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Blizzard) 는 1991년도에 마이크 모하임과 앨런 애드햄, 프랭크 스피어스 의해서 창업되었다. 처음 회사를 만들 때만 해도 회사의 이름은 실리콘 & 시냅스였고 컴퓨터 게임 보다는 팬앤 페이퍼(Pen &Paper) 방식의 롤플레잉(Role playing)용 보드 게임을 주로 제작 하였다. 레이싱과 로스트 바이킹스와 같은 콘솔용 게임을 개발 하였으나 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회사의 재정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빚은 늘어만 가고 있었다. 결국 회사는 데이비슨 앤 어소시에트에 인수 되었지만 블리자드라는 이름과 경영진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회사자금에 다시 여유를 가지게 된 블리자드는 PC 용 게임인 액션게임 블랙쏜(Blackthorne)을 인터플레이를 통해서 발매하며 처음 성공이라는 것을 거두게 ..
“ 게임 패키지에 적힌 회사나 게임제목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영화를 선택할 때 아놀드 슈활츠 제네거가 출연한 영화나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영화를 본다. 책을 선택할 때는 누가 작가인지를 보는 것과 같다. 해리포터의 J.K 롤링처럼 말이다. 이렇듯 게임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게임을 선택할 때는 누가 만들었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이 책은 아시다시피 미국 인터랙티브 아츠 앤 사이언스 학회(Academy of interactive Arts & Science) 에서 주관하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게임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셜 게스트라는 기이한 항목을 만들어서 빌 로퍼를 소개하는 것은 그가 한국 게임계에 끼친 영향이 너무나 커서 도저히 무시할 수가..
한국에서도 역사를 소재로 하여 게임을 전문으로 개발하는 게임 크리에이터가 있다. 바로 거상과 군주로 유명한 엔도어즈 개발 이사 김태곤씨이다. 1992년 김태곤씨는 홍익대 전자공학과에 재학중에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함께 아마추어 게임 개발팀인 HQteam을 조직한다. HQteam이 첫 번째로 개발한 게임은 바로 이순신을 소재로 한 리얼타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충무공전이다. 그 후에 임진록과 천년의 신화 같은 패키지 게임을 제작하며 세상에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거상 온라인 덕분이었다. 기존의 온라인 게임들이 전투위주의 MMORPG게임으로 어린이들에게 정서상 좋지 못하다는 비난을 듣던 와중에 거상은 경제 개념을 심어주는 교육적인 게임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
일본에서는 최고령 게임 크리에이터로 유명한 에리카와 요이치는 시드 마이어와 여러 가지 면에서 정말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에리카와 요이치는 코에이의 창업자로 삼국지와 노부나가의 야망과 같은 역사 게임을 기획하고 프로그래밍한 사람으로 일본의 시드 마이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는 중국 삼국시대의 조조나 유비 같은 인물이 되어서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외교를 총괄하는데 시드 마이어의 문명 역시 특정문명시대의 지도자가 되어서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외교분야 대해서 통치를 하는 것과 개념이 유사하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은 여러 문명들을 개척하고 발전시키는데 인기 있는 문명은 역시 로마였다. 아시아의 로마라고 불리는 중국의 삼국지를 소재로 게임을 만든 에리카와 요이치와 서로 상통하는 면이 있다. 특히 ..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들의 연속이라는 정의는 게임 개발자들이 가장 즐겨 하는 말 중에 하나다. 보통 게임 개발자들에게 게임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항상 모범 답안처럼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들을 연속적으로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필자는 한동안 그 말이 작자 미상의 게임계 격언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시드 마이어가 게임에 대해서 밝힌 견해임을 알게 되었고 그의 탁월함에 다시 한번 놀란 적이 있었다.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들의 연속이라는 것은 게임의 특질을 꿰뚫는 명언이다. 게임은 게임유저에게 한가지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게임은 게임 유저가 다양한 선택사항을 가지고 그에 따른 여러 결과물들을 감상할 수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게임의 본질이다. 그래서 그는 게임 기획자에게 게임을 개발할 때 항상..
