도 역시 앤디 그로브가 만들어 낸것이다. 하지만 존리드라는 직원이 평가제도에 불만을 품고서 폭발한적이 있었는데 앤디 그로브는 그를 달래기 위해서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그사건이 있은후에 앤디 그로브는 회사에 불만을 가진 사람에게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서 점심식사를 함께 했는데 이때부터 이를 사람들인 존리드 기념 점심식사라고 불렀다.


사직 면담제도도 앤디 그로브의 작품이다.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 프로세서 개발에 깊이 관여했던 직원인 파긴이 어느날 갑자기 사직서를 낸다. 원래 앤디 그로브는 파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면담을 가지게 된다. 또한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에게서 회사의 불만을 듣고서 여러가지로 참고하려고 했다.  퇴직하는 사람이야 말로 회사에 대해서 가장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게 앤디 그로브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파긴의 사직은 돌이킬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새로운 회사를 차린다는 이야기를 듣자 앤디 그로브는 순순히 그를 보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텔에 대적할 회사를 만들 수도 있는 파긴의 자존심을 건들여서 기세를 꺽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앤디 그로브는 파긴이 형편없는 실력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성공하기 힘들것이라면서 온갖 폭언을 늘어놓는다. 사직면담 제도의 당초 취지는 사직하는 사람에게 회사의 문제점을 듣겠다는 의도에서 시작됐으나 결국 회사를 나가는 사람이 인텔과 대적 할수 없도록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제도로 변해버렸다.

앤디 그로브는 회사의 각종 소송을 진두지휘하기도 하였다. 첨단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특허부분은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인텔에게 있어서 특허관련 소송은 가장 중요한 업무중에 하나였다. 1960대와 70년대만 해도 특허라는 개념자체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던 시절이다. 인텔자체가 페어차일드 반도체 시절 연구했던 결과를 토대로 제품을 개발했다. 하지만 반도체회사가 수십개씩 쏟아지면서 인텔의 제품을 복제하는 회사들이 늘어났다. 특히 일본 업체들이 메모리와 마이크로 프로세를 무단으로 기술을 도용하여 낮은 가격에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인텔은 크나큰 위기를 겪어야 했다. 이를 계기로 인텔은 특허문제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대처했다.  사실 자금이 풍부한  인텔은 소송을 난발하는 경향이 있었다. 경쟁이 될 수 있는 제품은 무차별적으로 소송을 했다. 대부분 흐지부지 끝났지만 돈이 없는 회사의 경우 소송비용을 될수 없어서 인텔과 강제적인 합의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를 그만둔 사람에게도 기밀 유지를 이유로 빈번하게 소송을 냈고 이는 직원들이 다른 회사로 옮기는데 주저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그는 직원들의 작업계획표까지 일일이 철두철미하게 체크하기로 유명하다. 직원들에게 자율적으로 목표할당량을 결정하도록 하지만 만약에 원래 계획대로 개발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회의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한마디까지를 다 적어서 당초 약속한대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끝까지 따질 정도였다. 직원들의 업무까지 챙기는 것이 아니라 사생활까지 철저하게 관리를 했다. 회사내에 개인 평판과 관련하여 안좋은 소문이 돈다면 앤디그로브와 마주 앉아 면담을 해야 했다. 그는 직원들이 노조를 결성할때도 직접나서서 설득을 했다. 공장을 돌아다니면 연설을 했고 직원들에게 노조가 생길경우의 좋은점과 나쁜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노조 결성은 앤디 그로브의 솔직한 이야기에 영향을 받아서 최종 투표에서 무효가 된다.