새로운 회사를 창립할 결심을 한 시드 마이어가 우선 먼저 생각한 것은 경영자를 영입하는 것이었다. 자신은 개발에 전념하고 회사의 경영과 팀의 관리를 전적으로 맡을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마침 같은 회사의 동료인 제프 브릭스(Jeff Briggs)도 소규모 회사에서 하나의 게임에 전념하는 시스템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대규모화된 회사에 염증을 느끼던 제프 브릭스는 공공연히 회사의 운영방침에 반대하였다. 자기가 만약 회사를 세우면 우선 3명 정도의 소수가 프로토 타입의 게임을 완성한 후에 게임의 재미를 평가하고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드 마이어는 제프 브릭스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였고 둘은 금새 의기 투합 할 수 있었다. 회사의 중심은 마케팅이나 경영이 아니라 개발팀위주여야 한다는 신념..
시드 마이어의 게임 인생은 확실히 1991년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뉜다. 문명 이전에는 유명한 게임 개발자 정도에서 문명 이후에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수준의 게임 개발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게임 개발자의 톱이 된 것이 아니라 전체 문화산업에서 톱이 되었다. 그래서 게임 크리에이터와 게임의 위상을 높였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 후 시드 마이어라는 이름은 이미 성공을 보장하는 이름이었고 그는 그의 이름에 걸맞은 여러 게임들을 연속적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마이크로 프로즈의 재정은 날로 어려워졌다. 마이크로 프로즈는 갑작스런 성공으로 대규모의 인원들을 고용했는데 이들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빌 스텔리는 그 책임을 철저히 자신에게 있다고 말한다. 게임 재정과 마케팅을 책임지는 자신이 게임 ..
게임 역사상 최고의 게임 문명 계속적으로 그의 게임이 성공하게 되자 이번에 그는 더욱 대범한 시도를 하게 된다. 인간 문명의 시작과 발전을 테마로 하여서 게임을 개발할 결심을 한것이다. 이는 게임 역사상 전무후무한 시도였다. 인간의 역사와 컴퓨터 기술을 꿰뚫을 수 있는 탁월한 식견이 없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기획이었다. 그는 게임 시스템을 세우는 데만 해도 수개월을 그냥 흘려 보내야 했다. 게임 하나에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를 담아내려는 시도는 무모한 것처럼만 보였다. 하지만 자신이 어린 시절 즐겼던 보드 게임을 참고하면서 점차적으로 게임의 구색을 맞추어 갈 수 있었다. 문명이라는 테마는 매력적이었지만 게임으로 만드는 데는 정말 복잡한 문제였다. 아무리 게임이 사실적이라고 해도 재미가 없으면 아..
사실 둘은 회사를 막상 차렸지만 자신들의 일에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 둘은 원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몰래 게임을 개발했던 것이다. 이른 바 투잡스였다. 6개월 동안 낮에는 회사에 출근하고 밤에는 모여서 게임을 개발했던 것이다. 그리고 개발 중인 게임에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자 게임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그러고 나서야 회사를 그만두고 게임 개발에 전념했다. 2주만에 레드 바론보다 훨씬 좋은 게임을 개발하겠다는 시드마이어의 장담 한마디로 시작한 마이크로 프로즈답게 그 둘은 창업을 하고 1년 정도 연구기간을 가지더니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스핏 파이어 에이스(Spitfire Ace)를 시작으로 솔로파이트(Solo Flight), 아크로젯(Acrojet), 스트라이크 이..
시드 마이어는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에서 1954년에 태어난다 그는 학창시절 책과 보드게임을 특별히 좋아했다는 점을 빼고는 일반 다른 학생과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는 역사, 해적, 비행기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그가 문명, 해적, 스트라이크 이글 같은 게임을 개발하는데 있어서 큰 영감을 제공해 주었다. 그가 즐긴 보드 게임으로는 경영을 소재로 한 모노폴리와 전쟁을 소재로 한 게임들 이었다. 이러한 보드 게임에 대한 기억은 그가 턴 기반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하는데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미시건 대학에서 역사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그는 제너널 인스트루먼트라는 컴퓨터 회사에 시스템 관리자로 취직한다. 여기에서 그는 편의점이나 상점에 자동화된 계산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세계 모든 게임 기획자들의 교과서 시드 마이어 게임 크리에이터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가장 재미있는 직업이에요. 그래서 저는 세계 최고의 행운아죠. 시드 마이어는 블랙앤 화이트(Black and White)시리즈의 피터 몰리뉴 그리고 울티마(Ultima) 시리즈의 리차드 게리엇과 함께 세계 3대 게임 개발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다른 크리에이터와는 다른 면이 있다. 그는 게임 역사에 획을 긋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여 천재라는 격찬을 듣는 크리에이터가 아니다. 또한 게임 역사상 최다 판매량을 기록하며 화려한 스폿라이트를 받는 크리에이터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명예의 전당은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거나 게임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을 만든 사람의 전유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야 모토 시게루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게임을 개발한 게임 크리에이터이다. 대부분의 크레이에이터가 액션이면 액션 시뮬레이션이면 시뮬레이션처럼 특정 장르에 치우치기 마련인데 미야모토 시게루는 액션에서부터 롤플레잉 그리고 시뮬레이션까지 온갖 장르를 넘어서면서 자유롭게 게임을 개발했다. 그의 수제자로 불리 우는 나카 유지 역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게임을 개발했다. 한국은 아쉽게도 대부분의 크리에이터들이 롤플레잉 게임에 편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원술 사장은 롤플레잉 게임에서 시뮬레이션 그리고 액션과 호러 어드벤처 등의 다양한 게임을 개발하였다. 또한 미야모토 시게루는 최초와 최고의 수식어를 가장 많이 들어왔는데 이원술 사장 역시 최초와 최고의 소리를 듣는 게임을 많이 개발하여왔다. 최초의 일본식 ..
슈퍼마리오의 영향을 받은 게임은 많다. 그것도 나중에 세계적인 거장이 되는 게임 크리에이터들은 슈퍼마리오와 같은 횡스크롤 액션게임을 한번씩 개발을 했으며 미야모토 시게루의 영향을 받았다고 솔직히 인정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세계 최첨단의 3D FPS 게임을 개발한 양대 산맥 둠과 언리얼팀의 초기작이 슈퍼 마리오를 그대로 베낀 코맨더 킨과 재즈 젯 래빗이라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게임들은 역시 큰 히트를 기록했고 회사의 현금창고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성공한 게임을 뽑는다면 역시 소닉이다. 소닉은 3천만 개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세가신화의 초석이 되었다. 과거 닌텐도의 마리오와 세가의 소닉으로 표현하며 두 회사의 경쟁관계를 나타내기도 할 정도였다. 마리오가 점프의 상쾌함을 강조했다면 소닉은 바로 스..
1. 마케팅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디즈니의 딕 쿡과 그의 재능 있는 팀과 즐겁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마케팅이 형편없는 제품을 대박이 나도록 해줄 수는 없습니다. 제 아무리 디즈니의 마케팅과 브랜드여도 최신 영화 두 편인 과 를 결코 성공으로 이끌지는 못할 것입니다. 픽사터치(2008년) 중에서 제품이 형편없으면 아무리 마케팅이 뛰어나고 훌륭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 결국 위대한 제품을 만들어야 기업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 역시 바로 위대한 제품을 만들 줄 알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나이가 들수록 동기가 많은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확신이 듭니다. HP의 주요목표는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것은 세계 최고의 PC를 만드는 것이..
슈퍼마리오와 젤다의 전설의 아버지 게임의 신 미야모토 시게루 2편 - 게임을 부활시킨 미야모토 시게루 아타리 쇼크이후 미국에서 게임은 그 수명을 다한 듯이 보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 1980년대 초반에 미국정부에서는 학교의 정규교과과정으로 컴퓨터를 채택했다. 게임에 대한 관심이 컴퓨터로 쏠리면서 게임은 더욱 외면 받았다. 특히 코모도어에서는 마케팅 전략으로 아이들의 학업에 방해가 되는 게임기를 사주느니 아이들이 대학가는데 도움이 되는 컴퓨터를 사주라는 광고를 자주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게임기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멀리하기까자 하였다. 이제 사람들에게 게임은 롤러스케이트처럼 그냥 일시적인 유행이었을 뿐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분위기가 더욱 팽배해있었던 1985년 ..