회사의 규율과 규칙도 앤디 그로브의 손을 거쳐서 완성되었다. 출근시간 아침 8시보다 늦는 사람들은 지각자 명단에 올라갔고 앤디 그로브의 특별 관리 대상이 되었다. 평등주의를 제 1의 기업문화로 받아들이는 회사인 만큼 회사의 회장이었던 고든무어나 CEO였던 앤디 그로브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직원들이 지각자 명단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무도 앤디 그로브의 고집을 꺽을 수는 없었다. 회사의 근무환경을 관리하는 것도 역시 앤디 그로브의 몫이었다. 그는 직원들이 사내에서 잡담을 금지시켰으며 라디오나 음악도 듣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는 지팡이를 들고서 사내를 돌아다니며 수시로 직원들의 책상까지 검사를 O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책상이 지저분하거나 어지럽혀있기라도 하면 앤디 그로브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원래 미스터 클린이라는 말은 회사내에 먼지하나 허용하지 않았던 그의 완벽주의를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미스터 클린은 그의 도덕적인 기업 운영에 대해 찬사를 위해서 부르는 명칭이 되었다. 2001년 미국이 엔론사태와 월드컴이 기업회계 부정으로 기업인들의 도덕성을 비난할 때 많은 언론들이 미스터 클린 앤디 그로브를 언급하면서 그의 기업관을 칭송하기에 바뻤다.


댓글
  • 프로필사진 비밀댓글입니다 2009.04.30 16:23
  • 프로필사진 멀티라이터 예 저의 메일주소는 multiwriter@hanmail.net입니다. 2009.04.30 17:12 신고
  • 프로필사진 Apple-Code 그 유명한 스쿠르지 영감이군요~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일하러 안나오면 짤린다고 협박(?) 메시지를 돌려서 원성을 샀던걸로 유명하죠...-_-a 기업입장에서는 좋겠지만, 저분이 상사라고 생각하면 숨막힐것같네요... 글 잘보고 갑니다~ 2009.04.30 20:00
  • 프로필사진 멀티라이터 장난 아닌 분이죠. 미국에서 가장 터프한 CEO라고 하니깐요. 그런데 또 그만큼 검소하고 인간적인 구석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원래 메모리 만드는 직업이 상당히 까다롭고.. 조금만 실수해도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사실 인텔이라는 회사가 초기에 상품개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앤디그로브 같은 CEO가 필요했던것 같습니다. 2009.05.07 14:33 신고
  • 프로필사진 와이엇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제 글 자주 오픈캐스트에서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 2009.04.30 22:22 신고
  • 프로필사진 멀티라이터 저와 코드가 맞으셔서.. 자주 링크를 하게 되네요. 사실 허락 맡고 해야 했는데. 이렇게 먼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2009.05.07 14:33 신고
  • 프로필사진 ^^ 저런걸로 도덕적인 기업이라고 하긴 어렵겠네요. 오히려 반대 같은데요. 회사는 좋겠지만 직원에게는 압박이군요. 직장도 삶의 연장인데 저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네요. 돈은 많이 주는줄 몰라도 별로 다니고 싶지는 않아요. 2009.05.02 12:03
  • 프로필사진 멀티라이터 결국 직원들은 부자가 됐잖아요.^^;; 인텔이 참 많은 직원들을 백만장자로 만들어 주었죠.^^;; 그리고 제가 자세하게 적지 않았는데.. 앤디그로브가 직원들에게 엄격한 만큼 자기한테도 엄격했고.. 인텔이 뭐 세금깥은 떼먹지는 않았으니깐요. ^^;; 당시 기업부정들이 터졌을때.. 새삼 앤디그로브를 부각시킨것도 사실입니다. ^^;;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기부도 많이 하고 있으시고. 원래 미국사회를 위해서 쓴소리도 많이 하고. 겉만 그런게 아니라 진짜 검소하시답니다. ^^;; 2009.05.07 14:36 신고
  • 프로필사진 ^^ 본문 내용만 보고 영감이 깐깐하구나 생각했을 뿐입니다. 앤디그로브에 대해 자세히 알진 못해서...
    자신에게도 엄격하고 기부도 많이 한다니까 좀 달라 보이긴 합니다. 자신에겐 관대하고 타인에겐 깐깐한 이중 잣대를 가진 사람은 질색입니다.
    그래도 돈 많이 버는것도 좋지만 직원들 입장도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어 봤습니다. 머 앤디그로브가 볼것도 아니지만..
    2009.05.07 23:38
  • 프로필사진 도덕적기업 잣대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죠. 2009.05.05 15:52
  • 프로필사진 멀티라이터 자세하게 적지않았지만.. 호랑이 선생님이기는 했지만.. 또 그만큼 존경받을구석이 많이 있는 분이죠.^^;; 2009.05.07 14: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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