슈퍼마리오와 젤다의 전설의 아버지 게임의 신 미야모토 시게루 1편 - 비디오 게임의 탄생과 아타리 쇼크 비디오 게임을 대중화시킨 사람은 아타리의 창시자 놀란부쉬넬이다. 그는 퐁을 상업적으로 대히트 시킴으로써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얻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놀란 부쉬넬 이전에도 컴퓨터 게임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데 누가 최초로 컴퓨터 게임을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역사학적인 관점에서 최초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핵물리학자인 윌리엄 히긴 보텀(William Higinbotham)이 컴퓨터 게임의 창조자라고 불린다. 1950년대만 해도 컴퓨터는 핵무기 개발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여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컴퓨터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게임의 운명을 결정하는 상상력과 기획은 절판이 되었습니다. 애플 성공신화의 비밀은 현재 절판단계에 돌입했고 재고가 반디앤루니스에만 있는 상황입니다. 그 밖에 세계최고의 디지털리더 9인의 이야기와 세계 최고의 게임크리에이터 9인의 이야기등의 판권을 돌려 받았습니다. 또한 몇개월 안에 저의 책들 여러권들의 계약기간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절판된 책들과 판권을 돌려받은 책들의 내용들을 블로그에 올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몇몇 내용의 경우 블로그에 게시한 글들과 중복될수도 있습니다. 제가 블로그에 글을 올렸는데.. 출판이 되면서 관련 내용을 삭제한 경우도 있고.. 출판된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얼마후 삭제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출판사와의 관계로 불가피하게 삭제 한 경우도 있었는데요. 앞으로 글..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말들 속에는 유머가 있다. 사실 다른 IT 리더들은 뛰어난 통찰과 이성을 가졌는지 몰라도 재미는 좀 떨어진다.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면 토크쇼를 보는 기분이 드는데 이는 그가 간간히 웃음을 터뜨리는 유머를 던짐으로써 분위기를 밝게 만들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친동생인 모나 심슨이 위독한 스티브 잡스를 만나기 위해 급하게 집에 도착하자 스티브 잡스는 부인과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고 할 정도로 스티브 잡스는 원래 장난과 유머를 좋아한다. 이번에는 스티브 잡스의 몇 가지 유머를 모아봤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의 유머는 글로 잘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적은 숫자의 유머만 소개하는 것이 안타깝다. 1. 만약에 컴퓨터 부팅 시간을 10초를 줄 일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고 ..
1. 우리는 애플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일하는 50명의 작업들은 우주 전체에 거대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나는 우리가 불러 일으키는 파장에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내가 일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요즘 너무나 즐겁고 행복합니다. Return to the Little Kingdom, Michael Moritz,Penguin Group USA, 2010 스티브 잡스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는 것은 사람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비전을 심어주는 것이다. 함께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원대한 비전을 말이다. 스티브 잡스는 우주에 거대한 흔적을 남기자고 직원들을 ..
우리는 의식적으로 위대한 제품을 만들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혁신을 이룩하자” “혁신에 대한 수업을 듣자” “혁신에 대한 다섯 가지 원칙이 있으니 이를 회사 전체에 붙여놓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할 수는 있습니다. 나는 이런 짜증스러운 일들이 다른 곳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치 멋지지 않은 사람이 멋져 보이려 노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괴롭습니다. 그건 마치 마이클 델이 억지로 춤을 추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 괴로운 일이죠. The Guts of a New Machine, TheNewYorkTimes, ROB WALKER, November 30, 2003 애플의 혁신은 1,000가지에나 ‘아니’라고 말하는 데서 옵니다..
제가 17세 때 저는 이런 글귀를 하나 읽었습니다. “만약에 하루하루를 당신의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면, 당신은 분명히 옳은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 구절은 내게 감동을 주었고 그 이후 지난 33년 동안, 나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일들을 하려고 했을까? “아니”라는 대답이 여러 날 동안 연속적으로 이어질 때마다 나는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Speech 2005 당신의 꿈을 책임지게 되는 수단들을 손에 쥐게 되었을 때, 그리고 꿈이 실현 되었는지 안 되는지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그 순간 인생은 더욱 힘들어 집니다. 실..
사람들은 왜 그토록 스티브 잡스에 열광할까? 그가 만든 위대한 상품들이 주요한 요인이긴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대부분의 IT 대부들은 재력이 있는 부모를 만나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지냈고, 사업 초창기에 약간 고생을 하지만 이후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순탄하기만한 다른 IT 대부들과 다르게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으며 굴곡 있는 삶을 살았다. 스티브 잡스의 파란만장한 삶을 보면 몹시 극적이고, 그만큼 사람들에게 교훈과 감동을 준다. 스티브 잡스는 실패와 실수를 반복하였고 숱한 고난과 난관을 경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깨달음을 얻어 더욱 강한 사람이 되었다. 예컨대,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 난 후 실패자로 낙인이 찍혔지만 결국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장편 ..
e- 비지북스를 통해서 100 장으로 읽는 IT 역사라는 책이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워낙 바쁜시대다 보니 책 한권을 읽기에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해서 짦지만 핵심적이고 간결하게 특정 주제를 담은 미니북형태로 출간되고 있습니다. 저도 그 취지가 좋은것 같아서 미야모토 시게루를 주제로 해서 참가를 하였습니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마리오와 젤다의 전설을 만든 개발자로써 게임의 신이라고 불리웁니다. 미야모토 시게루를 쓴 다음에는 그의 후속편으로 김택진대표에 대한 책을 썼습니다. 사실 외국에서야 미야모토 시게루가 게임계의 거목으로써 훨씬 큰 인지도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 관련인사라면 단연코 김택진 대표가 있겠죠. 사실 한국 사람에게는 미야모토 시게루보다 김택진 대표가 훨씬더 유..
아이패드가 사실상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타블릿 PC 시장에 새로운 적수가 등장했다. 사전 주문만 150만대가 넘어설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킨들 파이어다. 전자책에 특화된 단말기이지만 기존의 킨들과는 다르게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한 각종 앱을 실행시킬 수 있고 인터넷과 동영상 재생등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킨들 파이어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바로 199달러 밖에 안되는 가격이다. 킨들파이어의 파격적인 가격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드웨어 판매에 따른 이익을 아예 포기했기 때문에 성사 될 수 있었다. 시장 조사기관인 IHS에 의하면 킨들파이어의 총부품 가격은185.80 달러이고 여기에 제품 조립 비용을 합치면 201.70달러가 된다고 한다. 아마존은 킨들 파이어를 팔때마다 이익을 보는게 아니라 2.7달러씩 손해..
1. 스티브잡스는 눈물많은 울보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스티브 잡스가 원래는 어린시절부터 눈물 많은 울보였다는 사실은 의외인데 스티브 잡스는 어린시절 수영경주에서 지고나면 울면서 집에 가버릴 정도로 울보였다고 한다. 스티브 워즈니악과 동업을 할때는 스티브 워즈니악 아버지로부터 너는 별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울었다고 한다. 매킨토시 팀의 주도권을 가지고 제프러스킨과 싸울때는 경영진에게 눈물로 호소해서 매킨토시팀을 차지한 적도 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스티브 잡스를 비난하는 인터뷰를 하자 역시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아들의 졸업식장에서도 많은 사람앞에서 역시 눈물을 흘려서 이웃들을 찡하게 했다는 것 역시 유명하다. 2. 스티브 잡스의 스트레스 해소법중에 하나는 기타였다. 애플 컴퓨터를 창업한 후 하루..
1.빌 게이츠는 지기를 싫어하는 승부욕의 화신이다. 지기를 싫어하고 항상 누군가에 승리하고자 하는 열망은 어린 시절부터 빌 게이츠의 전체 능력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는 누나와 퍼즐 게임을 하거나 썰매를 탈때도 항상 절대로 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한번은 그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산상수훈을 다 암송하는 사람에게 고급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사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자 빌 게이츠는 단 두시간 동안 성경책을 읽고서 산상수훈을 전부 암기했다. 사실 이는 믿음 때문에 성경을 외웠다기 보다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승자가 되려는 타고난 승부욕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가 어린 시절부터 가장 즐겨하고 좋아하는 놀이는 브리짓 게임이다.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는 경쟁에서 승리하는데 집착하는 그가 카드 ..
1.탤런트 이영하는 김민정을 자신의 아이로 착각한적이 있다. 김민정은 강남의 모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는데 마침 그날 이영하와 선우은숙의 2세도 같은날 같은 장소에서 태어났다. 이영하는 병실을 잘못 찾아가서는 이제 갓 태어난 김민정을 보고는 자신의 아이 인것처럼 흐뭇하게 바라봤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아이는 김민정이었고 간호사가 잘못된 방이라는 것을 알려준 후에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고 한다. 2.김민정은3년간의 구애를 받고서 연예계에 데뷔했다. 김민정은 유아복 업체의 모델 선발 대회에 나가서 대상격인 귀염둥이상을 받았다. 바로 CF모델 제의를 받지만 연예계에 데뷔할 생각은 없었다. 결국 3년간의 끈질긴 구애를 받은 끝에 김민정은 7살의 나이에 코알라빵 광고로 연예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3.김민정은 잘자라..
1. 손정의 아버지는 매우 특별한 교육법을 가지고 있었다. 손정의는 재일교포 3세로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탄광노동자로 일하였다. 손정의 집안은 80 가구정도가 무리 지어서 사는 무허가 판자촌에서 어렵게 살아야 했다. 손정의가 태어났을때도 돼지를 길러서 생계를 유지 해야할 정도로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지만 아버지 손삼헌이 생선판매점으로 성공을 거둔 이후 파칭코와 부동산 사업으로 큰 돈을 벌게 된다. 덕분에 손정의는 다른 재일교포와 다르게 풍족하게 살게 된다. 손정의라는 이름은 그의 아버지 손삼헌이 정의롭게 살라는 의미를 가지고 지어주었다. 그런데 손삼헌은 매우 특별한 교육법을 가지고 있었다. 이른바 천재 교육법인데 손삼헌은 손정의에게 너는 타고난 천재이니 무엇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다할 수 있다고..
1. 매킨토시의 시작은 게임기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애플의 회장이었떤 마이크 마쿨라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컴퓨터공학과 교수출신인 제프 라스킨에게 500달러짜리 게임기를 개발하도록 지시를 내렸는데 이에 제프 라스킨은 500달러짜리 컴퓨터를 만들겠다고 다시 제안을 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2. 상표권 침해를 피하기 매킨토시의 철자를 다르게 불렀다. 매킨토시는 원래 사과의 한종류인 McIntosh로부터 가져온 이름이었다. 하지만 타자하기가 힘들고 오디오 제조회사의 이름이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철자를 Macintosh로 바꾸었다. 하지만 철자를 바꾸어도 상표권에 걸리기는 마찬가지였고 협상을 통해서 MACINTOSH라는 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3.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라는 코드명을 좋..
1. 포켓몬스터의 아버지 타지리 사토시는 유명한 게임 오타쿠였다. 포켓몬스트의 아버지 타지리 사토시는 중학생시절부터 게임광으로 유명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보면서 게임의 세계에 빠져버린 그는 학원을 선택할때도 오락실이 가장 가까운곳으로 다닐정도였다. 워낙 뛰어난 게임실력덕분에 오락실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게임에 대한 사랑덕분에 그는 세가에서 진행하는 게임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으며 GAME FREAK라는 잡지도 만들었다. 이 잡지는 일종의 동인지로 원고를 복사한다음에 타지리 사토시가 직접 후지케스로 찍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겉모습은 형편없었지만 게임 공략은 매우 훌륭해서 300엔에 팔았던 잡지가 만권씩 팔린적도 있다. 2. 프로그래밍에 문외한이었던 타지리 사토시 게임을 위해 프로..